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그는 한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분야의 시초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아직 벤처 전문 액셀러레이터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스타 창업가들과 힘을 합쳐 프라이머를 설립하고 아이디어나 팀도 아직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창업팀에 멘토링과 투자를 병행하는 시도를 했다. 그게 2010년 이었다. 그 뒤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와 프라이머가 겪은 도전과 성과, 그리고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한국 스타트업 투자업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역사가 됐다.

세월이 흘러 이제 어느덧 나이는 50줄이 넘었고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창업에 대한 열정으로 여전히 반짝이는 그의 눈빛과 크지 않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보고 느끼면서 창업과 혁신이라는 그의 인생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최근 권도균 대표를 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가 근자에 출간한 책 때문이었다.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이라는 책을 보면서 정말 대학교 등에서 수업 교재로 쓰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가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수업 교재로 쓸 만한 책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화는 책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5년째 프라이머를 운영하면서 든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견해 등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차분하면서도 벤처 비즈니스 전체를 아우르는 조리있는 설명,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스타트업에 대한 따스한 시선.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와 분위기에 빠져있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스타트업을 만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엄청 바쁠텐데, 언제 이렇게 글을 쓰셨는지.

원래 이렇게 책을 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고 페이스북에 틈틈이 글을 올려놨었어요. 그동안 프라이머를 하면서 나름대로 스타트업 경영에 대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느새 보니 60개나 되더라구요.”

그래도 책으로 내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요

그렇죠. 그 전에 전자신문에 칼럼 형태로 글을 기고하는 과정이 없었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에요. 작년초부터 전자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어요. 요청이 들어왔을 때 가능할까 싶었는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꽤 많으니까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신문에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안쓰다 쓰니까 주말 이틀 동안 꼬박 아무것도 못하고 글 쓰는 작업에만 몰두했어요.”

페이스북에 틈틈이 올린 60개의 칼럼에서 출발

칼럼을 그냥 모아놓은 건 아닌 듯 한데요

칼럼을 6개월 동안 81개를 썼어요. 매주 3개씩 썼죠. 연재가 끝나고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분이 직원들 교육용으로 제 글을 묶어서 활용하고 있다고 감사인사를 하더라구요. 그때 아 이걸 묶으면 스타트업을 위한 교재가 될 수도 있겠구나알게 됐죠. 그러면서 책으로 출간하기로 결정을 한 거에요. 그래도 사실 책을 내기 위해선 상당수 칼럼을 거의 다시 써야 했어요. 8개월이나 걸리더군요.”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글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실감했죠. 그래도 이제 책도 내고 그랬으니 본업으로 돌아가야죠.”

프라이머가 어느덧 시즌3에 접어들었죠?

지난 7월로 시즌3가 끝났습니다. 2010년에 처음 시작해 시즌1때는 5억원을, 시즌2때는 7억원을 투자했어요. 합해서 27개 기업에 투자했는데 올해초 시작한 시즌37개월간 22개 기업에 2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규모도 커지고, 투자하는 회사고 부쩍 늘어나고 그랬죠.”

그만큼 좋은 회사가 많은가 봅니다.

저는 지금이 스타트업 캄브리아기라고 표현을 해요. 캄브리아기는 지질 시대 구분에서 고생대의 최초의 기간인데 이 시기에 생물군이 가장 많이 출현을 하는 대시기쟎아요. 스타트업의 최근 발흥이 이 시기와 비견될만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2~3년이 절정일 것 같아요.”

좋은 팀이 많으면 지원 프로그램도 확충해야겠네요.

저희가 엔턴십을 1년에 1회 진행해왔어요. 우선 서류로 지원을 받는데, 800팀이 지원을 합니다. 정말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많아요.올해 시즌3의 경우 22개팀에 투자를 했는데 10개는 엔턴십에 들어온 팀이었고 나머지 12개는 일반투자를 진행했습니다. 곧 시즌4를 시작할 계획인데 시즌4에서는 엔턴십을 연 2회로 늘리기로 했어요. 그만큼 좋은 팀이 많아서죠.”

"지금은 스타트업 캄브리아기...향후 2~3년 절정에 달할 것"

시즌4 투자금액은 어느 정도 될까요

“100억원 정도 할 예정입니다. 올 가을부터 시작되구요. 외부 자금을 받지 않고 파트너의 자금만으로 할 생각입니다.”

자체자금만으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프라이머를 그동안 운영하면서 느낀 게 Flexible이 중요하더군요. 이 업이 매우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는 것이지만 의미있는 일을 찾아내는 건데, 그거려면 투자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투자의 규모보다는 그게 더 중요해요.”

파트너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프라이머 1기때는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 이택경 이재웅 다음 창업자,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는데요.

우선 제가 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싸지닷컴의 이기하 대표, 지란지교소프트 창업자 오치영 대표가 있습니다. 씽크리얼즈 창업자인 김재현 대표, 코스닥 상장사인 슈피겐의 김대영 대표, 그리고 대웅제약의 윤재승 대표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인포뱅크 두 분 대표 중 한 분과 스트롱벤처스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100억원이라. 기존 투자금에 비해 상당히 많네요. 투자 기간이 있겠죠.

“3년간 매년 30억원에서 40억원 가량을 투자하게 됩니다. 지금 정말 창업하는 팀들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창업하기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모바일 비즈니스가 막 폭발하려는 이때, 창업을 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얘기하고 있어요.”

요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도 많이 생겼고, 정부 지원프로그램도 많이 있습니다. 프라이머의 역할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한때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초창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들이 늘어나면서 프라이머는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로 가야 하나 아니면 투자 금액을 올리고 좀 더 모델이 검증된 팀에 투자를 할 것인가를 고민한거죠. 그러다보니 팀을 선정할 때 그런 고민이 좀 엿보였습니다. 그래서 시즌2의 팀을 보면 아주 초창기 스타트업과 약간 성숙한 팀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시즌3에 와서 다시 얼리 스테이지로 돌아왔어요. 저는 이것을 병아리 인큐베이팅에서 달걀 인큐베이팅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야말로 정말 초기 상태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게 프라이머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프라이머가 어떤 팀을 뽑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래성이 있는 사람과 그런 팀을 뽑는게 대단히 중요하죠. 흙 속에 묻혀 있는 인재를 발굴해서 키워내는 것. 항상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거리 경주같은 것. 조급해하지 말기를.."

액셀러레이팅이라는 게 뭘까요.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

피터 드러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영은 평범한 사람을 데리고 탁월한 결과를 내는 것이라고요.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사람을 데리고 훌륭한 결과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엑셀러레이터가 어떤 가치를 더했는지 불확실하죠. 별로 한 게 없을 수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장래성이 있는 그런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 그래서 프라이머는 낮은 밸류로 적은 금액을 투자하지만 가치를 더해서 크게 키우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아주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사업이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죠. 그 장거리 경주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내 함께 달리는 겁니다.”

요즘 창업이 붐처럼 되면서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거품일 수 있죠. 하지만 거품은 결국 발전을 낳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재원들이 모이면서 산업이 단단해지고 있는 걸 느낍니다. 돈이 된다는 생각에 잠재력이 있는 인재들이 창업으로 몰리는 거죠. 기존의 생각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90년대 웹 시대보다 훨씬 더 큰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창업 문화 관련해 아쉬운 부분이 있을텐데요

주변에 노이즈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등 식의 속설, 그와 관련된 너무 많은 잡음들. 어설픈 사람들의 조언. 이런 것 때문에 훌륭한 사업가, 자질있는 사람들이 흔들리고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성공비결 운운하는 주위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사업엔 성공비결따윈 없다"

성공비결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 성공비결 따윈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걸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공에 이르는 쉽고 빠른 길? 저는 그것을 사탄의 유혹이라고 부릅니다. 답은 경영자가 고객과 함께 찾아가는 겁니다. 쉬운 길은 없어요. 그런데 세상의 유혹이 너무 많죠. 프라이머는 그래서 경영자가 딴 짓을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경영이 무엇인지 체득하게 하는 거죠.”

프라이머의 지나온 5년을 돌이켜보신다면.

프라이머를 하면서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하면서 그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창업후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하거나 새로운 창업에 도전한 사업가들이 엔젤투자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엔젤투자 문화나 그런 그룹이 한국에 이전에 전혀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학습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엔젤투자도 사실 배워야 합니다. 시행착오가 필요했죠. 함께 투자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함께 했던 이택경 대표는 매쉬업엔젤스를 차려서 별도로 하고 계시고, 류중희 대표로 퓨처플레이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이머가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해 낼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창업가들을 찾아내는 일을 해야겠죠.”

 by wonkis

권도균은? (출판사 저자 소개에서 발췌)

대한민국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개척자이며 대표적인 멘토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1년간 컴퓨터 분야 엔지니어와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35세에 독립해 5개의 회사를 창업했다. 이 중 1997년과 1998년에 각각 설립한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보안?전자 지불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2000년대 초반에 두 회사 모두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이후 사업의 본질에 충실한 경영으로 4000억 원이 넘는 기업 가치의 회사들로 성장시켰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2008년 말 모든 경영권을 매각했다.

2010년 대한민국의 창업 환경에 적합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라이머를 벤처 1세대 창업가들과 함께 설립했다. 프라이머는 국내 대표적인 스타트업들을 발굴, 투자했으며 성공적인 기업들을 다수 탄생시켰다. ‘잠재적인 창업가들을 발견하고, 큰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경영 지식과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영의 범주를 기업 이외의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경영 지식으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잠재성을 발휘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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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혁명이 오고 있다. 하루 이틀 정도 소요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배송이 언제부턴가 당일배송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1~2시간이면 오는 배송이 가능해진 시대다. 아마존은 한걸음 더 나가 배송시간 제로를 천명하고 나섰다. 드론을 띄운다는 둥, 주문을 하면 3D프린터로 고객 가까이에서 즉석에서 만들어준다는 둥, Drive Through 지점을 만든다는 둥,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할지 여부를 떠나서 얼마나 배송 분야가 난리길래 이 같은 엄청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경기가 침체해도 계속 늘어나고 환율이 요동치고 주식시장이 꼬꾸라져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산업. 바로 택배·물류산업이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장에서 한국의 한 작은 벤처기업이 발상의 전환으로 시장 혁신을 꾀하겠다며 나섰다.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번 째 스토리 주인공은 파슬넷의 최원재 대표다.

30대 지사장을 꿈꾼 공학도

최원재 대표는 자신의 인생의 꿈을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렸다. 30대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장이 되는 것. 물론 일을 하면서 생긴 목표일 것이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85학번인 그는 지금 한국의 한국의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그 유명한 80년대 중반 학번들과 같은 세대다. 한국에서 벤처창업 붐을 일으킨 원조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들과 함께 생활도 했고, 같은 고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 다만 약간씩 서 있는 길목이 달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SK건설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남짓한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는 엄청난 변화를 목도했다고 한다. “건설사니까, 설계 도면을 그렸죠. 입사할 때만 해도 제도판에 그렸는데 나중에 오토 CAD로 했고, 회사를 나오기 직전엔 워크스테이션에서 작업을 했죠.”

3D 워크스테이션에서 설계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제도판에서 설계를 하는 것과 3D 워크스테이션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뭔가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차원이 아니에요. 그건 완전히 세계관이 달라지는 거였어요.”

3D 워크스테이션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 세계관이 달라진다는 것. 무슨 뜻일까.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위해 최 대표가 예를 들어줬다. “300분의 1짜리 도면을 설계한다고 가정해 보면, 내가 그린 설계 도면을 300배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작업이 잘 안되요. 그게 상상이 잘 안되거든요. 그런데 내가 300배 큰 거인이 돼서 아주 작은 물건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어요. 세계관이 달라진다는게 이런 겁니다.”

기술의 발전이 그에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IT(정보기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IT는 사실 효율화가 전부가 아니에요.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게 훨씬 중요한 거죠.”

1995년 삼성SDS에 입사한 그. 3년 후에는 SAS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만 서른아홉이 되던 해에 목표를 이루게 된다. 호주기업 엑스트랄리스의 한국 지사장이 된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는 극도로 허탈했다. 크게 실망도 하게 된다. 지사장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되고 나서 알았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몇 달 지나고 나니까 별로 할 게 없더라구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죠. 아 나가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1995년 삼성SDS로 가면서 IT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지 12년만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꼬박 14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첫 창업에 나섰다. 2007. 그의 나이 이미 마흔이 넘어 있을 때였다.

<물류와 배송 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원재 대표.>

40대 늦깎이 창업

2007년 그는 룩타운이라는 영상 편집 솔루션 회사를 세웠다.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당시 싸이월드 등에 올려놓던 시기였다. 룩타운은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자가 스스로 편집해 책으로 만들어나 출력해서 보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유행을 타고 사진을 출력해서 보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해주는 것이 1차 목표. 하지만 출력해서 보려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아니 이 회사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기에 선택받지 못했다고나 할까. 첫 창업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첫 창업의 실패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룩타운에서 축적한 영상 편집 솔루션을 이용해 명함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 이름은 네이미. 명함을 기반으로 한 링크트인과 같은 서비스였다. 종이명함을 기반으로 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고안했다. 직장이나 직책, 직급이 변경되면 상대방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있었고 직장인들간에 명함을 주고받으면 이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였다.

수익원이 종이명함을 주문하면 만들어주는 그런 거였어요. 수익원이 명함 제작인 셈이었죠. 어쨌든 그러다보니 명함 만드는 분야도 공부를 좀 했어요. 그런데 이게 결국 인쇄 시장이더라구요.

그는 인쇄업이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출판인쇄, 기업인쇄, 포장인쇄가 그것이다. 출판인쇄는 책과 신문 등이 해당되고, 기업인쇄는 카달로그나 달력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포장인쇄는 각종 포장을 비롯해 택배용 박스 생산 등도 포괄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재미있는 걸 발견한다. “사실 포장인쇄는 가장 보잘것없는 시장 취급을 받아요. 그런데 세 가지 시장 중 이 시장만 성장을 하더라구요.”

그는 원인을 파고들었다. 왜 하향세를 보이는 인쇄산업에서 포장인쇄 시장만 꾸준하게 성장을 하는 걸까. 원인은 택배 시장의 성장세 때문이었다. 택배를 많이 보내니까 관련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사실 처음엔 눈을 의심할 정도였어요. 이게 사실일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경기침체나 외부변수에 상관없이 택배 시장이 계속 성장하더라구요. 지표로 다 나와요.”

네이미에 있으면서 택배 시장에 완전 몰입하게 된 최원재 대표. 택배 분야가 왜 성장하는지 자료도 찾아보고, 기사도 읽어보면서 이건 될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바일쇼핑의 급성장이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 게다가 이제 모든 것은 집이나 사무실 등 실내에서 주문해서 받아보는 것을 선호하고 힘들게 돌아다니는 것을 귀챦아하는 풍조 때문에 모바일쇼핑을 필두로 한 온라인 배송주문이 갈수록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택배 물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관련 산업이 발달하는 것은 자명했다. 여기서 그는 택배 등 포장인쇄에서 택배와 배송 자체로 눈을 돌렸다.

그는 택배업이 성장과 함께 변화가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택배업이 여전히 11 대면배송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 언제까지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해봤을 때 곧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왜 꼭 만나서 물건을 받아야 하나?

그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왜 택배에서 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물건을 전달받아야 할까.”

물론 그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많은 무인택배보관함을 만드는 락커업체들이 난립해 있었다. 같은 문제의식을 일찌감치 갖고 택배업체들이 물건을 락커에 넣어 놓으면 나중에 사람이 찾아가는 구조가 기존의 락커방식이었다. 그는 이것이 틈새시장에 불과하다고 봤다. 택배 시장의 변화 관련,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락커를 만들어봤자 택배 물건의 종류에 따라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물건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무한정 크게만 만들 수도 없구요. 물량이 너무 늘어나니까 무인택배보관함 때문에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은 안되는거죠. ”

그럼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일단 사람이 직접 물건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는 건 기본. 하지만 락커만 갖고는 해결이 안된다면?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택배 시장의 현황은 어떨까. 200554000만 건이었던 연간 택배물량은 올해 18억건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루 택배 물량으로 따지면 147만건에서 500만건으로 늘었다는 것. 물론 평일이냐, 주말이냐, 명절이냐 등에 따라 물량은 크게 출렁인다. 명절 때의 경우 하루 1000만건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택배 기사는 같은 기간, 10년 동안 21000명에서 35000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물량은 3배가 넘게 늘었는데 이것을 전달할 사람은 채 2배가 늘지 않았다. 결국 택배 기사 1인당 배송 물량은 85건에서 170건으로 증가했다. 혹사를 하면서 배송 관련 잡음이 많아질 수도 있고 배송이 안되는 물품이 늘어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락커도 아니고, 대면 배송도 아닌, 물류센터 혁신에서 답을 찾았다. 즉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공유형 배송사서함을 만들고 여기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찾아가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락커와 다른 공간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물건의 크기와 상관없이 보관이 가능하다. 11 대면배송이 아니기 때문에 배송기사가 고객을 만나러 여러차례 왔다갔다 하고 집에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그 때문에 소비자들과 배송기사 모두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택배 전문업체와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이 모든 것을 플랫폼화하는 것이었다. 즉 배송센터를 만드는 게 다가 아니라 이를 고객과 배송기사 모두 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물건이 사서함을 통해서 오가는 현황을 온라인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이후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20127월 이같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출원한 뒤 바로 다음달에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글로벌유망IT기업에 지원, 선정됐다. 처음엔 네이미 내부의 한 사업부로서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선 독립 법인으로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10, 세 번째 창업법인, 파슬넷을 설립했다. 소포나 꾸러미라는 뜻의 ParcelNet을 더한 이름. 그리고 11월엔 정부 지원을 받아 실리콘밸리에 가서 현지 VC(벤처캐피털)와 창업기업들을 만나기도 했다.

질을 바꾸는 양의 임계점을 돌파한 택배시장

파슬넷은 제가 창업해서 만든 회사가 아니에요. 만들어진 회사죠.”

그는 자신의 창업 과정을 설명하던 중 문득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닌, 그냥 일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술술 진행됐다는 뜻이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뒤 3개월만에 특허출원하고 법인설립하고 사람들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때가 되면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것. 그게 파슬넷이 하는 비즈니스였다. “큰 트렌드에 올라타면 그렇게 됩니다.” 될 일은 된다는 뜻이다.

그는 IT기업의 성장 히스토리에 대한 그만의 평도 곁들였다. “흔히들 IT 기업은 기술력이 있어야 성공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술력도 중요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합니다. 비즈니스에는 질을 바꾸는 양의 임계점이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어떤 트렌드가 생겨서 산업의 질적인 측면까지 변화시키는 양의 임계점이 있는데, 지금 택배시장은 그런 임계점을 지난 것 같습니다.”

임계점을 지난 택배시장은 이제 기존 택배업체들이 기존의 방식, Door to Door로 물건을 고객에게 직접 가져다주는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증한 상태다. 모바일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파슬넷은 그래서 거점배송과 근거리 배송을 택했다. 그리고 이것을 모바일로 통합 관리하고 제어하고 확인하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배송기사는 배송기사용 앱으로, 소비자는 자신들을 위한 앱으로 배송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파슬넷은 미유박스라는 통합배송센터를 구축했다. 전국 3만여개에 달하는 아파트 단지 중 1%300개 단지에 일단 구축하는게 목표다. 현재 20개를 구축했다. 이 통합배송센터는 기존의 대면 배송, 고객의 방문확인 등이 모두 가능하다. 파슬넷은 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미유박스에 여러 택배회사들의 물건을 배송해 갖다 놓는다. 대면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직접 물건을 가져다주고, 배송센터에 방문해 상품을 찾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내 물건이 도착했는지, 고객이 물건을 찾아갔는지 등을 앱으로 다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면 혁신이라는 말을 쓰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파슬넷은 한걸음 더 나가 초단기 유통 상품을 위한 근거리 배송센터도 구축하고 있다. 중고물품을 사용자들끼리 배송센터나 미유박스를 통해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 예정이다. 근거리 창고는 음식이나 빨리 처분해야 하는 물건을 거래하는 데 적합하다. 내가 쓰던 가방이나 보던 책 등을 미유박스에 넣어 놓고 앱에 등록을 하면 그걸 원하는 사람이 결제를 한 뒤 비밀번호를 열고 찾아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프라인 유통의 근거리 배송망을 장악, 택배업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파슬넷의 사업계획에서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건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의 제공자, 미유박스.’ 가장 편하게, 가장 행복하게 물건을 찾고 상품을 받게 해 준다면 그 서비스는 반드시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슬넷은 그걸 알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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