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아직 일천한 한국 IT(정보기술) 산업 역사에서, 특히 창업사에서 조원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창업을 해 성공한 경험을 가진 매우 보기 드문 인물이다. 새롬기술을 창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이얼패드를 개발해 한국 인터넷 창업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에서 한 차례의 창업을 더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의 한국법인 대표를 맡기도 했다.

이런 쟁쟁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최근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나이 오십이 돼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는 그는 아직도 시도하고픈 아이템 리스트가 너무 많아 혼자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왕성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새롬기술과 다이얼패드, 구글 등을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이제 한국 벤처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있다.

새롬기술 창업 7

조원규는 한게임과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과 동갑내기다. 1966년생. 인터넷 발흥기의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세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영화인의 길을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영화에 빠져 지내는 나날이 많다. 어쨌든 그는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가려고 했다가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박사 과정 중이던 19937, 조원규는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이자 학교 선배인 오상수, 최진근, 최환익 등과 함께 새롬기술을 창업했다. 조원규는 새롬기술의 핵심 사업 분야인 소프트웨어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다.

오상수와 조원규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다만 때가 무르익길 기다렸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은 카이스트에서 만나 매주 한 차례씩 Portware라는 소프트웨어 창업 준비 모임을 가졌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은 정도가 아니라 사업 아이템과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첫 아이템으로 컴퓨터로 팩스를 주고 받는 사업을 생각해냈다. 컴퓨터와 통신이 연결되면 문서를 주고받는 일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상수가 5000만원을 조달하고 나머지 멤버가 5000만원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역삼동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돈을 못 벌면서 자금난이 심화됐다. 이들이 창업할 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비전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걸고 시작한 이들은 사무실 유지를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프린터 드라이버 개발 용역도 하고 홈페이지 만드는 작업도 대신 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팩스맨’(FAXMAN)이라는 문서 송수신 프로그램이 나왔다. 지금이야 문서를 이메일로도 보내고 웹하드나 구글드라이브 등에 공유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당시엔 문서를 원거리로 전송하는 게 쉽지 않았다. 팩스맨은 문서를 팩스로 보내듯 원거리로 송신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였다.

팩스맨을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일어났다.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새롬기술은 보이스맨, 데이터맨, 페이저맨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성장해 나갔다.

국내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새롬기술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조 대표는 당시엔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로선 해외 시장 진출은 숙명과도 같았다고 전했다.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오기 직전, 새롬기술 역시 해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고 있던 조원규는 해외 시장 개척팀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문을 두드린다.

다이얼패드와 구글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새롬기술 경영진과 초기멤버들은 얼마 안 돼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다.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평가절하)하고 국내 경기 상황과 함께 모기업의 상황도 크게 악화된 것이다.

갑자기 본사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끊겼어요. 어떻게 할지를 문의했는데, 일단 국내 상황이 어려우니 해외 팀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답변이 왔죠.”

본사 도움이 없을 것이 명확해지자 이들의 생존 본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새롬기술의 기존 사업 영역으로는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1997년에 처음 새롬기술의 해외 사업 개척 임무를 맡았던 안현덕, 조원규, 김도연 등 세 사람은 1998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된다. 아이디어는 김도연에게서 왔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에 인터넷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전화비는 내려가는 것을 본 김도연은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공짜 전화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을 구상했다. 조원규, 안현덕과 상의한 뒤 이들은 이듬해 19993월 한국계 투자회사로부터 자금과 사무실을 투자받아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 법인을 설립하고 그 해 1013일 제품을 출시했다. 인터넷전화의 대명사가 된 다이얼패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새롬기술과 별개의 법인으로 설립됐지만 이후 다이얼패드는 오히려 새롬기술의 중요한 사업이 된다. 한국에서 영업이 악화된 새롬기술이 다이얼패드에서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새롬기술은 실제 다이얼패드에 투자도 하고 국내외에 다이얼패드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다이얼패드의 사업성이 부각되면서 새롬기술 주가는 2000년 한 때 3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고객이 최고 1400만명까지 불어나고 투자자금을 6000만달러나 받았다. 직원 수도 170명으로 늘어나는 등 미국에서 급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에서도 다이얼패드에 투자한 새롬기술이 액면가의 640배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초 나스닥 붕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인터넷산업에 대한 실망감이 번졌고 다이얼패드의 수익성에 대한 논란, 제품 품질에 대한 불만이 확산됐다. 다이얼패드 미국 조직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조직 관리에 어려움도 많아졌다. 결국 창업 210개월만에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이얼패드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던 조원규 대표는 다이얼패드를 정리한 뒤 미국에서 오피니티란 인터넷 평판평가 업체를 창업했다가 2007년 구글코리아 연구개발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실리콘배리에서 창업을 하면서 새 출발을 한 지 만 7년이 넘어 8년에 접어들던 시점이었다.

새로운 출발, 스켈터랩스

그는 구글에 오면서 기대한 것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보는 거였다. 초기 구글코리아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너무 커진 거에요. 구글이 커지다보니 저는 신문 기사 한 줄 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내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워낙 거대하고 그 안에서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다른 일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구글에서 독려했던 20% 프로젝트가 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은 원래 업무 시간의 20%를 딴 짓을 하는 데 쓰라고 독려했었다. 그 시간에 구상된 새로운 아이디어, 독창적인 비즈니스, 엉뚱한 사업 계획이 구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는 구글의 창업가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 매출이 커지고 글로벌화되면서 20%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었다. “업무 시간에 다른 것을 구상해서 사업을 만들어도 몇 년 뒤에 고작 매출 1억 달러 정도를 올릴 뿐이에요. 벤처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엄청난 매출이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구글에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버린 거죠.”

구글에 오고 난 뒤 7년이 넘었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7년마다 새로운 일을 했더라구요. 때가 됐다 싶어서 나왔죠.” 20146월이었다.

그는 구글에서 진정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이번에 새롭게 시작했다. 그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 작지만 빠르고 능력있는 실행조직을 만들어 이들이 실험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이런 과정을 거쳐 다수의 스타트업을 배출해내는 것이다.

<스켈터랩스 창업멤버들. 오른쪽 두번째가 조원규 대표.>

의 뜻을 듣고 과거 다이얼패드를 함께 창업했던 막강한 인물들이 모였다. 김도연, 안현덕 등이 그들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박철준·홍용완씨 등이 설립한 창업기획사 앤드비욘드(&Beyond)에서 자금을 투자했다. 앤드비욘드 내부의 기술창업팀으로 시작했다.

조 대표 등 구글 출신 엔지니어 4명이 앤드비욘드 사무실 한 켠에 터를 잡았다. 열다섯 명 팀원 중 60% 이상이 엔지니어다. 회사명은 스켈터랩스(SKELTERLABS)로 정했다. ‘SKELTER’사방으로 흩어진다는 뜻이 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사방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가 스켈터랩스를 만든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 창업 생태계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글을 그만두고 한국의 창업 기업들을 돕는 한편 그들의 현실을 알기 위해 TIPS 심사위원을 맡았어요. 그런데 사실 너무 실망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벤처가 아닌 사업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냥 작은 시장에서 의미있는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그것은 기술 기반의 벤처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사업일 뿐인 거죠. 누군가는 제2의 구글, 페이스북을 만들어서 하키스틱(J모양) 같은 성장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 그게 벤처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인 겁니다.”

그는 한국에선 왜 글로벌 벤처가 잘 안나올까를 고민했고 A급 인재가 모이는 창업 플랫폼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A급 인재가 모이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대기업에 모여있는 A급 엔지니어들을 나오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지금 한국과 같은 방식이 되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들은 그냥 자금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금도 투자하지만 경험과 네트워크, 인사이트 등 방대한 분야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한국엔 파이낸스 투자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조 대표는 스켈터랩스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투자자-창업가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창업가는 실행하는 사람, 투자자는 목표 설정과 펀딩을 도와주고, 심지어 후속 투자까지 이끌어주는 존재라는 것. 창업가가 돈 구하러 뛰어다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일단 조 대표 본인이 스켈터랩스의 대표이자 이런 창업가 자신이 됐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켈터랩스 내에서 구체화해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스핀오프를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컴퍼니 빌더로서의 첫 프로젝트를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것이다. 그게 201412월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추가되고 추가돼 이제 프로젝트 4개를 바라보게 됐다. 프로젝트별 대표들은 기업가로서 해당 사업을 책임지지만 스켈터랩스는 컴퍼니빌더로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수행한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 배출해내는 컴퍼니빌더된다

썸데이(Thumbday)는 스켈터랩스의 첫 번째 아이템이지만, 조원규 대표가 갖고 있는 수많은 아이템 리스트의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대표 본인이 기획하고 직접 총괄 지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텍스트 입력은 싫어하는 자신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이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한다. 썸데이는 기록을 남기는 앱이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는 데 타이핑을 할 필요가 없다. 앱을 깔면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이 자동으로 등록된다. 이 친구들이 앱을 같이 쓴다면 자신이 남긴 기록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혼자만 보는 것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기록이고 다른 이들과의 공유는 선택 기능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을 하면 영화 항목을 관심사로 담고 같이 본 친구를 찾아서 추가하고 사진을 넣고 함께 저녁 먹으러 간 위치를 표시하거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여행 중의 기록도 엄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듯이 몇 번만 클릭하면 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를 입력할 필요는 거의 없다. 앞으로 하려는 일, 계획하고 있는 사안에 대한 기록도 가능하다. 이것 역시 주로 영상과 이미지, 위치 지도, 타임테이블 등으로 대부분 표현할 수 있다. 매 순간 기록을 남기고 이것이 축적되면 개인에게도 상당히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겠지만 썸데이 차원에서도 엄청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외부 활동(외부 손님과의 미팅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 많다. 기록을 그때 그때 남기고 싶어도 번거로워서 못 했던 사람들이나 스마트폰에서 글 쓰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외부 활동이 많지 않더라도 쓰임새는 얼마든지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즐겨듣는 책이나 음악 등에 대한 기록을 쉽게 남길 수 있다. 자신이 최근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간단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엄지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가능하다.

데이터가 쌓이면 차차 개인화된 추천 기능 등 추가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최근 Facebook SNS 에 지친 사람들이 탈 SNS 경향을 보이고 있다개인화 Application 에 대한 필요성 대두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by wonkis

*이 글은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의 스타트업 스토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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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 창업이다.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은 못 참는 성격이어서일까. 잠깐의 공백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아주 야무지고 똑 부러질 것 같은, 화장품 샘플 정기배송 서비스와 건강 관리 서비스를 했던 그녀가 이번엔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를 들고 나타났다.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스물한번째 주인공은 핀다(Finda)의 이혜민 대표다.

未生에서 創業家

대학 다닐 때는 외교란 분야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03학번이었던 학생 이혜민은 외교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외교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2005년 칠레로 떠났다. 당시 칠레와 첫 FTA가 처음 발효되면서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스페인어는 제대로 배웠을 것 같다.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인턴도 했다. 모두 외교 분야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선 진로가 달라졌다. STX 지주회사에 입사해 전략기획, 투자 등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은 힘들었지만 배우는 건 많았다. 공부도 많이 됐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인프라 투자 등의 일을 하다보니 성과를 보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일까. 이런 일들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대학생 시절과 사회 초년병일 때, 정체성과 미래의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그에겐 무척이나 답답했다.

막연한 직장 생활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라는 독일의 벤처투자 및 육성회사의 투자, 인큐베이팅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011년 회사를 나온 현재 꾸까 대표인 박춘화와 함께 공동창업을 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화장품 섭스크립션(정기 배송) 분야의 국내 최초 기업이다. 미국 화장품 정기배송 서비스인 버치박스(Birch Box)’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고, 매출도 늘어갔다. 관련 분야 산업도 급성장했지만 그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창업자 지분이 많지 않았던 데다 외부 투자자의 권한과 역할이 컸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냥 우리 힘으로 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2012년에 그만두고 나왔죠.”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네 번째 도전

두 번째 창업 아이템도 정기배송이었다. 다만 품목이 좀 달랐다. 이번엔 유아 용품으로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배송하는 서비스도 했다. 회사 이름은 베베앤코였다. 2012년에 이미 정기배송 분야의 사업은 성장세를 타고 있던 시기였다. 샘플을 팔던, 유통과정을 줄여서 가격을 낮추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가격 부담이 적다는 것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던 시기였다. 베베앤코도 당연히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 다만 문제는 창업자인 이혜민 대표 본인이 아이를 키우고 유기농 식단을 차리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그는 정세주 눔(Noom) 대표를 만나게 된다.

미국 뉴욕에서 워크스마트랩스라는 건강관리 관련 앱 개발회사를 차리고 한국에서도 사업 기회 확장을 모색하던 정세주 대표는 이혜민 대표의 잇따른 창업 경험과 인터넷 사업 분야에 대한 열정, 감각을 높이 샀다. 이때 정 대표는 미국 본사명을 눔으로 바꾸고 건강 관리 앱에서 건강 관련 종합 정보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며 한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눔코리아를 설립하기로 하고 이혜민 대표가 한국 법인 총괄을 맡았다. 내가 정세주 대표의 소개로 이혜민 대표를 만났던 것이 이 시점이었다. 2012년 가을에 두 사람은 로켓인터넷 방시으로 사무소 설립 실험을 해보자는 데 동의했다. 처음엔 3개월만 해보자였다. 남부터미널에 오피스텔을 구하고 눔코리아를 세웠다. 20151월 눔코리아를 나올 때까지 이혜민 대표는 약 2년 반 동안 건강관리와 다이어트 서비스의 한국화 및 수익모델 발굴을 맡은 한국 법인을 책임졌다.

이혜민 대표가 다시 새로운 창업에 나서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자신의 사업 경험에서 온 아쉬움이었다. 글로시박스의 경우 사명감이 부족했다는 생각, 베베앤코에서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가진 아쉬움이었다. 눔코리아의 경우 본사가 미국에 있고 한국법인의 대표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으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에 다시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기는 자신의 생활에서 나왔다.

눔코리아 시절에 결혼을 하고 집 문제 때문에 대출을 받거나 금융상품 가입을 위해서 이런 저런 정보를 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들거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정보만 잔뜩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나를 잘 모르다보니 시행착오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걸 좀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핀다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금융분야의 아마존 되겠다!

몇 달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혜민은 박홍민과 함께 공동 창업에 나섰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부동산 금융 석사학위를 받은 박홍민 대표는 금융알고리즘을 담당했다.

<핀다 공동창업자 이혜민(왼쪽), 박홍민 대표>

이들이 201510월 설립한 핀다(FINDA)는 영어로 금융(Finance)’과 한자어 ()’의 조합어다. ‘많은 금융상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외 다른 중의적인 의미가 상당히 많다. ‘웃음꽃이 핀다’, ‘구겨진 것을 핀다’, ‘웅크린 것을 핀다등 다양한 뜻이 있다고 한다.

핀다는 판매자와 구매자, 공급자와 수요자간 금융정보의 비대칭에 주목한 서비스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게 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비전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어렵고 골치아픈 금융상품 선택 과정을 도와주는 맞춤형 금융상품 매칭 서비스라는 게 이 대표의 공식 설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된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황까지 고려, 최적의 금융상품을 비교하면서 찾아주는 서비스입니다.”

핀다 사이트(www.finda.co.kr)는 지난 114일 문을 열었다. 주택매매대출, ·월세대출 그리고 목돈 모으기가 필요한 고객들이 주된 타깃이다. 시중 은행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융상품들 중에서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상품을 바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회원가입이나 신용등급 조회를 하지 않아도 가장 낮은 금리의 상품은 물론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찜하거나 가입했던 상품, 평점이 높은 상품 순으로도 볼 수 있어서 마치 호텔 예약 서비스와 같이 쉽고 유용한 것이 특징이다.

핀다는 기본적으로 직접 금융상품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금융사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보를 제공해준다. 금융사들 입장에선 마케팅 채널이 될 수 있고, 고객들 입장에서는 금융정보사이트가 될 수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선 핀다와 같은 온라인 금융 정보 서비스들이 활성화돼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고객들이 더 이상 지점에 방문하는 등의 번거롭고 불편한 대면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상품을 비교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바로 가입할 수 있도록 주요 통로역할을 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순 정보 제공 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고, 맞춤 설명을 들음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비대면전용 상품도 구성해 소비자들의 편의를 높일 계획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금융상품도 쇼핑하듯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겪었던 그런 불편함이 해소돼서 누구나 편하게 자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찾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궁극적으로는 금융상품 분야의 아마존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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