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幻泡影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고 환상과도 같으며 지나온 날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결국은 그림자만 남는다.

 중앙대 위정현 교수를 만나러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를 방문했던 어느 날.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했기에 정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오가는 학생들을 보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마침 대학 축제일이었나보다.한 쪽에선 기모노를 차려 입은 일문학과 여학생들이 ‘일문과 축제에 참가하세요’라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고,심리학과 남여학생들은 주점을 통째로 빌렸다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그 와중에도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메고 열심히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는 학생도 있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하교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축제일이라 그런지 내 또래도 있을 법한 대학원생들은 보이지 않았고,나 만이 그들 가운에 ‘이방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중앙대 재학중이던 여학생을 사귀었던 적이 있던지라 당시 중앙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건만,이날은 왠지 너무나 낯설었다.마치 처음 온 것 같았다.그 여학생의 얼굴도 이젠 떠오르지 않고,불과 10년이 안 되었건만 그 시절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나마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저 시절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나에겐 꿈이 있었을까.내가 그 시절에 남다른 무슨 아픔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래도 비교적 어려움 없이 유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다만 혼자 있어 고독한 날이 많았겠지만 원래 20대는 그런 것이 아닌가.다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정말로 이상할 따름이었다.저 당시에 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기억에 없단 말인가.

 첫 사랑은 오래 남는다던데,나에겐 그런 기억마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그러다 보니 이런 말이 떠올랐나 보다...夢幻泡影‘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고 환상과도 같으며 지나온 날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결국은 그림자만 남는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위정현 교수가 나타나 내 등을 탁 하고 쳤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요?’
 ‘아,그냥 학생들을 보면서,옛날 생각 좀 했습니다.’
  ‘나이 들었단 증거야.학교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가끔 계시거든.임기자도 어느덧 나이가 들었나봐.’

 학생들이 자주 애용할 것 같은 대학가의 밥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도,위교수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딴 생각을 좀 많이 했다.위교수께서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 것 같다.

 아무래도 그날 나는 좀 멍했다.그 식당의 분위기가 계속 나를 그렇게 몰고간 것도 크다.하필이면 그 식당에서는 요즘 학생들은 전혀 들을 것 같지 않은-내 생각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졸업’,‘거위의 꿈’ 과  같은 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왔다.유난히 대학 시절 좋아했던 노래들이었기에 가사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노래들.CD도 아니고 테이프로 앞뒤를 바꿔가며 들었던 노래들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국경의 남쪽,태양의 서쪽'에 심취하고 김소진 윤대녕 최윤 등의 소설책을 끼고 다니고 푸른하늘과 서태지에 열광하던 시절의 기억들.

 위교수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그렇게 골똘히 생각해도 나지 않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난 것이다.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식당에서 흘러나온 그 옛날 노래들의 역할이 컸다.

 그러자 문득 그렇게 골똘히 생각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좋은 기억들은 별로 없었다.

난 그렇게 살면 안됐던 것이다.

 사람이 자기에 대해 너무 무지하면 어떻게 사는지를 그 시절의 나는 보여주고 있었다.휩쓸려 살았다.고등학교 때야 미성년이었던 시기니 봐줄수도 있다고 쳐도 성년이 되고 난 뒤의 기억들마저,나에겐 끔찍했다.당시엔 분위기상 어쩔수 없었던 일이라 아무리 변명을 하더라도, 용기있게 살았어야 했다

 나에게 맞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데모 행렬을 따라다니고,그들을 따라다니지 않으면 찍힐까봐 두려워 마지못해 참석하고 괴로웠던 대학 초기 2년.그게 싫어 연애에 집착했던 것 같기고 하고 덩달아 학교에 대한 애착도 사라졌던 것 같다.내가 두려워했던 그들중 지금 연락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도 아무도 없다.이름도,얼굴도,그렇게 숱한 밤을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한 척 토론을 했던 대화 내용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다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 때는 그 사람들을 그렇게 원망했건만..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내가 좀 더 나에게 솔직했다면 나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내가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조금 더 용기있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찌보면 너무나 허무하기에 현재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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