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 Berkeley에 연수온지 어느새 훌쩍 2주가 넘었다.내가 미국에서도 아주 특이한 곳에 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렇지 않을거다) 여기와서 느낀 것은 정말 "미국에선 모든 것이 느리다"는 거였다.

성격 급한 나에게 이곳에서 가장 먼저 닥친 시련(?)은 이곳 사람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거였다.(그들보고 나에게 맞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인터넷이 아주 느리다.집에서도,학교에서도 무선 인터넷을 쓰고 있는데,체감 속도는 한국의 4분의 1 정도나 될까?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어지간한 용량의 파일은 아예 업로드/다운로드를 포기하고 있다.(그걸 하기 위해선 학교 도서관에 있는 데스크톱을 이용하거나 따로 유선을 신청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그렇게 해야 할 듯하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은 행정 절차다.미국에 처음 와서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보통 집 렌트,자동차 구입 및 등록,현지 운전면허,대학(원) ID,주 ID,Social Security Number,은행 계좌 등일텐데,하나같이 끔찍할 정도로 기다려야 한다.

Wells Fargo와 Bank of America에 은행계좌를 만들러 갔더니 내 이름이 프린트된 Checking이 집으로 오는데 2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지금 나랑 다 얘기하고 다 확인했쟎아? 도대체 앞으로 뭘 더 하길래 2주가 더 있어야 한다는거지?"
나를 상담해주던 은행원도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도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하하...한국식으로 말하면 직불카드란 것도 집으로 배달되는데 정확히 2주가 소요됐다.

아직도 상당수 가게에서 직불카드나 체킹을 요구하는 미국에서 은행계좌를 만들고 카드가 날라오기까지 2주 동안은 백달러짜리 현금을 여러장 들고다니는 '쇼'를 해야했다.(미국에서는 아직도 상점에서 100달러짜리를 내면 거의 범죄 용의자 취급을 당한다.매니저나 가게 주인이 나와서 돈을 불빛에 비춰보고 난리 법석이다)

운전면허는 아예 미국에 온 지 한달이 지나야 신청할 수 있고 시험을 보고 난 뒤 면허증이 오는 데만 해도 3-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당연히 난 아직 면허 신청도 못했다).자동차를 구입해서 등록하러 갔더니 등록하는데만 2주가 걸린다고 한다.(정말 이해가 안 가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Berkeley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서 실시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클래스를 다니다 우연히 프랑스에서 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재밌었다.

(Adonia) 미국에 와서 제일 힘든 게 뭐에요?
(나)속도요.
(Adonia)아,저도 그런데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군요!
(나) 아 정말요? 미국에선 정말 모든 것이 너무 느리죠? 느려터져 미치겠어요.
(Adonia) 앗! 그래요?? 저는 미국에서 너무 빨라서 힘든데...미국에선 모든 게 프랑스에 비해 너무 빨라요....
(나)헉...음...여기선 운전면허 시험을 다 보고 면허증이 나오는데만 3-4개월이 걸린데요.여기선 국제 면허증도 몇달씩 걸린다는데,한국에선 면허증 들고가면 15분이면 발급하거든요.
(Adonia) ㅎㅎ 프랑스에서 저는 운전면허 따는데 1년5개월이 걸렸어요.제가 시험을 떨어지거나 중간에 놀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근데 미국은 다 빠르네요,사람들이 식사도 빨리하고 뭐든 빨리빨리 해치우고 그런 것 같아요
(나) 혹시 그럼 프랑스가 그 유명한 농담의 진원지인가요? 가구점에 가서 가구를 구입하면 "나무가 준비돼 있다.다른 가게는 나무도 없다.우리가 제일 빠르다"라고 가게 주인이 말한다는..그리고 가구가 6개월후에 도착한다는..
(Adonia)하하 프랑스는 그 정도는 아니고,저도 유럽에 어느 나라가 그렇다는 농담을 들은 적은 있는데요..

하여간,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 같다.여기서 생활하면서 주민등록증이 나오는데 3주가 걸리고,운전면허 따는데 6개월이 걸리고,심지어 학생증을 만드는데도 3일이 소요되는 생활에 길들여지면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하다.(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그럴리 없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너무 바쁜,'이상한' 사람들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사람이 적응한다는 것은 무섭다.나도 어느새 여기 사람들의 (상대적으로)'느긋한' 일처리에 익숙해지고 있다."그래 뭐 굳이 그렇게 빨리 할 필요 없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그만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중간에 마음을 바꾸거나 취소를 할 기회도 있다는 뜻이다.

생활이나 행정절차는 놀랄만큼 느린 사람들이지만 머리는 비상하게 빨리 돌아가는 것 같다.내가 주로 대학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School of Information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행정 직원들의 경우에도 내가 별로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비상하게 기억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거나 약점을 지적하곤 한다.말의 논리적인 실수에 있어선 더욱 가차없다.그런 사람들이 행정 절차를 할 떄는 한없이 느려지는 것을 보는 것도 재밌다.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 엄격하고 빠듯하게 하지만 공식적인 업무나 남을 상대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문제에 있어선 한없이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여기서 받은 첫 인상이었다.이런 생활 리듬에 적응하는 것이 지금 나의 첫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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