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다음, 넥슨 출신들이 창업을 하는 사례를 이 코너에서 종종 소개했었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기업으로 성장한 이들 기업에서 실력을 쌓고 나온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한국 벤처 역사의 중요한 맥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나면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출신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카카오, 티몬, 쿠팡, 선데이토즈 등 성공한 신흥 벤처기업에서 경험을 축적한 이들이 그들의 첫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핀스팟은 그런 사례다. 대체로 이런 창업가들은 매우 단단하다. 비록 첫 창업이지만 확실한 자신의 분야가 있고 문제의식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성공한 벤처기업에서 생활하는 것을 마다하고 뛰어나온 것일 게다.

◆형의 권유로 티몬에 입사

정원준 대표는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부 04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전공으로 한 것은 스포츠산업 분야. 스타트업 창업가 중 그는 전공으로만 따지면 비교적 특이한 편에 속한다. 흔히 생각하는 그런 스포츠학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운동을 두루 잘했다.

당초에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직업을 찾으려고 했다. 재학 중에 수상스키 강사 자격증도 땄고, 배 운전면허를 딴 것도 그 분야에서 나름 길을 찾으려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레저 관련된 일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이 분야가 아직 미진하다는 걸 느꼈다. “이런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엔 국내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업체에 취직을 해서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재학중 KT&G 등에서 인턴도 해 보고 기업 근무 경험을 쌓던 그는 어느 날 친형으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합류하고 싶은 그런 회사가 있거든? 거기 네가 지원해보면 어떨까? ”

형은 대기업에 취직해 속칭 ‘잘나가고’ 있었다. 그런 형이 하는 말이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형이 말했던 회사가 티몬(티켓몬스터). 당시 티몬은 신현성 사장을 비롯한 5명의 창업멤버가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2010년.

스물여섯이었던 정원준 대표는 티몬에 지원해 입사했다. 형의 말을 듣고 입사를 결정한 것도 놀랍지만 막상 들어간 뒤로는 그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만약 티몬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티몬은 그의 이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원준 대표(앞줄 왼쪽)와 핀스팟 창업 멤버들>

◆성공한 창업가들을 보며 꿈을 키우다

티몬에 들어가서 그가 한 것은 지역확장 업무. 다른 쇼핑업체와의 제휴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가 입사해서 일했던 2010년에서 2013년의 시기는 티몬이 한국의 대표적인 소셜커머스 회사로서 급성장하던 시기. 이 시기에 일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하는 이 벤처기업의 성장통을 함께 겪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자극이 됐던 것은 그와 비슷한 또래였던 티몬의 창업가들의 행보와 회사에서 만나 함께 일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행적이었다.

“티몬 출신들 중에 나가서 창업을 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가운데는 물론 잘 안된 경우도 있지만 자리를 잡고 꾸준히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많았죠.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창업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거죠.”

그는 3년 가까이 티몬에서 일을 하면서 얻게 된 경험에서 길을 찾았다. 한 사람의 일생에는 돌잔치를 비롯해 매년 돌아오는 생일 파티, 졸업, 결혼, 각종 축하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장소문제, 방법 문제 등으로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개선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면 사업이 충분히 될 것이라 생각했다.

2013년 여름 티몬에서 나와 브라이니클이라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한 그는 올 6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는 핀스팟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핀스팟은 pin과 spot의 합성어로 ‘공간을 콕 찜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간커머스 넘버1 된다

그에게서 공간커머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좀 생소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정 대표가 말하는 공간커머스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런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티몬이나 쿠팡, 위메프와 같은 소셜커머스업체들이 처음에 식당 할인쿠폰으로 시작했는데 이 역시 넓게 보면 식당의 한 자리를 돈을 내고 빌리는 것과 유사하다. 한 자리를 빌리느냐 전체를 빌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간이 반드시 식당이나 호텔 방, 건물 사무실 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나 헬리콥터, 배 등 운송수단도 그 안에서 뭔가 이벤트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국내 최초, 최대의 공간커머스를 지향하는 핀스팟은 이름에 걸맞게 이런 모든 공간을 다 빌려주겠다는 야심찬 사업계획을 갖고 출발했다. 쉽고 편하게 빌리고 싶은 공간을 검색하고 예약한 뒤 결제까지 할 수 있게 해준다. 힘들게 포털 사이트에서 돌잔치․회갑연 장소, 100일 기념 레스토랑, 세미나 장소, 학회 모임 장소 등을 찾아 헤메지 말고 핀스팟에 들어오면 원샷에 다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에 공간을 빌려주고 있는 업체들과 컨택해 이들의 DB를 구축하는 게 가장 급선무. 공간을 빌려주고 있는 수많은 업체 중 양질의 업체들로 DB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초기 서비스 안착을 위해 좋은 평가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100개의 공간을 확보했다. 서울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조만간 수도권과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장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가 서비스 설명을 위해 사이트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예약 및 결제가 됐다는 알림이 왔다. 11월 5일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매일 10건 이상 결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핀스팟을 시작하면서 정 대표는 일본의 space market 등 유사 서비스를 알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목적의 공간을 빌려주는 서비스는 해외에서도 드물다는 게 그의 설명.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공간대여업체들을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보면, ‘배달의 민족 공간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정 대표는 공간커머스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미팅을 하는 방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파티장이 될 수도 있으며, 또 회의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기존의 공간 대여업체들을 편하게 찾고 예약하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껏 찾지 못했던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발견해 업체와 고객들에게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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