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벌써 10년 가까이 알아왔건만,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뭐 이런 인사도 별로 필요 없다. 처음엔 약간 놀랐을 법도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마치 매일같이 본 사람을 대하듯이.

그는 그런 스타일이다.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날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시작한다. 그날 날씨가 어떻든, 오랜만에 만나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괜히 간보지 않고, 거침없이 하고 싶은 대화를 바로 나누는 것. 넥슨 창업자이자 이제는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범 전 넥슨 이사를 만나 간만에 수다를 풀었다. 이번에는 주로 그의 근황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상범 넥슨 공동창업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커피숍 직원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 전혀 닮지 않은 외모인데, 표정이 묘하게 닮은 듯 나왔다. >

요즘 투자를 많이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아예 전문적인 투자 회사를 차려서 하지는 않으시구요?

사람들이 저한테 종종 물어보곤 합니다. ‘왜 직접 게임 회사를 차리지 않으세요? 새로운 게임 업체 하나 하지 않으시겠어요?’ 뭐 이런 질문이죠. 넥슨이라는 게임회사를 창업한 것처럼 새로운 게임 업체을 창업하지 않느냐는 것을 계속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경험은 사실 이미 오래된 경험입니다. 예전의 경험이죠.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경험의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시대에 따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종종 예를 드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게 있어요. 예전에 바람의 나라 게임을 개발할 때였는데, 일본의 모 대형 콘솔 게임업체 사람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개발중인 게임을 보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런 거는 일본에서, 특히 우리 같은 게임 업체에서 돈 조금 들이면 다 살 수 있다. 다 쓸어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목에 힘 엄청 주면서 말이죠.

하긴 그들이 볼 때 게임이 얼마나 형편없었겠어요. 그래픽도 좋지 않고 게임 움직이는 것이나 여러 가지로 한창 발달해 있었던 콘솔 게임에 비해 별 볼일 없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온라인 게임에서 어떤 성적을 냈을까요.”

온라인게임에서는 대부분 실패했죠.

사실 온라인게임이 그렇게 급성장하고 많은 실적은 낸 것은 그래픽이 화려하고 콘솔게임보다 게임성이 훨씬 더 뛰어나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었어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은.

콘솔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이 뜨는 것을 보고 원인을 분석해봤다고 합니다. ‘아 사용자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온라인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구나.’ 이런 결론이 나왔죠. 그래서 이들이 콘솔게임에 채팅방을 만들고 대화가 가능하게 했어요. 그러면 콘솔게임이 온라인 게임 영역까지 먹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죠. 그냥 채팅창 흉내 낸다고 따라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의 수준이 아니었는데, 그걸 알기 힘들었어요.

모바일 게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앵그리버드가 뜨는 걸 보면서 많은 온라인게임업체들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런 걸 만들어야 하나. 그런데 만들어서 앱이 수백만 다운로드가 되도 연 매출이 20억원? 뭐 이런 수준으로 예상이 됐거든요. 그런데 이걸 만들려면 회사 내 핵심 개발자 몇 명을 투입해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거에요. 성공 가능성도 낮은 데 말이죠.

사실 예전에 잘 나가던 온라인 게임들은 여름방학 때 이벤트 창에서 경험치를 2배 드립니다 라는 문구 하나만 바꿔 넣으면 매출액 몇백억, 최소 몇십억이 달라지곤 했어요. 그런데 1년 내내 해서 고작 매출 20억 하려고 핵심 개발자를 전부 투입한다고? 그건 기존 게임업체들이 하기 힘든 거죠 그래서 모바일 게임에서도 결국 새로운 회사들이 들어가서 잘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투자를 할 때는 그래도 과거의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나요.

글쎄요. 게임 개발 뿐 아니라 투자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선데이토즈 초기 시절에 사실 투자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기회를 놓쳤죠. 이유가 있었어요. 소프트뱅크 벤처스가 투자 검토하고 그럴 때였는데 밸류 300억원 얘기 나오고 그럴 때였죠. 그런데 내가 만들면 50억원이면 되는데, 좀 비싸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투자를 못하겠는거요.

그런데 이건 사실 바보같은 생각이죠. 제가 다른 예를 들어 볼께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빵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하고 같이 길을 걸어가다가 내가 배가 고파서 거리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2000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제빵하는 사람이 자기가 만들면 300원이면 된다고 하면서 빵이 비싸서 사 먹을 수가 없다고 해요. 그러면 나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니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빵이 먹고 싶고, 좋아하는 빵을 마침 팔고 있고, 그 가격이 내게 비합리적이거나 가치에 비해 비싸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그냥 사서 먹는 거다이렇게요. 사실 이게 맞는 말 아닌가요?

그런데 나도 이런 걸 알면서 내가 예로 든 그 제빵사가 한 말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투자도 해 보니 제가 아는 분야에 투자한다고 돈을 벌고, 투자 결과가 좋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투자는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에 돈을 맡기고 나는 LP로 들어가고 그런 게 실적이 더 좋았어요.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투자한 분야는 별로 안 좋았죠. 업종 전혀 모르지만 회사 대표 보고 사람이 좋은 것 같아서 투자한 곳에서 수익이 더 잘 나왔어요.”

(참고로 그는 본엔젤트벤처파트너스, 스파크랩스, 케이큐브벤처스, 퓨처플레이, 포메이션8 7개 투자회사에 LP로 참여하고 있다. 2012년초 넥슨을 공식적으로 떠나면서 대부분의 지분을 정리했고 지금은 주로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은 20, 투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한 회사는 최소 100개가 넘는다.)

결제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결제가 많이 편해졌다고 하는데, 사실 전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제약도 많고, 아직도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 한국에서 모바일결제쪽은 너무 지지부진해서 한심해 보일 정도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알리페이를 쓰게 될 때가 와야 정부나 업계가 정신을 차릴 것인가. 잘못하면 온 국민이 알리페이로 결제하게될 지도 몰라요. 중국 은행에 계좌 터놓고 말이죠.

한국은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가 모바일 결제 분야의 발전을 다 막아버렸어요.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이런 방식이 15년전 처음 등장할 때는 결코 나쁘지 않았죠. 나름 훌륭한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뒤쳐져 버렸어요. 사실 해커들의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뚫는 사람들의 기술은 발전하는데 한국에서는 15년 전의 기술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그냥 그걸로 업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죠.

사실 서비스를 만들면 거기서 고객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결제를 안전하게 하고 이런 것은 다 업체들의 책임이에요. 왜냐? 그들은 고객의 결제와 거래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15년 전의 방식을 규제로 해 놓고 업체들에게 이걸 따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업체들이 그것만 잘 따라하면 고객 DB5000만개가 털리건 상관하지 않는다. 우린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어. 정부는 정부대로, 우리는 최선의 방식을 썼어. 어쩔 수 없어. 북한의 소행인가? 해커들이 너무 뛰어난 걸 어떻게 하겠어.

이건 업체들에게 이렇게 면죄부를 줄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죽어라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서비스를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외국에서 아마존을 통해 결제하면 깜짝 놀라죠. 이렇게 허술하게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왜 아마존이나 애플은 그렇게 편리하게 결제를 할 수 있게끔 할까요. 그들은 그럼 고객의 DB를 다 노출하고 맨날 털리는데도 그냥 그렇게 서비스를 하는 걸까요. 그들이라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겁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거에요. 하지만 외국의 정부들은 절대로 업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고객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은 업체들이 할 일입니다. 정부가 기준을 세워놓고 이대로만 하면 문제가 안생겨 이러거나 이것만 잘 따라하면 너희들은 아무 책임없어 이렇게 말할 문제가 아닌거에요.

애플이나 아마존은 서버 단에서,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시스템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 출신이시니 시스템을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사실 이것은 패턴을 읽어내는 문제에요. 카드사들이 국내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해킹이나 정보를 보호한다는 것은 이런 거에요.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국민카드가 항상 서울에서만 결제가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호주에서 결제가 됐다고 쳐요. 카드사에서는 바로 연락이 옵니다. 호주 간 거 맞냐 당신의 카드가 낯선 곳에서 결제가 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죠. 데이터 보호도 크게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력을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는 옛날 기준으로 낡은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고 업체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서로 면죄부를 줘 버립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죠.”

이메일 비밀번호를 끊임없이 바꾸라고 하는 것도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왜 고객이 이메일 비밀번호를 계속 바꿔야 하나요. 지메일을 봅시다. 소비자한테 그런 귀챦은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낯선 IP로 접속이 되거나 뭔가 패턴이 다른 사용이 읽히면 바로 집요하게 확인에 들어갑니다. 본인이 맞는지. 이런 게 바로 업체들이 할 일이에요. 그냥 비밀번호나 바꾸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말이구요. 이런 것은 실제 정보를 보호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봅니다.”

중국 쪽 서비스도 좀 보시는지요.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앱 중에 사실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습니다. 기존 주요 앱들도 보면 업데이트도 늦어지고, 별로 공을 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중국의 메신저나 지도 서비스 등을 보면 놀랍니다. 벌써 예전부터 내비게이션 안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 해 놓고 있어요. 지도 하나만 켜도 장소 확인, 길 찾기, 음식 주문, 전화걸기 등 모든 게 다 됩니다. 아까 결제 얘기 때로 그랬지만, IT는 중국에 벌써 뒤진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눈여겨 보시는 분야가 있다면요

“VR(가상현실)이 대세가 될 것 같아요. 지금 스마트폰 안들고 다니면 바보같은 느낌이 들 듯이 조만간 VR을 쓰지 않거나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시기가 올 것 같다. 이런 회사 하나 차리면 무조건 누군가 살 것 같아요. 분명히 대비를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분야인데 다들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죠. 그러니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 회사가 상당히 주목을 받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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