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은 그 어떤 시장보다 불신의 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거래를 하고 나서 누구라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신차나, 휴대폰 구매 시장도 그런 측면이 다분히 있지만 신차나 휴대폰 구매의 경우엔 속았다는 느낌이 가격에만 적용된다. 즉 가격적인 손해만 보면 된다. 그런데 중고차에서는 품질에 대한 불신의 벽도 굉장히 높다.

이처럼 가격과 품질에 대한 불만, 불신이 팽배한 시장이지만 거래는 엄청나게 이뤄진다. 불편하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중고차 시장의 거래규모가 신차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의 중고차 등록 대수는 346만대에 달했다. 167만대에 불과한 신차 등록 숫자의 2배를 뛰어넘는다. 중고차를 사고 파는 수요는 많은데 과정이 너무 불편하고 신뢰가 바닥이다. 불만이 곳곳에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딜러들에 의한 거래 관행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팜은 딜러를 배제한 중고차 거래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시도다.

신차 딜러에서 중고차 매매상으로

카팜의 창업자 박도일 대표는 푸조와 아우디, BMW 등 수입자동차 업계에서 딜러로서 일을 시작했다. “2005년에 처음 시작해서 2011년까지 수입자동차 업계에 있었어요.”

수입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할 때쯤 그는 그 업계를 떠난 것 같다. 그쪽 분야에서 별로 비전을 찾기 힘들었다는 설명. 최연소 과장이 되고, 항상 해당 브랜드의 전국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의 실적을 냈지만 영업이 설 자리가 없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영업맨이 가져가는 마진이 점점 줄어들고, 영업을 열심히 하는 메리트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일즈맨이라는 자신의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세일즈라는 직업이 언젠가, 그것도 좀 빨리 대체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었죠. 영업직이 미래에 사라질 것 같았어요. 꼭 신차 판매쪽이 아니더라도. 보험이든 뭐든. 핵심적인 것은 기술로 다 커버가 가능하고. 점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뭔가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 보면 BMW는 차에 대해 설명만 해주는 월급 직원을 뽑아서 배치하고 있습니다. 차 판매 실적 부담이 없는 직원이에요. 손님에게 차를 사라고 강권하지도 않죠. 그냥 친절하게 설명만 해 줘요.”

자동차도 그렇고, 보험도 그렇고, 전부 시장에 정보의 비대칭과 불확실성이 큰 분야다. 손님이 딜러나 영업사원을 잘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분쟁이 잦은 영역이다. 어느 순간 이런 분야에서 영업맨이라는 중간의 과정이 불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래서 중고차 시장으로 들어왔다. 물론 중고차 시장으로 넘어온 가장 큰 이유는 더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신차는 사실 사람들도 브랜드를 보고 사고, 영업사원도 브랜드에 힘입어 매상을 올립니다. 차가 잘 되도, 잘못되도 다 브랜드 탓이죠. 그런데 중고차는 그렇지 않아요. 영업사원의 역할이 크고, 매우 중요합니다. 세일즈맨에게 돌아가는 책임도 훨씬 크고요.”

중고차 분야에 와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차 영업을 하면서 비교적 꾸준히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만해지고, 세상에 겁 날 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고. “저는 밖에 나가서 막 계약을 갖고 들어오고 그럼 직원들이 이것을 처리하느라 바쁠 정도였어요. 정말 일이 잘 풀렸죠.”

중고차 매매를 한 지 3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일이 터졌다. 대금을 떼이는 일이 발생한 것. 그 때까지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수억원대의 돈을 떼이고 빚까지 지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형 비피닷컴

어려움이 닥치자 그는 다시 처음의 문제 의식으로 돌아왔다. 결국 딜러로 지내는 삶이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문제 의식. 그렇다면 자신도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또 다른 중고차 매매상이 되는 것 보다는 다른 시장을 창출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시장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다만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차 공유 서비스가 확산된다고 기존 렌트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쟎아요. 차를 공유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거죠.”
중고차 매매 과정의 불편함과 불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찾은 것은 기존 딜러(중고차 매매상)들과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 비용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 “중고차 딜러들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요. 여기서 비용을 줄이려면 딜러들 마진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딜러들도 힘들어지죠.”

중고차 딜러 출신이어서 그럴까. 그는 기존 중고차 딜러들과 경쟁해서 그들의 시장을 가져오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쪽 시장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란 판단. 대신 그는 소비자들간의 직거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 기존 중고차 딜러 없이 거래하돼, 딜러와 연계해서 하는 서비스처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직거래 시장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카팜을 만들면서 직거래 도우미라는 컨셉을 가져왔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미국 중고차 매매업체 비피닷컴(www.beepi.com)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비피닷컴은 온라인 중고차 거래 사이트인데, 기존 딜러를 통하지 않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서비스다. 더 비싼 값에 팔고, 더 싼 값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책을 모토로 성장하고 있다. 차량을 맡기면 30일 이내 책임판매를 보장해준다. 얼마 동안 걸릴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매수인과 매도인이 만날 필요도 없다. 딜러를 상대할 필요도 없다. 모든 과정을 비피닷컴이 다 알아서 해 준다. 그런데도 기존의 딜러를 통한 방식보다 더 차를 비싸게 팔 수 있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 수 있다. 운행 이력 보고서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차를 판매하겠다고 내놓은 사람도 차가 팔릴 때까지 그냥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사실 비피닷컴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이다.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 때문에 매력도가 크게 상승해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구매자가 구매 후 마음에 안들면 무조건 차 구매 비용을 환불해준다. 차를 사면서 들어간 각종 운송비 등도 다 돌려준다. 구매후 10일이 지나지 않았고 1000마일 이내로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든,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이유 불문하고 환불을 받을 수 있다. 환불을 했다고 해서 차량 판매자에게 다시 돈을 받아내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떠안고 알아서 판매를 진행한다. 정말 엄청난 서비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환불 정책을 실시하는데도 미국에서 비피닷컴에 실제로 접수되는 환불 요청은 1% 미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통제가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물론 카팜이 한국형 비피닷컴을 지향한다고 해도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은 도입하기 힘들다. 일단 취득세 등 차량 구매시 붙는 세금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검수와 소비자 편의 조치는 비피닷컴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

결제까지 해결한다

기존 직거래 방식은 딜러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에 비해 금전적인 이득이 더 있다는 것 외에는 전부 단점 투성이다.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온갖 서류작업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상대방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문제까지 있다. 서류 작업 및 차량 보증 문제를 해결해주고 결제까지 안전하게 해 주면 직거래의 문제가 상다부분 해소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거래가 늘어나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판단.

온라인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박 대표는 생소한 IT(정보기술) 분야의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아시아(FTA)의 패스트캠퍼스에서 창업 관련 수업도 들었다. 물론, 함께 창업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는 패스트캠퍼스에서 선데이토즈와 로켓오즈에서 개발을 했었던 엔지니어 박순우를 만났다. 신민호, 정준모 등이 합류하면서 창업 멤버가 갖춰졌다.

<카팜 창업자 박도일 대표(오른쪽)와 박순우 CTO>

카팜은 기존의 중고차 매매상들처럼 차량을 매입하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 중고차 유통이윤을 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금전적 이득이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핵심이다. 비피닷컴과 마찬가지로 카팜이 사실상 중개업체, 즉 딜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차량을 미리 매입하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보니 고정 비용이 적게 발생하기 때문에 마진을 낮추고도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이득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카팜의 시세분석 결과 평균적으로 판매자는 중고차 매매상에 판매할 때보다 약 7~9%의 높은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고, 구매자는 5~6% 정도 저렴한 금액으로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 판매 신청이 들어오면 중고차 성능진단평가사를 통해 정밀 점검, 가격을 제시하고 이 가격에 판매될 수 있도록 구매자를 찾아주는 것이다. 1월에 카팜(www.carfarm.kr)시범서비스를 시작했고 34일에 정식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카팜은 다만 거래시 약간의 수수료만 받을 예정이다. 현재 중고차 거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딜러가 개입되면 10%에서 15%까지 가격 차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카팜은 1.5% 안팎의 수수료만 받는 것을 모델화하고 있다.

그는 성장을 위해 금융부분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관리 직원의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고차 구매에서 불편함을 해소해주게 되면 궁극적으로 남는 문제는 금융이기 때문이다.

현재 딜러를 통해 거래하더라도 카드 결제를 하면 수수료율이 무려 8.8%에 달한다. 때문에 대부분 현금이나 캐피탈 할부금융으로 결제를 하는데 이자율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게 그의 분석. 카드결제나 캐피탈사를 통한 할부금융에서 이자율과 수수료율을 현실화할 수 있으면 금융 부분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편의가 완성될 것으로 보는 것. 아울러 카팜도 인력 구조가 끝없이 비대해지는 걸 막고 거래 규모 성장을 통해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카팜에서는 계약금만 카드 결제를 하고 나머지는 가상계좌를 통해서 계좌이체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딜러의 역할을 하고, 딜러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존 딜러와 직거래의 장점을 결합한 케이스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차를 매입하지도 않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제공하고 안전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도와주며, 모든 최종 결정은 소비자들에게 맡깁니다. 대신 거래 안전을 보장하고 차량 구매시 일정 기간의 보증도 진행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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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아직 일천한 한국 IT(정보기술) 산업 역사에서, 특히 창업사에서 조원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창업을 해 성공한 경험을 가진 매우 보기 드문 인물이다. 새롬기술을 창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이얼패드를 개발해 한국 인터넷 창업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에서 한 차례의 창업을 더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의 한국법인 대표를 맡기도 했다.

이런 쟁쟁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최근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나이 오십이 돼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는 그는 아직도 시도하고픈 아이템 리스트가 너무 많아 혼자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왕성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새롬기술과 다이얼패드, 구글 등을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이제 한국 벤처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있다.

새롬기술 창업 7

조원규는 한게임과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과 동갑내기다. 1966년생. 인터넷 발흥기의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세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영화인의 길을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영화에 빠져 지내는 나날이 많다. 어쨌든 그는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가려고 했다가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박사 과정 중이던 19937, 조원규는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이자 학교 선배인 오상수, 최진근, 최환익 등과 함께 새롬기술을 창업했다. 조원규는 새롬기술의 핵심 사업 분야인 소프트웨어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다.

오상수와 조원규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다만 때가 무르익길 기다렸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은 카이스트에서 만나 매주 한 차례씩 Portware라는 소프트웨어 창업 준비 모임을 가졌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은 정도가 아니라 사업 아이템과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첫 아이템으로 컴퓨터로 팩스를 주고 받는 사업을 생각해냈다. 컴퓨터와 통신이 연결되면 문서를 주고받는 일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상수가 5000만원을 조달하고 나머지 멤버가 5000만원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역삼동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돈을 못 벌면서 자금난이 심화됐다. 이들이 창업할 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비전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걸고 시작한 이들은 사무실 유지를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프린터 드라이버 개발 용역도 하고 홈페이지 만드는 작업도 대신 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팩스맨’(FAXMAN)이라는 문서 송수신 프로그램이 나왔다. 지금이야 문서를 이메일로도 보내고 웹하드나 구글드라이브 등에 공유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당시엔 문서를 원거리로 전송하는 게 쉽지 않았다. 팩스맨은 문서를 팩스로 보내듯 원거리로 송신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였다.

팩스맨을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일어났다.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새롬기술은 보이스맨, 데이터맨, 페이저맨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성장해 나갔다.

국내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새롬기술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조 대표는 당시엔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로선 해외 시장 진출은 숙명과도 같았다고 전했다.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오기 직전, 새롬기술 역시 해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고 있던 조원규는 해외 시장 개척팀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문을 두드린다.

다이얼패드와 구글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새롬기술 경영진과 초기멤버들은 얼마 안 돼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다.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평가절하)하고 국내 경기 상황과 함께 모기업의 상황도 크게 악화된 것이다.

갑자기 본사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끊겼어요. 어떻게 할지를 문의했는데, 일단 국내 상황이 어려우니 해외 팀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답변이 왔죠.”

본사 도움이 없을 것이 명확해지자 이들의 생존 본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새롬기술의 기존 사업 영역으로는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1997년에 처음 새롬기술의 해외 사업 개척 임무를 맡았던 안현덕, 조원규, 김도연 등 세 사람은 1998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된다. 아이디어는 김도연에게서 왔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에 인터넷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전화비는 내려가는 것을 본 김도연은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공짜 전화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을 구상했다. 조원규, 안현덕과 상의한 뒤 이들은 이듬해 19993월 한국계 투자회사로부터 자금과 사무실을 투자받아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 법인을 설립하고 그 해 1013일 제품을 출시했다. 인터넷전화의 대명사가 된 다이얼패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새롬기술과 별개의 법인으로 설립됐지만 이후 다이얼패드는 오히려 새롬기술의 중요한 사업이 된다. 한국에서 영업이 악화된 새롬기술이 다이얼패드에서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새롬기술은 실제 다이얼패드에 투자도 하고 국내외에 다이얼패드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다이얼패드의 사업성이 부각되면서 새롬기술 주가는 2000년 한 때 3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고객이 최고 1400만명까지 불어나고 투자자금을 6000만달러나 받았다. 직원 수도 170명으로 늘어나는 등 미국에서 급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에서도 다이얼패드에 투자한 새롬기술이 액면가의 640배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초 나스닥 붕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인터넷산업에 대한 실망감이 번졌고 다이얼패드의 수익성에 대한 논란, 제품 품질에 대한 불만이 확산됐다. 다이얼패드 미국 조직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조직 관리에 어려움도 많아졌다. 결국 창업 210개월만에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이얼패드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던 조원규 대표는 다이얼패드를 정리한 뒤 미국에서 오피니티란 인터넷 평판평가 업체를 창업했다가 2007년 구글코리아 연구개발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실리콘배리에서 창업을 하면서 새 출발을 한 지 만 7년이 넘어 8년에 접어들던 시점이었다.

새로운 출발, 스켈터랩스

그는 구글에 오면서 기대한 것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보는 거였다. 초기 구글코리아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너무 커진 거에요. 구글이 커지다보니 저는 신문 기사 한 줄 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내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워낙 거대하고 그 안에서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다른 일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구글에서 독려했던 20% 프로젝트가 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은 원래 업무 시간의 20%를 딴 짓을 하는 데 쓰라고 독려했었다. 그 시간에 구상된 새로운 아이디어, 독창적인 비즈니스, 엉뚱한 사업 계획이 구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는 구글의 창업가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 매출이 커지고 글로벌화되면서 20%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었다. “업무 시간에 다른 것을 구상해서 사업을 만들어도 몇 년 뒤에 고작 매출 1억 달러 정도를 올릴 뿐이에요. 벤처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엄청난 매출이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구글에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버린 거죠.”

구글에 오고 난 뒤 7년이 넘었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7년마다 새로운 일을 했더라구요. 때가 됐다 싶어서 나왔죠.” 20146월이었다.

그는 구글에서 진정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이번에 새롭게 시작했다. 그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 작지만 빠르고 능력있는 실행조직을 만들어 이들이 실험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이런 과정을 거쳐 다수의 스타트업을 배출해내는 것이다.

<스켈터랩스 창업멤버들. 오른쪽 두번째가 조원규 대표.>

의 뜻을 듣고 과거 다이얼패드를 함께 창업했던 막강한 인물들이 모였다. 김도연, 안현덕 등이 그들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박철준·홍용완씨 등이 설립한 창업기획사 앤드비욘드(&Beyond)에서 자금을 투자했다. 앤드비욘드 내부의 기술창업팀으로 시작했다.

조 대표 등 구글 출신 엔지니어 4명이 앤드비욘드 사무실 한 켠에 터를 잡았다. 열다섯 명 팀원 중 60% 이상이 엔지니어다. 회사명은 스켈터랩스(SKELTERLABS)로 정했다. ‘SKELTER’사방으로 흩어진다는 뜻이 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사방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가 스켈터랩스를 만든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 창업 생태계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글을 그만두고 한국의 창업 기업들을 돕는 한편 그들의 현실을 알기 위해 TIPS 심사위원을 맡았어요. 그런데 사실 너무 실망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벤처가 아닌 사업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냥 작은 시장에서 의미있는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그것은 기술 기반의 벤처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사업일 뿐인 거죠. 누군가는 제2의 구글, 페이스북을 만들어서 하키스틱(J모양) 같은 성장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 그게 벤처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인 겁니다.”

그는 한국에선 왜 글로벌 벤처가 잘 안나올까를 고민했고 A급 인재가 모이는 창업 플랫폼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A급 인재가 모이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대기업에 모여있는 A급 엔지니어들을 나오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지금 한국과 같은 방식이 되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들은 그냥 자금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금도 투자하지만 경험과 네트워크, 인사이트 등 방대한 분야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한국엔 파이낸스 투자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조 대표는 스켈터랩스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투자자-창업가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창업가는 실행하는 사람, 투자자는 목표 설정과 펀딩을 도와주고, 심지어 후속 투자까지 이끌어주는 존재라는 것. 창업가가 돈 구하러 뛰어다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일단 조 대표 본인이 스켈터랩스의 대표이자 이런 창업가 자신이 됐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켈터랩스 내에서 구체화해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스핀오프를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컴퍼니 빌더로서의 첫 프로젝트를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것이다. 그게 201412월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추가되고 추가돼 이제 프로젝트 4개를 바라보게 됐다. 프로젝트별 대표들은 기업가로서 해당 사업을 책임지지만 스켈터랩스는 컴퍼니빌더로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수행한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 배출해내는 컴퍼니빌더된다

썸데이(Thumbday)는 스켈터랩스의 첫 번째 아이템이지만, 조원규 대표가 갖고 있는 수많은 아이템 리스트의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대표 본인이 기획하고 직접 총괄 지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텍스트 입력은 싫어하는 자신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이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한다. 썸데이는 기록을 남기는 앱이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는 데 타이핑을 할 필요가 없다. 앱을 깔면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이 자동으로 등록된다. 이 친구들이 앱을 같이 쓴다면 자신이 남긴 기록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혼자만 보는 것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기록이고 다른 이들과의 공유는 선택 기능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을 하면 영화 항목을 관심사로 담고 같이 본 친구를 찾아서 추가하고 사진을 넣고 함께 저녁 먹으러 간 위치를 표시하거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여행 중의 기록도 엄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듯이 몇 번만 클릭하면 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를 입력할 필요는 거의 없다. 앞으로 하려는 일, 계획하고 있는 사안에 대한 기록도 가능하다. 이것 역시 주로 영상과 이미지, 위치 지도, 타임테이블 등으로 대부분 표현할 수 있다. 매 순간 기록을 남기고 이것이 축적되면 개인에게도 상당히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겠지만 썸데이 차원에서도 엄청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외부 활동(외부 손님과의 미팅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 많다. 기록을 그때 그때 남기고 싶어도 번거로워서 못 했던 사람들이나 스마트폰에서 글 쓰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외부 활동이 많지 않더라도 쓰임새는 얼마든지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즐겨듣는 책이나 음악 등에 대한 기록을 쉽게 남길 수 있다. 자신이 최근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간단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엄지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가능하다.

데이터가 쌓이면 차차 개인화된 추천 기능 등 추가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최근 Facebook SNS 에 지친 사람들이 탈 SNS 경향을 보이고 있다개인화 Application 에 대한 필요성 대두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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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의 스타트업 스토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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