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정말 많겠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업 단계에서부터 꼭 함께 해야 하는 그런 사람과 팀을 이뤄 같이 창업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이고, 필수적인 인재를 채용하는 것도 힘든 일이며, 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조화를 이룬 팀 멤버로 창업을 했을 때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팀을 이룰때까지 마냥 기다릴수도 없는 법. 때로는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운이 좋으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때마침 채워줄 다른 좋은 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팀이, 새로운 회사가 탄생한다. 유쾌한 형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모인 유쾌한형제 창업멤버들. 왼쪽부터 김용주 이사, 전준수 대표, 김동욱 CTO, 이용길 대표>

◆미디어를 꿈꾼 뮤지션

현재 유쾌한형제의 대표이사 사장이자 최대주주인 전준수 대표는 음악을 좋아하고, 아이디어가 많고,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데 재능이 있는 인물인 것 같다. 영화 두사부일체의 타이틀곡 ‘꼬마달건이’를 작곡했고, 그 밖의 여러 음원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그의 첫 직장은 인터넷포털 다음의 검색광고 자회사인 나무커뮤니케이션. 2003년 나무커뮤니케이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전 대표가 검색광고 업무를 하던 이 시기는 한국의 인터넷산업에서 다음과 네이버, 야후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던 시기다. 1위였던 야후가 다음에게 자리를 내 준지 얼마 안돼 이번엔 네이버가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장, 성장하는 회사에 있으면서 본인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전 대표의 회상이다.  

 “2007년까지 나무에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이 검색에서 네이버를 도저히 못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를 나왔죠.”

 그는 2008년 자신이 직접 회사를 차렸다. 그가 배운 것이 검색광고였으니, 만든 회사도 광고회사였다. “첫달에만 매출 7억원을 올렸어요.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얼마 못 가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말을 아꼈지만, 계약을 잘못 체결한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2009년 1월 다시 코마스인터랙티브라는 광고회사에 들어가 광고부장으로 일을 했지만 곧 자기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2010년부터 그는 카덱스라는 자동차 정보 서비스를 만들게 된다. 처음엔 개인사업으로 시작했다. 자동차에 대한 진짜 정보를 제공하자는 게, 카덱스의 취지였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했다. 스튜디오에 취재기자, 촬영팀까지 갖춰놓고 제대로 했다. 카덱스는 미디어였다. 그리고 카덱스를 하다가, 사업상의 목적으로, 정말 우연히 ‘딩동뉴스’라는 화제의 앱을 개발한 팀을 만나게 된다. 이 팀이 이용길, 김동욱, 김용주였다. 

◆앱개발에 뛰어든 세 남자

고려대학교 경영정보학과 동창인 이용길, 김동욱, 김용주 세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껌딱지 같이 붙어 다니던 사이. 죽고 못사는 선후배사이인 이들의 공통점은 같은 과라는 것 외에도 함께 밴드동아리에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전준수 대표까지 유쾌한형제 창업자 넷은 모두 음악으로 한가락하는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사회생활을 했다. 김동욱은 네이버에서, 이용길은 IT개발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용주는 현대정보기술에 재직했다. 경영정보학과는 공대는 아니고, 경영대에 속한 과다. 즉 굳이 따지자면 문과쪽 전공인데, 이들은 모두 IT분야에서 일을 했다. 밴드 활동도 하고, 경영학과 공부를 하면서 이들은 틈틈이 공대쪽 수업을 들었고, 그냥 수업만 들은 게 아니라 코딩도 배웠다. 졸업하던 학기엔 대부분의 수업을 공대쪽으로 채우기도 했다.

 “개발사에서 일하면서 KT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들의 외주를 받아 일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내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얘기를 동기동창인 김동욱하고 한 거죠. 뜻이 맞아서 둘이서 낮에는 각자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만나서 우리가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만든거죠.”

 자,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딩동뉴스다. 딩동뉴스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한국에서도 열렸을 당시 초창기 화제가 됐던 앱이었다. “2009년 5월1일 개인사업자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2010년 5월24일에 딩동뉴스를 오픈했죠.” 개발자 두 명만 있던 이 회사에 2010년 7월 후배인 김용주가 합류했다. 김용주는 현대정보기술에서도 솔루션 영업을 하던 인물이라 기술비즈니스의 영업을 하기에 적합했다. 개발과 비즈니스 파트의 인력이 갖춰진 셈이 됐지만 사업을 할수록 이들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이 하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갖고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인데 서비스로 승부를 보기엔 콘텐츠가 너무 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신랑신부모여와 같은 커뮤니티를 만들면서도 이들은 콘텐츠 부족에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콘텐츠로 무장한 전준수 대표가 이들 앞에 나타났다. “원래는 같이 할 사업문제때문에 만났는데 서로가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겠더라구요. 한쪽은 콘텐츠가 부족하고 한쪽은 실력있는 개발자가 없고. 합치면 최강의 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겁니다.” 전 대표와 이 대표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개인와화 큐레이션

카덱스는 미디어였다. 하지만 미디어는 포털에 의존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다. 카덱스가 네이버에 콘텐츠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카덱스가 전문적인 사이트로 성장할 수는 있지만 독자적인 그들만의 고객을 모으고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개발하고 더 크게 성장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딩동과 카덱스가 합쳐진 이 회사는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돼 포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카덱스의 콘텐츠에 딩동뉴스의 개발진이 합쳐지면 안 될게 무어랴! 단 한 번의 전화통화와 만남으로 이들은 의기투합했다. 회사를 합치기로 하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유쾌한 것을 만드는 유쾌한 남자들이 되자는 뜻에서 유쾌한형제로 했다고 한다. 주가가 뜨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에게 모티브를 얻은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이들이 만든 ‘카넥트’(Carnect)는 일견 카덱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였다. 자동차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자동차 포털이라는 게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 단계 더 나갔다. 개인화와 큐레이션을 추구하고 있었다. 모바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카넥트는 기본적으로 온갖 자동차 정보를 담고 있지만, 이 앱을 다운받아 쓰는 사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하다. 그 사람이 어떤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지, 자동차의 주로 어떤 부분을 보는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클럽 코너를 통해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애호가들의 네트워크에 들어가거나 이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 포털에서 운영되는 수많은 자동차 클럽이나 동호회들이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돼 실제로는 잠재적인 소비자들에게 매우 배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일. 카넥트는 이런 클럽의 장벽을 낮추고, 클럽 활동이 사용자 뿐 아니라 제조사, 딜러 등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제조사나 딜러사, 딜러, 자동차 금융업체 등은 브랜드 광고 등을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자동차 업체 뿐 아니라 유관 분야, 즉 튜닝, 장비, 렌터카, 용품샵 등과의 제휴나 이들과의 연결도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시승신청부터, 견적, 보험견적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사용자를 확보하는 게가장 중요한 일. “일단 사람을 많이 모아야죠. 서비스 확대를 위해 투자도 필요하구요. 올 초에 엔젤투자를 받았고 이제 시리즈A 투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중고차 코너도 기획해서 자동차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장이 되고자 합니다.” 

by wonkis



TRACKBACK :: http://limwonki.com/trackback/641 관련글 쓰기

큰 병원, 종합병원일수록 힘들게 찾아가 오랜 시간 기다려놓고 정작 의사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물어보고 싶은 말은 끝도 없이 많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갖고 있는 수많은 궁금증의 대부분은 해결되지 못한다. 뒤에 엄청난 수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선생님의 준비된 멘트(?)만 일방적으로 듣고 병원문을 나서기 일쑤다.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심할 뿐. 그리고 꼭 해당 의사의 문제만이라고 보기도 힘들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자상하고 상세히 설명을 하고 싶은 의사라고 하더라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의료 현실, 즉 건강보험 수가나 의사의 수, 병실의 수 등을 논하는 것은 이야기를 너무 확대시킬 소지가 있다. 일단 이 정도로 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선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런 병원 진료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걸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선, 의료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제 개선을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불편해하면서도 이런 현상에 변화를 줄 만한 힘이 없다. 이걸 바꾸기 위해선 병원이 돌아가는 시스템 뿐 아니라 심지어 의료지식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헬스웨이브를 세운 의사, 정희두 대표다.

◆10년간 의사로 살다

록앤올 박종환 대표를 소개하면서, 내비게이션 분야에서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정희두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10년 넘게, 마치 운명이 이끌듯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하기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 과정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그만둬야하는 결단도 있었고, 불확실한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희두 대표는 의사다. 그것도 외과의사.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그는 의사로서 살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살아왔지만 그는 인턴으로서 첫 출발을 할 때부터 다른 길에 대한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외과의사는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찾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솔루션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안내해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죠. 커뮤니케이션이 하는 일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그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보람을 느꼈다. “외과 분야는 사실 상당히 심각한 내용이 많습니다. 상처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그런데 저는 직접 수술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그런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에게 문제의식이 없을 리 없다. 10년간 의료현장에서 그가 느낀 것은 한국의 의료현실이 지나치게 최종결과물에만 집착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최종 결과물은 물론 ‘완치’다. “모두가 완치에만 집중합니다. 병을 낫게 하는 분야에선 한국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병을 치료하면 되는거 아니냐. 그거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저는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중간 과정에 대한 설명이나 케어, 상담 등이 전혀 없다는 것. “수술했는데 재발했을 때 수술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암치료만 해야되는 거죠. 결과에만 집중한다면 그냥 이 환자를 외과로 보내면 됩니다. 또는 수술후 재발해 의학적 조치가 전혀 불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그냥 요양병원에 보내야하죠. 결과만 따지자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환자나 보호자는 정말 궁금한게 많죠. 다시 재발하는 건 아닌지, 치료에 얼마나 걸리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왜 병원을 옮겨다녀야하는지 등등. 그런데 못 물어봅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하기 힘들어요.”

 왜 그럴까. 물론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다.

 “한국의 대학병원들은 급성환자만 다룹니다. 즉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만 다루는 거죠. 그리고 그 환자들이 엄청나게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내용을 3분안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30분 동안 환자 10명이 예약돼 있거든요. 이 정도로 예약을 받아 진료를 하니 이 가격에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목적 달성에는 세계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중간 과정의 케어는 안되는 겁니다.”

◆환자와 의사간 매체를 만들자

매일 같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는 참 많은 생각을 했을게 분명하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환자들이 많아 그에겐 자신도 모르게 ‘연민’과 ‘공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의 성품이 유독 남달랐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이런 상태론 의사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문제였다. 남들보다 훨씬 오래 설명하고 이해와 동의를 구하면, 느릴수밖에 없다. 밤을 새워가며 설명을 한 적도 있고, 장장 사흘에 걸쳐 설득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내 가족이라면 수술을 하게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 가족들은 되레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술을 안했다가 나중에 상호간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일단 수술을 하고 보려는 심리가 있어요. 그런데 수술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거든요.” 결국 그는 이 환자에게 수술을 받지 않는 쪽으로 설득했다.

 수술보다 커뮤니케이션, 진료보다 상담과 케어에서 더 보람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2000년부터 서서히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 물론 그때 명확한 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을 하면 더 쉽게 이해하고 환자나 보호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는 처음으로 매체에 대한 생각을 했다. 환자들에게 병의 상태와 진료 과정 등을 알려주는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환경에 있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공보의로 있으면서 의료계의 이원복이 되자는 생각도 했었죠. 먼나라 이웃나라 있쟎아요? 그런 것을 저도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는 대학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홍보부장을 맡아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공보의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 그런 그의 실력을 알고 정부에서 의뢰를 해 공보의 시절 대국민 홍보카툰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만화 그리는 실력때문에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형병원일수록 병의 개념과 치료, 검사 동의서 및 이에 필요한 설명 등을 자세한 설명한 자료가 다 있었어요. 저는 그걸 알고 있었죠. 그 원자료를 갖고 만화를 그리거나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정말 쉽게 환자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충북 음성 보건소에서 공보의로 있던 2003년, 조류독감이 전국을 강타했다. 마침 조류독감이 처음 시작된 곳이 음성 보건소 관할 지역이었다.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공동으로 조류독감의 대처법 등을 알리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일을 했어요. 그게 경험이 됐죠.”

 조류독감 애니메이션은 그에게 실전을 방불케 한 기회였다. 이 애니메이션때문에 그는 공보의들 사이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이 덕에 충북대 의대 교수팀과 공동작업을 할 기회도 생겼고, 연구 과정이 전해지면서 충북대 의대엔 애니메이션 연구팀도 신설됐다.

 준비를 하고, 반응까지 확인한 그는 공보의를 마치고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에서 1년여간 연구교수 생활을 한 뒤 2009년 5월, 헬스웨이브를 창업했다.

◆파산 직전에 투자를 받다

정 대표가 염두에 둔 것은 병원들이 갖고 있는 각 질병에 대한 3000개의 원천자료. 이 자료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아주 쉽게, 비교적 짧은 시간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생각이었다. 이 애니메이션 역시 일종의 의사가 제공하는 처방전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Information Transcription(설명처방)이라는 말이 별도로 있다.

 정 대표는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의사들의 전자차트에 넣는 게 핵심이라고 봤다. 우선 이 처방전을 이해해야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줄 알아아하며, 전자차트에 넣어서 작동하게끔 해야 했다. 의학적 지식과, 애니메이션 분야와, IT(정보기술) 분야의 지식까지 다 있어야 한다!

 헬스웨이브를 차리기 전 그는 오래전부터 닥터두애니&일러스트라는 회사를 차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해 왔다. 사실 2009년에 차린 헬스웨이브는 애니메이션이 전자차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하는 회사다. 정희두 대표는 2010년 두 회사를 합병, 헬스웨이브로 합쳤다.

 하지만 사업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우선 전문의가 참여한 고품질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병원들도 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니메이션 사용료 정도는 내겠다는 의지는 물론, 예산도 없었다. 

 파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수차례 거듭하던 중 기적같이 투자자를 찾았다. 유전체 분석업체 마크로젠 서정선 회장이 헬스웨이브의 잠재력을 보고 7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때마침 국내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병원들이 차츰 디지털 콘텐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2011년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삼성서울병원, 강남차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월 500만원 안팎의 이용료를 내고 헬스웨이브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병원이 20여개까지 확대됐다. 

 헬스웨이브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인 대표적인 서비스다. 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한번 보여주자 금방 이해가 됐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에게 수십번을 물어봐야 알 만한 내용이지만, 헬스웨이브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환자는 의문을 해소해 만족감이 높아지고, 의사는 보다 진료 행위에 집중하면서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픈 스튜디오 준비

 헬스웨이브의 사업은 글로벌 시장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의료 지식의 내용이나 의사·환자 사이의 소통 스트레스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료진들은 올해 초부터 헬스웨이브와 시범사업으로 헬스웨이브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의 유명 병원 의료진들도 시범 서비스에 참여했다. 

 “사실 국내에선 리베이트로 의심받을까봐 광고 기반 사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지만, 해외에서는 병원과 환자들에게 의료 애니메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자금 측면에서도 호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스타트업 전문투자사 케이큐브벤처스가 헬스웨이브에 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 시스템을 쓰겠다는 의료진이 많았음에도 자금이 부족해 사업을 확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로서는 날개를 단 격. 

 그는 이 서비스에 ‘오픈 스튜디오’ 개념도 도입할 계획이다. 즉 의료진이 자기가 원하는 정보 안내 프로그램 콘텐츠를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것. 환자 교육 자료를 의료진이 자유롭게 만들어 활용하면 의사와 환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직접 하기 힘든 의사들도 있기 때문에, 출판사 개념의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 이 출판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출판사다. 즉 제작사라고 할 수 있다. 의사와 병원 등이 소스를 제공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자료를 이 출판사를 통해 만들 수 있게 된다. 마치 저자와 책 판매 수익을 나눠갖듯이 이 애니메이션에 광고를 붙여서 수익을 나누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의 사업 계획은 거침이 없다. 2000년 이후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 길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14년간 준비한 셈이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중단하거나, 사업을 그만둘뻔한 위기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내공도 탄탄해졌다. 그리고 14년의 노력의 결과물은 이제야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저는 여전히 제가 의사로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딴 길을 고민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역시 의사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이 일 자체가 외과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 중에는 저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by wonkis



TRACKBACK :: http://limwonki.com/trackback/640 관련글 쓰기

◀ Prev 1 2 3 4 5 6 7 8 9  ... 317  Next ▶
BLOG main image
임원기의 人터넷 人사이드
인터넷과 그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블로그.
by wonki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34)
뉴미디어 세상 (117)
게임이야기 (66)
임원기가 만난 사람들 (55)
(책)네이버 성공 신화의 비밀.. (59)
夢幻泡影-삶과 꿈,살아가는.. (51)
책 다시보기 (23)
한국의 스타트업 (203)
San Francisco&Berkeley (29)
스타트업 소식 (10)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 (15)

달력

«   2014/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2,324,266
  • 1781,72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wonkis'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