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내가 말만 하면 모든 스마트기기가 아니, 전자제품이 척척 움직이고 반응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인식만 잘하고 그것을 변환하는 정보처리만 잘 되면 가능할테니. 한 걸음 더 나가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그런 IT(정보기술) 세상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 한편으론 ‘너무 편리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지 모른다’는 걱정도 하게 된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수많은 공상과학(SF)영화에서 보여졌던 그런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가까운 곳에서 관련 서비스들이 마구 나오고 있기 때문.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서 시작했던 음성검색이나 아이폰4S에서 처음 선보였던 시리(Siri)가 대표적이다. 

 막연하게 생각해도 앞으로 생활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 이런 기술은 아직까지는 해외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 미국 회사들이다.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력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앞서 나가는 이런 외국 업체들과 맞짱을 뜰 만한 한국 기업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이알로이드는 이처럼 아주 드물지만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회사다. 이 회사를 설립한 이상호 대표는 2010년 12월 NHN이 네이버 모바일 앱에서 음성검색 서비스를 출시했을 때 그 서비스를 만든 4명 중 한 명이었고 이들 중 가장 선임자였다. 그는 사업에 잔뼈가 굵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면,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뭔가 아주 큰 계기가 있었거나 자신감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음성 검색

이상호 대표는 국내에서 100명이 채 안될 것으로 추산되는 음성 검색 기술 관련 전문가다. 특이한 전공을 한 셈이다. 동국대학교 전산학과 89학번인 이 대표는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자연어처리를 전공으로 했다. 그가 음성 검색과 관련된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게 된 것은 1995년부터.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그는 전공으로 음성합성을 택했다. 졸업후 LG전자를 간 그가 일한 곳은 음성인식팀. LG전자에는 이미 그 때부터 음성인식과 관련된 팀이 있었다고 한다. 음성 합성, 즉 text를 voice로 바꿔 기계가 인간처럼 말 할 수 있게 하는 운율생성 기술을 전공으로 했던 그가 음성 인식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LG전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공교롭게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검색의 필수인 자연어처리, 음성 합성, 음성 인식을 모두 터득하게 됐다. 

 이 대표가 음성 합성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기로 한 것에는 아주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재밌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고 한다. 

 “벌써 20년 전부터 음성 인식, 음성 검색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 나와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엔 기술적으로 처리할 만큼 중앙처리장치의 속도가 빠르지 못했고 관련 음성 DB(데이터베이스)도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음성 합성을 통해 기계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운율을 생성할 수 있다면 재미도 있고, 쓰일 곳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음성 인식을 상업화하는 모델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함도 많았다. 시장은 아직 멀어보였다. 2004년 LG전자를 나온 이상호 대표는 한국산업기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교수생활을 하던 시절, 국내에서 NHN의 검색 포털 네이버가 다음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해외에서는 구글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아직 늦지 않았으니 검색 분야에 다시 도전을 해 볼까”는 생각을 하던 차.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였다.

 2005년 장병규 사장은 검색 기술 개발업체 첫눈을 설립하면서 이상호 대표에게 함께 하자고 했다. 첫눈에 합류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달라졌다. 검색 기술을 개발하는 일을 직접 하고 첫눈에 NHN에 팔리면서 그는 NHN에서 본격적으로 검색 업무를 맡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의 전공 분야에서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네이버 음성검색을 만들다

NHN에 있던 2010년 7월. 이준호 NHN CTO가 ‘음성검색 기술을 새로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상호 대표를 비롯, 4명이 투입됐다. 4개월여의 기간동안 씨름한 끝에 그해 말 네이버 음성검색이 나왔다. 물론 네이버에서는 그 이전부터 음성검색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품질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이상호 대표팀이 만든 음성 검색에 대해선 외부의 평가 뿐 아니라 그도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훌륭했다.

 “제가 석사 1학년때인 1993년 IBM에서 인터넷문서를 통계적 방식으로 돌려 번역을 하는 그런 Frame에 대한 논문이 나왔어요. 그런데 사실 처음에 그걸 봤을 때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죠. 통계만으로 가능할까 싶었던 거에요. 당시에 그만큼 DB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죠. 그런데 그 뒤로 20년이 흐른 지금은 아직 완벽하진 않더라도 인터넷에서 쉽게 문서를 번역할 수 있거든요. 당시의 이론적인 틀이 그대로 구현이 된 셈이죠.”

 그가 볼 때는 음성 인식, 음성 합성, 음성 검색도 마찬가지다. 결국 결과물은 통계로 결정된다. 통계를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다. 20년 전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조건이 다 갖춰졌다. 진짜 음성검색을 해 볼 만한 시기가 된 것이다.

 “20년 전에는 리얼타임의 10배 원칙이 적용됐었죠. 즉 2초동안 말하면 그것을 인식하는 데 20초가 걸렸던 거에요. CPU 성능때문이기도 하고 단말기의 문제도 있었죠. 그런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통계를 돌릴 만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음성 검색이 가능해진 거에요. 단말기에서는 음성을 수집만 하고 실제 음성 인식 및 합성은 서버에서 다 이뤄지면서 오늘날의 음성 검색 서비스가 완성된 겁니다.”

 네이버에서 제대로 된 음성검색 서비스를 만든 이상호 대표. 2011년엔 아이폰이 시리를 출시하면서 음성인식과 관련된 서비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로서는 본격적으로 실력발휘를 할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돼 회사를 나왔다. 왜 그랬을까.

 “NHN이 예전만큼 음성 검색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어요.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기술을 모든 사람이 쓰는 것을 보고 싶었다

‘내가 만든 기술이 사람들에게 널리 쓰이고 싶다는 것. 그것을 책임지고 해 보고 싶다는 것’ 이것이 이상호 대표가 NHN을 박차고 나와 창업을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물론 시리가 나오고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는 것을 보며 “아 이제 시장이 열렸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중요했다.

  다이알로이드(Dialoid)라는 회사 이름은 대화(Dialogue)와 로봇(Android)의 조합으로 만든 말이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하는 로봇이란 뜻. 스마트폰에서의 음성 인식이나 검색 수준을 뛰어넘어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문맥을 파악하고 공감을 하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꿈이 서려 있다. 그래서 이 회사는 기술 개발에 올인한다. 구체적인 서비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게 제일 급합니다.”

 멤버는 이상호 대표를 비롯해 4명의 NHN 출신 개발자 등 총 5명으로 구성됐다. 9월에 1차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완성하는 게 목표다. 이 기술은 API형태로 공개된다. 이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하는 것은 다른 업체들의 몫이다. 

 과거 PC 시대에는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다. 명령어를 외워 입력하지 않으면 컴퓨터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대화를 나눌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이콘 방식으로 클릭하면 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가 나오면서 컴퓨터와의 대화는 좀 더 쉬워졌다. 터치형은 아이콘을 기반으로 하되 추가적인 부가물이 없이 바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 대세가 된 방식이다. 시각과 촉각 다음으로는 인간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음성기반의 유저인터페이스가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알로이드는 바로 이 대화형인터페이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한국의 아주 드문 벤처기업이다.

“최소한 한국어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어떤 회사가 만든 것보다 우수한 음성 인식 기술을 만들어야죠. 원천 기술만 확보하면 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다만 기본에 충실한 게 어려운 거죠. 인간을 유심히 탐구하면 답이 나옵니다. 결국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를 해 이를 컴퓨터에 가장 유사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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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훈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외모에 걸맞는 뚝심과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지난날이 말해준다. 아주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그쪽 한 분야에서 계속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그가 멋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그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005년 당시 NHN에서 한게임 본부장을 하고 있던 그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말했던 자신의 이야기, 어렸을 때의 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 등이 다시 떠올랐다.

 원래 나의 관심사는 좀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렇다. 남궁 대표는 지난해 CJ E&M 게임 부문 대표를 하다가 그만둔 뒤 1년 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그가 올 봄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왜 복귀했는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을 듣고 싶었다. 그가 예전에 말했던 자신의 오래된 소망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화는 뜻밖의 지점에서 시작됐다.

◆요즘 학교 다닙니다

“요즘에 학교 다닙니다”  대화의 시작은 학교였다. 

“학교? 강의하러 가시나요?”

“아뇨 공부하러 다닙니다”

남궁훈 대표는 서강대 교육행정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했단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 모교로 복귀한 셈이다. 학교는 왜 갔을까.

“제가 어릴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쟎아요. 선생님이 되기엔 지금은 좀 그런 것 같고 학교를 설립하려구요. 학교를 세우려면 교육행정을 좀 알아야할 것 같아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CJ E&M 게임 부문 대표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부터 장기 계획으로 학교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교로 복귀할 계획도 세우고 전공도 정했다. CJ에 있을 때 너무 많은 이슈가 한꺼번에 터져 거의 쉬지를 못했는데, 재충전의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한 듯 하다. 

그의 말을 듣고보니 예전에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할 때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남궁 대표는 대학에 입학한 뒤 택시 운전도 하고 해외 여행 가이드도 하고 한게임을 창업하고 미국 법인에 나가있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해 왔지만 선생님에 대한 꿈을 내려놓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세우고 싶은 학교는 고등학교. 그것도 게임 관련 학교다. 게임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단다. CJ에 있을 때 그는 유독 좋은 인재 확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 애착이 이제는 게임 학교 설립으로 옮겨간 거다. 게임 학교를 설립하려면 최소한 학교 행정에 대해선 알아야 할 것 같아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일한다는 게 얼마나 복인지 예전엔 몰랐습니다. 전문성을 가진 훌륭한 인재에 목마른 회사들이 많을 겁니다. 특히 게임회사의 경우 더 그럴 겁니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학교를 만들어 게임산업을 더 키우는 데 보탬도 되고 제 꿈도 이루고 그러면 좋죠. 하하”

◆너무 좋은 게임을 보고 참을 수 없었죠

물론 지금 당장 게임 학교를 설립하는 게 그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아니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게임업계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어쩌다 다시 게임업계에 복귀했는지 물어볼 만하다.

“저도 몰랐어요. 이렇게 다시 돌아올줄은. 학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박관호, 김남철 대표와 만나 게임 하나를 본 뒤 마음이 달라졌죠.”

 그때 박관호 대표가 ‘어떻게 생각하냐’며 슬쩍 보여준 게임이 바이킹아일랜드. 그는 이 게임을 보고 다시 가슴이 뛰었다. 이걸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박관호 대표를 찾아갔다. “이 게임 저한테 파세요. 제가 한번 해 볼랍니다.”

 그 말을 들은 박관호 대표의 대답. “우리 회사로 들어와서 같이 하시죠.”

 너무 좋은 게임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남궁훈 대표는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갔다. 그가 위메이드로 들어가면서 한게임을 공동창업했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카카오 관련 사업과 더욱 긴밀해지는 것도 그에게나 김범수 의장에게나, 새로운 시도다.

 2009년 미국에 있을 때 NHN USA 대표에서 물러난 남궁훈 대표를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스마트폰 게임 얘기를 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다니면 사람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임을 만들면 아주 큰 시장이 될 것 같습니다. 건강분야에 응용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데.”

 진작부터 스마트폰 게임을 해보고 싶어하던 남궁훈 대표에게 (그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박관호 대표가 게임을 슬쩍 보여준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사람에게 너무 좋은 콘텐츠가 눈 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제 첫 직장이 삼성SDS였는데 그때는 PC통신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등이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쟁은 곧 무의미해졌습니다. 인터넷이 나타나면서 PC통신 시장은 사라졌거든요. PC통신을 이용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네티즌들이 생겨났죠. 지금은 그 인터넷을 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이 PC 인터넷 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모바일 시대에 기회를 잡았다는 게 그에겐 중요한 것 같았다. 이미 PC 시대에 큰 수혜를 입었던 남궁훈 대표지만, 모바일 시대에 와서 다시 가능성을 발견했다. 행운아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분야에 매진하는 그에게 기회가 계속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행운이라면, 그 기회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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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살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의 창업과정, 그리고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모습에는 허영이 없었다. 영리한 젊은이들이다. MEEPLE을 만든 Tangible Idea 팀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우선 모았고 서비스를 잘 만드는 것에만 힘을 썼다. 창업자 모두가 아직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대학생들의 현실에 맞는 서비스 모델을 만든 것도 이들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아직 사무실도 따로 갖추지 않은 채 학교에서 만나 창업을 준비했고 서비스가 출시된 지금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말 그대로 진정한 ‘캠퍼스 스타트업’이다. 

◆가볍게 시작하면 오래 고민할 필요 없다

이들의 특징은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고, 실행이 빠르다는 것. 이들이 만나서 창업에 이르는 과정이 그랬다. 창업자인 변형규, 백인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영학과 07학번이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이름이 같은 ‘ㅂ’으로 시작하지 않았으면 만나기 힘들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았다.

 변형규 대표는 2세때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랐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했고 한국 대학에 오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그는 대학 입학에 필요한 정보나 인생에 대한 조언 등의 부분에서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백인균 대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때는 사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게 거의 유일한 목표처럼 생각하고, 그런 말을 주위에서 들으면서 살쟎아요. 좋은 사람이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었죠.” 백인균 대표의 말이다.

 학생이 많은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두 사람은 성이 ㅂ으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같은 반이 됐다. 사람은 겪어보면 아는 법. 나이는 변형규씨가 한 살 더 많았지만 과 동기인 둘은 금방 친해졌다. 그냥 좋은 친구를 넘어 함께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것도 생활하면서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안은 변형규 대표가 먼저했다. “고등학생들에게 친구 같고 선배 같은 대학생 조언자를 소개해주자” 이게 시작이었다. 백인균 대표가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대학생 멘토와 고등학생 멘티를 연결해주면 되겠네.”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변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 고반닷컴이라는 아르바이트 매칭 시스템 서비스를 운영하는 등 경영에서는 경험을 갖고 있었다. 백 대표도 경영학과이기 때문에 기술 전문가가 필요했다. 디자인 분야의 선수도 필수적이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류재성(22), 배성렬(22) 두 동갑내기가 합류했고 서강대 게임소프트웨어개발학과 최준혁(22)씨, 상명대 실내디자인학과 전소린(26)씨 등 대학생 6명으로 구성된 팀이 완성됐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포즈를 취한 백인균(왼쪽), 변형규 대표>

◆나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반을 넘어선 지금. 수많은 이들이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그것을 통해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나 꼭 필요한 조언을 듣기는 쉽지 않다. 수요와 공급이 서로 엇갈리면서 엉뚱한 소통에서 힘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통해 조언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게 변형규 백인균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나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한번쯤 살면서 생각해볼법한 그런 것을 고등학생-대학생간의 멘토링 서비스로 구현한 것이다.

 이들이 지난해 8월 말부터 개발에 착수, 4개월여 만에 완성한 앱이 미플(MEEPLE)이다. 아이폰용으로 먼저 나왔다. 학교포털과 연동돼 아이디를 입력하면 해당 대학교 학생인지 확인이 된다. 고등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을 악용하려는 이들을 차단하고 애초의 목적대로 건전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선 상호간의 인증 절차가 중요하다. 신고하기를 통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을 감시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멘토가 먼저 등록되면 멘티가 추천된다. 이 중에서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이를 승인하고 다시 멘티도 최종 확인하면 둘 간에 대화가 가능해진다. 

 한 사람의 대학생은 여러 사람에게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다.중고생 멘티들은 친구나 부모님, 선생님에게 얻을 수 없는 도움을 대학생 멘토에게 구해 어려운 점을 해결할 수 있고, 멘토들은 중ㆍ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을 살려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대신 멘토들은 포인트를 비롯해 여러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업화 모델은 사용자가 늘어가는 추세를 보면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중 안드로이드 버전이 출시되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가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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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과 인생을 건 모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여기 소개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트너가 있다. 동향 사람, 고등학교 친구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꼭 무슨 거창한 공통점이 있어야 뜻이 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 관계의 화학적 결합이란 이래서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수많은 우연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으로 인해 인생이 변하기도 한다. 하긴, 결혼도 인생을 건 모험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그닥 다르지 않다. 

 크라우드캐스트를 창업한 박성렬, 이홍규 두 대표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만났다. 서로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을 택해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미국의 좁은 한인 사회에서 서로를 잘 알게 됐고 각자의 실력을 지켜보면서 함께 하면 뭔가 해 낼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들의 동행은 한국에 와서 실현됐다. 새출발을 하기 위해 각자 잘 하고 있던 기득권을 버렸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들은 함께 뭘 하고 싶은 걸까. 

<크라우드캐스트의 창업자, 박성렬 대표(왼쪽)와 이홍규 대표>

◆직장 그만두고 한국 가자

코넬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던 박 대표가 뉴욕대(NYU)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이홍규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뉴욕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있을 때였다. 박 대표는 메릴린치에서 금융 분야의 일을 배우며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이홍규 대표는 기자의 꿈을 키워가던 학생이었다. ABC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던 이 대표는 졸업후 위성라디오업체에서 editor(편집기자)로 입사했다. 

 85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학생 때 만나 금방 친해졌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운명처럼,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조금씩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들어간 위성라디오 회사가 입사한 지 6개월여 만에 망했다.(정확히는 처음엔 재정난으로 부서가 없어졌고, 나중에 이 매체는 결국 다른 미디어에 흡수됐다고 한다) 기자의 꿈을 갖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그가 열심히 배운 일은 웹 프로그래밍이었다. 에디터로서 그런 역할이 주어졌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를 나온 이 대표는 외환트레이딩회사 FXCM에 들어갔다. 처음에 그는 웹사이트 구축과 관련된 일을 더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온라인마케팅을 배웠을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위한 컴퓨터 언어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된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무기들을 하나씩 갖추는 과정인 듯 하다. 2년이 지나 그는 MLB.com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추신수 선수가 활약하고 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온라인마케팅을 담당하겠다고 자청해 나섰다. “추신수 선수가 좋아서 시작했죠. 무엇보다 마케팅을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널리즘을 전공해 미디어에 대한 감이 있는데다 프로그래밍, 온라인 마케팅으로 영역을 넓히는 그에게 어느날 친구 박성렬이 찾아왔다.

 “미래가 보장된 안정된 직장 때려치우고 나랑 같이 한국 가서 사업 하자” 박 대표는 이 대표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당장 선뜻 확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좀 더 일을 배운 다음, 한국에 들어가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생각보다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Fab.com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박 대표가 창업을 생각한 것은 역설적으로 메릴린치에서 생각보다 쉽게(?) 돈을 벌면서부터다. “군 문제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야 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과연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날 들었죠. 왠만한 대기업에 들어가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죠.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그래서 젊을 때 원하는 것을 한번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건축을 공부하면서 그는 많은 실력있는 디자이너나 건축가의 작품을 접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상품을 사람들에게 판매하거나 알릴 공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미국에서 벤처기업 Fab.com이 만들어져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뉴욕에서 시작된 Fab.com은 역사상 가장 빨리 크고 있는 온라인 e-커머스 업체 중 하나다. 이른바 ‘디자인’ 소셜 커머스를 표방하는 이 사이트는 2010년 6월 서비스를 시작, 불과 5개월여 만에 300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Fab.com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용자 50%이상이 SNS(소셜 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유입되고 있기 때문.

 “그루폰에서 물건을 샀을 때 그루폰에서 샀다고 사람들은 말을 잘 못합니다. 하지만 Fab.com에서 좋아하는 디자인 상품을 샀을 때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소셜커머스에서 물건을 사는 이유는 싼 가격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질 좋은 상품일 때 패턴이 달라진다는 뜻이죠.”

 그는 한국에서 디자인 상품에 특화된 소셜커머스가 없다는 것에 착안, 친구 이홍규 대표를 설득하는 한편 자신은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다. 가격이 아니라 디자인을 내세우자, 소비자들에게 기존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갖고 어떤 상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자.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메릴린치에서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 5000만원이 자본금이 됐다. 2011년 9월 크라우드캐스트가 설립됐다.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공간

 “한국에 돌아와서 놀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세계 굴지의 저변을 가지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유통하거나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는 통로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된다. 무슨 뜻일까. 

 “예전엔 미술을 배우려면 유명 미술가나 유명한 미술 선생님에게 사사를 받아야 화가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요즘엔 한달만 배워도 포토샵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들은 한 달 배운 사람들과는 분명 다릅니다. 실력이 출중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죠.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전문가가 부각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해 봤어요. 결국 전문가들은 개개인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인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 처음엔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부터 시작하지만 확장되면 꼭 디자이너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고상한 작품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구매할 수 있는, 하지만 전문가들의 내공이 담긴 제품을 크라우드캐스트가 선보인 온라인 디자인 박람회 디블로(www.dblow.com)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그 전문가의 fan이 된다. 다음 상품이 나오면 fan은 이를 먼저 알게 되고 판매자는 자신의 상품 단골을 확보할 수 있다. 소셜커머스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은 120시간 동안 전시할인판매한다는 것. 다만 판매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걸고 판매한다는 점은 기존 소셜커머스와 다른 점이다. SNS를 더 활발히 쓴다는 것도 다르다. 

 이런 시스템이 되려면 좋은 전문가 집단이 확보되야 한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올려놓고 소비자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어야, 그리고 소비자들이 이에 관심을 보일만한 작품들이 있어야 한다. 준비 과정에서 좋은 디자이너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박 대표에겐 행운이었다. 박 대표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전문가는 잡지 ‘디자인’과 ‘메종’,  CJ브랜드샵을 거쳐온 강정원 현 ‘엘르 데코’ 편집 디렉터와 ‘행복이 가득한 집’ ‘마리 끌레르’ 등의 잡지를 거친 김윤수 편집 디렉터. 디자인, 패션, 스타일 잡지에서 경력을 쌓은 두 디렉터를  통해 디자이너, 빈티지 컬렉터, 사진가들을 만난 박 대표는 그의 아이디어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들을 보며 해볼만 하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박 대표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와 비전만을 가지고, 김명한 aA 뮤지엄 대표, 국종훈 세컨드호텔 대표, 박진우 ZD Lab 대표, 등을 설득시켜 디블로의 큐레이터 시스템을 완성했다.

 웹사이트 구축은 이홍규 대표가 올해 초 합류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디블로는 5월1일, 첫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는 공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5월 한 달 동안에는 팝업스토어 형태로 운영하며 한 번에 8개의 상품군을 올린다. 6월 공식 오픈 이후엔 매일 4가지 이상의 상품이 판매된다. 

 두 동갑내기 친구가 가진 포부는 제법 크다. 온라인라는 매개체를 통해 장인 정신과 감각으로 무장한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와 문화인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소개하려고 한다. 박 대표는 준비 과정에서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를 방문해 ‘한국’을 수출하기보다 ‘한국인’을 수출하는 것의 가능성을 봤다.

  “건축, 인테리어, 액세서리, 가구 등 디자인은 이미 현대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류가 단순히 연예인과 방송으로 접근했다면 이젠 아시아와 세계로 문화인으로서의 한류가 자연스레 스며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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