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들의 구성이 이 정도 된다면 아마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표이사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사업 기획과 영업까지 경험해 비즈니스 마인드가 확실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디자이너는 서로 절친이어서 신뢰가 깊다. 대표와 CTO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이면서 오래 알고 지내 호흡이 잘 맞는다. 이런 멤버들이 각자 열심히 경험을 쌓다가 모여서 창업을 했다. 뭔가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예감이 크게 빗나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회사는 카카오톡 게임하기에서 스타로 떠오른 ‘아이러브커피’를 만든 파티스튜디오다.

◆비즈니스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9학번으로 입학한 이대형은 입학 후 얼마 안 있어 선배인 김정주 넥슨 사장을 만난다. 김정주 사장이 넥슨의 초기작 중 하나인 ‘퀴즈퀴즈’를 알리고 후배들을 뽑기 위해 컴퓨터공학과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짧지만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봤는지도 모른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다날에 입사, 병역특례를 시작한 그는 처음엔 휴대폰 결제 쪽에서 자신의 전공인 프로그래밍 업무를 했다. 그때 그가 개발한 것이 ‘컬러링 플러스’라는 서비스. 자신의 상태를 문자로 기록해두면 부재시 전화가 왔을 때 컬러링(전화연결음) 서비스에서 자신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알려준다. 회의중이라던가, 운전중이라던가 등등. 서비스는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돈은 제법 벌었다. 통신사들이 이 서비스를 약정 조건에 일종의 끼워팔기로 집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뭐랄까. 좀 허탈했어요. 개발자로서 약간의 좌절감도 있었구요. ‘아무리 잘 만들면 뭐하나. 영업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죠.”

 2005년 병특은 끝났지만 그는 학교로 복학하지 않았다. 때마침 다날이 중국에 진출했는데 그는 중국지사 근무를 자청해 나갔다. 새로운 시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다날 중국지사에서 그는 결제사업을 총괄했지만 이때부터 엔지니어가 아닌 사업기획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중국 업체들과 결제 계약을 따내기 위해 특히 중국 게임업체들을 줄기차게 만나고 다녔다. 지금은 최대 게임 회사로 성장했지만 그때만 해도 게임에 막 입문하기 시작했던 텐센트와 일을 하면서 사업 기획을 하기도 했다.

 2007년 귀국한 그는 제이투엠소프트라는 게임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다. 내심 그는 게임 개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박종흠 사장이 이번에도 그에게 비즈니스 일을 맡겼다. 그덕에 그는 이번엔 제이투엠의 대표작 ‘레이시티’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비며 영업을 했다. “전 세계의 게임 전시회는 다 가본 것 같아요.”

◆환상의 창업팀

 2008년말 미국 게임회사 EA가 제이투엠을 인수하면서 그는 갑자기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제이투엠의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EA에서의 생활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벤처에 계속 있다가 글로벌 대기업에 들어간 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다가 시키는 일만 하는데 진력이 난 이대형은 답답한 마음에 2010년 EA 리크루팅을 자청해서 하다가 2010년엔 커피숍을 인수했다. 답답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직접 고객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에 눈뜬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진로가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커피숍 운영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는 것 같았어요.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그걸 느꼈죠.”

 사람들의 이런 로망을 실현하게끔 해주면 어떨까.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말이다. 게임을 만들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시장 상황을 살펴보니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이 앱스토어를 웹페이지에서 서비스하면서 소셜게임이라는 장르가 국내에서도 형성되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하지만 EA를 나오긴 쉽지 않았다. 4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기에 그냥 나올 경우 보유하고 있던 주식 상당수를 포기해야 했다. 잠깐 동안 그는 고민을 했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결국 그는 보유 주식 중 절반 이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회사를 나왔다.  

 창업에 대한 결심을 굳히자 사람이 떠올랐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2년 후배이자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위젯이라는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임태형이 생각났다. 이대형 대표 본인도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는 제이투엠 시절부터 창업을 하겠다고 곧잘 주위에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때 그가 내심 찍어놓고 있던 상대가 임태형이었다. “제가 볼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개발자입니다. 올림피아드 출신으로 실력은 미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죠. 저와 뜻도 통하니 더욱 좋구요.”

 임태형은 혼자 오지 않았다. 위젯에 있으면서 그와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했던 심정섭씨를 설득해 함께 왔다. 심정섭은 아트디렉터를 맡기로 했다. 비즈니스와 개발자, 디자이너로 구성된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창업진이 구성됐다. 서로 다른 장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터넷과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계속 일했다는 것도 이들의 화학적 결합을 용이하게 했다.

◆실전 경험을 녹였다!

이대형 대표가 소셜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던 시점은 사실 국내에서는 소셜게임이 이미 기울고 있던 때였다. 2011년초 법인을 설립하고 바로 게임 개발에 들어갔지만 하필이면 그 때는 싸이월드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국내 소셜게임 시장이 정체되던 시기였다. 당시 선데이토즈, 피벗스튜디오, 고슴도치플러스 등 소셜게임 개발사들이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활약하고 있었지만 돈이 안된다는 게 점차 입증되고 있었다. 싸이월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에게 돈을 쓰게 하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싸이월드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간단한 게임은 PC를 떠나 스마트폰에서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즉 시장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는 게 소셜게임의 진짜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파티스튜디오에게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기대치를 좀 낮추고 시작했습니다. 국내 시장은 테스트베트 정도로 하자고 했죠.”

 2011년 7월11일. 싸이월드 앱스토어에 아이러브커피를 출시했다. 자신이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겪은 노하우를 게임에 담았다. 그냥 커피숍을 운영하고 키우는 것에만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디테일을 살렸다. 사람들이 커피숍을 운영하는 것은 손님을 만나고, 서비스를 하고, 매장을 가꿔 나가고 커피를 만드는 그런 과정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커피숍 운영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손님이든, 주인이든 커피숍에 들어갔을 때 할 법한 행동, 동선, 과정 등을 충실하게 그대로 담으려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기울고 있던 시장에서 아이러브커피는 40만명 가량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시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선데이토즈가 겪었던 것처럼, 파티스튜디오 역시 사용자에 비해 수익이 나질 않는 시장을 보며 그해말 중국 시장에도 게임을 선보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자는 400만명이 넘게 확보했지만, 역시 돈이 되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대표는 확신했다. “모바일로 가자.”

◆진짜 승부는 해외 시장에서

사실 아이러브커피는 이미 검증된 게임이다. 돈을 비록 예상만큼 많이 못 벌었다고 할 지라도, 당시 이유 중 상당수가 플랫폼 문제라면 모바일에 와서 플랫폼은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해결해줬다. 판이 깔리면 준비된 자가 도약하기 쉬운 법이다.

 올들어 모바일 게임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콘텐츠가 탄탄하다는 장점을 앞세워 아이러브커피는 순식간에 스타 게임이 됐다. 2012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해 사흘 만에 일 매출 1억원을 찍었고 9월에는 일 매출이 2억원 가까이 치솟았다. “처음에 서비스를 하면서 3개월 안에 일 매출 1억원을 기록하는 게 목표었는데 그걸 사흘 만에 달성할 줄은 몰랐죠.” 20, 30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것도 주효했다. 현재 가입자 150만명, 일일 사용자수 70만명, 동시접속자 수는 13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러브커피는 시작일 뿐이다. 파티스튜디오는 차기작 개발과 함께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아이러브비트를 9월 중 비공개 시범서비스 형태로 시작하고, 연말께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 검토하다가 아이러브커피가 속칭 대박이 나면서 인력 부족 등으로 중단했던 프로젝트 아이러브팜도 10월 중 재개해 내년 2분기 중에는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 시장은 이미 어느 정도 판이 깔렸다. 아직 공개 시점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서비스업체를 정해놓고 논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10월부터는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러브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 시장은 이대형 사장의 궁극적인 지향점 중 하나다. 다날 시절에, 제이투엠 시절에, 그는 중국 시장을 계속 두드렸지만 실패를 맛봤다. 카카오톡 조차 나중을 기약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이대형 사장은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그에게 보약이 될 수 있을까.

 뮤지컬 ‘페임(Fame)’의 한 대사를 살짝 바꿔 인용, 이대형 사장과 파티스튜디오가 보여줄 모바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You ain‘t seen the best of him yet.”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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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디지에코(www.digieco.co.kr)의 '스타트업 스토리' 코너에 지난 주 실린 글입니다. 이정웅 사장과 선데이토즈에 대해선 2010년에 한 차례 작성한 바 있지만 2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내용이 추가돼 업데이트합니다. 기존 글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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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에 2012년을 기억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IT(정보기술) 산업에만 국한해 본다면 모바일 시장이 대폭발을 한 시기라고 역사에 남지 않을까. 마치 10여년전 PC기반의 인터넷 광고와 온라인 게임 시장이 급성장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 떠오를 정도로 2012년은 과연 언제 올까하고 수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모바일 분야의 급성장이 본격화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를 연 회사 중 가장 대표적인 회사로 이 글은 선데이토즈라는 한 벤처기업을 지목한다. 네트워크는 통신사가, 사람들 간의 연결은 카카오톡과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모바일 시대를 열었지만, 선데이토즈는 이 시장을 기대하던 많은 이들이 가장 목말랐던 이른바 순수 모바일을 통한 대박의 역사를 쓰고 있다.

 선데이토즈가 만든 스마트폰용 게임 애니팡은 카카오톡 게임하기를 통해 안드로이드 마켓에 출시한 지 5주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일일 사용자는 600만명을 돌파했다. 동시접속자수는 무려 200만명에 달했다. 동시접속자수 기록은 온라인게임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엄청난 숫자다. 선데이토즈의 또 다른 게임 아쿠아스토리도 모바일에서 100만명이 넘는 사용자가 즐기고 있다. 두 게임을 통해 이 회사는 매일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존 온라인게임을 기준으로 해도 이미 대박의 반열에 올라선 이 회사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제법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모바일 시대를 주도하는 회사로 떠올랐다.

◆첫 번째 결단=잘하는 것을 하자

선데이토즈 창업자는 이정웅, 임현수, 박찬석 등 3명. 세 사람은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00학번 동기생들이다. 세 사람은 학교 때부터 친했고, 자주 모였다고 한다. 학창 시절 친밀감이 있었기에 졸업 후 서로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도 계속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이정웅 사장은 트랙나인, 신텍정보시스템, NHN 등을 거쳤다. 병역특례로 군 문제도 해결하고NHN에서 4년간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 임현수 기술이사(CTO)는 고슴도치플러스, 엔씨소프트 등에서 일했다. 박찬석 운영이사는 T3엔터테인먼트에서 한때 국민게임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던 오디션을 개발했던 인물이다.

81년생 동갑내기인 세 사람은 각자의 회사를 다니면서도 연락을 해 자주 모였다. 처음엔 그저 친분이었지만 점점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계속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다 창업을 하자로 결론이 났다. “회사에서 참 열심히 게임을 만들었는데, 어차피 게임 만들 거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거죠. 만약 잘 안되더라도 잃을 게 많지 않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구요.” 그래서 그들은 2007년부터는 토즈라는 곳에서 만나 창업을 계획했다. 일요일마다 토즈에 모여서 창업 논의를 했다고 해서 회사 이름도 선데이토즈가 됐다.

비슷비슷한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저마다의 특색은 조금씩 있었다. 이정웅은 플래시게임을 3년 넘게 만들어와 작고 아기자기한 게임의 사이클과 운영 노하우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임현수는 소셜게임과 게임플램폼 전반에 대한 기술이 풍부했고 프로그래밍에 대한 전문성이 가장 뛰어났다. 박찬석은 캐주얼게임에 일가견이 있었다.

창업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장점은 셋 다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서로 말이 통하고 팀워크가 잘 된다는 점이었다. 반면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고 인맥이 제한돼 있고, 게임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선 모른다는 것은 단점이었다.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시장에 안착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정웅 사장은 이제 갓 서른의 젊은 사장이지만 서두르거나, 쉽게 흥분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창업할 때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했다고 한다.

 “게임 개발은 많이 해봤지만, 창업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니깐 내가 모르는 것은 하지 말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전념하자.”

그의 이런 생각은 다른 창업자들과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들이 잘하는 게임 분야에서, 특히 순발력있게 게임을 출시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보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장은 한게임에 있던 시절 1년에 50개씩 플래시 게임을 만들 정도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규모가 작으면서 재미있는 게임들을 끊임없이 계속 만드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은 게임을 빨리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소규모 게임들을 오픈플랫폼과 결합해서 승부를 자고 다짐한 게 출발이 됐다. 돌다리도 두세번 두드리고 건너갈 그런 스타일의 신중한 이정웅 사장이 첫번째 결단을 내린 것이다.

창업자 세 사람은 2년 동안 셋이서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성과를 확실히 낼 때까지 직원을 뽑지 말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확인된 이후 회사를 확장하는 것이 선데이토즈의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닥쳐온 실패

치밀한 계획, 자신의 재능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분석, 짜임새 있는 역할 분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데이토즈의 첫 작품은 실패하고 말았다.

 필자가 이정웅 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08년 겨울,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는 비즈스파크 행사장이었다. 그는 그때 ‘친구에게 게임을 만들어서 선물하자’는 컨셉트로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UCC(사용자제작콘텐츠)가 결합된 형태의 게임 비즈니스였다. 그가 소셜RPG(역할수행게임)이라 규정한 이 게임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비스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시도는 무참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왔다. 신중하게 시도를 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다행히 이들은 다 총각이었다. 책임질 누군가가 없었다. 그들 자신만 챙기면 됐던 이들은 첫번째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자 했다. “첫 실패를 겪고 나서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를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부족한 게 참 많더라구요.”

뭐가 부족했을까?

 “창업자들이 모두 개발자 출신이라는 게 일단 약점이었습니다. 제품을 만들 줄은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마케팅을 할 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고객 관리를 하고 서비스를 해 나갈지에 대해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소셜게임은 개발 이후의 단계가 중요한데 말입니다. 너무 큰 게임부터 시작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페이스북에 없는 것을 만들자’라고 한게 무리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선데이토즈 전략’이라는 것을 2009년 상반기에 수립했다. 첫 실패의 교훈이 반영된 게임이 ‘애니팡’과 ‘사천성’이다. 사실 기업체에 전략이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니었을까. 어쨌든 경영 경험이 없던 이들은 뒤늦게 회사의 중장기 전략, 단기 전술이라는 것을 한 차례 사업을 실패하고, 첫 시작을 한 뒤 1년이 훌쩍 넘어서야 수립하게 된다. 그래도 그 필요성을 알았다는 점에서 실패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대규모로 투자를 받지 않고 보수적으로 시작해 손실이 적었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다행이었다.

◆두 번째 결단=소셜 게임 1등이 되자

실패를 겪으면서 그들은 미국에서 일고 있는 소셜게임 열풍이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것이란 가정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미국에 나가서 승부를 걸려고 하면 너무 힘들다. 한국에서 우선 자리를 잡고 나서 해외 시장에 다시 도전하자는 게 이들의 결론이었다.

뼈아픈 실패를 겪고 나서 이정웅 사장은 두 번째 결단을 내린다. 한국형 소셜플랫폼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고 이 시장에서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존의 모든 게임 개발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아직 싸이월드 앱스토어가 구체화되기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시장이 열릴 거라고 본 거죠. 그래서 다 접고 한국 소비자들에게 먹힐 소셜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에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에 앱스토어를 연다. PC기반의 소셜게임 시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선데이토즈는 사이트가 오픈되자마자 소셜게임 애니팡, 애니사천성, 아쿠아스토리를 차례로 출시했다.

 싸이월드 앱스토어는 마치 선데이토즈를 위해 준비된 무대 같았다. 물고기를 키우는 단순한 게임인 아쿠아스토리는 국내 소셜게임 최초로 200만 회원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회원수를 늘려나갔다. 애니윷놀이, 애니사천성 등도 100만 회원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선데이토즈는 5개의 게임을 앞세워 국내 소셜게임 시장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성과를 냈다. 자신감을 얻은 이정웅 사장은 2011 1, 야심작 정글스토리를 출시했다. 아울러 정글스토리를 뛰어넘을 블록버스터급 소셜게임 개발에도 착수했다.

◆시장의 변화

이정웅 사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던 것은 이 무렵부터다. 아쿠아스토리, 애니윷놀이, 애니팡 등의 인기에 힘입어 무난히 안착하리라 예상했던 정글스토리의 초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아쿠아스토리도 회원수는 갈수록 늘었지만 수익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 정도 회원이 모이면 결제가 상당히 이뤄져야 하는데 번번이 그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표를 꼼꼼이 뜯어봤어요. 그랬더니 싸이월드 리뉴얼을 전후해 방문자수, 이용자수, 결제비율 등 모든 지표가 정체되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됐죠.”

회사 안팎에서 싸이월드의 리뉴얼 탓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정웅 사장은 국내에서 PC기반의 소셜게임이 벌써 수명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채 펴보지도 못하고 사용자들이 모바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갈까를 고민해 봤죠. 스마트폰이 1000만대를 돌파하는 등 확산되면서 스마트폰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PC앞에 앉아 소셜게임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사람들은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PC 앞에 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은 여전히 PC로 하죠. 하지만 간단한 게임을 하려고 PC 앞에 앉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싸이월드에 2011년 7월 대규모 해킹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 때문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좀 줄어들었고 결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장은 선데이토즈의 전략을 다시 한번 수정한다.

◆세 번째 결단=모바일에 올인

당초 이정웅 사장은 2011년 여름께 차기작을 PC용 웹 버전으로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전략을 전면 수정한다. 기존의 모든 개발 라인업을 중단한 것이다.

“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그것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전을 모바일용으로 완전히 바꾸기로 했죠. 선데이토즈의 최고 인기작인 아쿠아스토리를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두 번째 결단을 내릴 때와 상황은 유사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한 것은 분명했지만 돈을 벌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아직 너무나 초기인 시장에 또다시 모험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소셜게임으로의 전환 때 승부수를 던졌듯이 이정웅 사장은 이번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신작 개발을 중단하고 기존 게임의 모바일화 전환을 시도했다.

  문제는 모바일 경험이 아무도 없다는 것. 시행착오가 따랐다. 1년 넘게 좌충우돌하며 배우는 학습의 시기가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동안 모바일 시장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회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헤매고 있을 때 다른 회사들도 대부분 헤매고 있었다.  

“이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소셜게임으로 전환하던 시절에는 실패를 겪은 뒤의 결단이었기에 사실 잃을 게 없었어요. 그런데 모바일 시장을 맞이하면서는 비장함마저 있었죠. 약간의 성공을 거둔 뒤였기에 불안감도 더 컸구요.”

애니팡, 아쿠아스토리, 애니사천성, 정글스토리, 애니윷놀이 등 이미 기존 소셜게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던 게임 콘텐츠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바일용 앱으로 만들어 출시하는 것 자체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정웅 사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가장 자신있고 실패 위험이 적다고 생각되는 아쿠아스토리를 우선 앱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유료 결제 비율도 높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한방이 필요했다.

때마침 카카오톡이 게임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었다. 6000만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갖고 있는 카카오톡을 플랫폼으로 한다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수익 모델이 절실한 카카오톡은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다양한 게임들이 장점을 발휘하고 최대한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을 택했다. 이정웅 사장은 카카오톡의 특성상 간단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애니팡이 최적의 콘텐츠라고 결론짓는다.

730, 선데이토즈의 애니팡은 카카오톡의 게임 플랫폼 게임하기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한다. 약 일주일 동안은 잠잠했다. 점차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재밌다. 쉽다. 즐길 거리가 많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다운로드 1000만건 돌파, 하루 평균 게임 이용자수 6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신념'을 갖고 '실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렸다

이정웅 사장과 선데이토즈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대박의 초입부에 와 있다. 앞으로 거둘 수확이 더 많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설혹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기대만큼 그렇게 크지 않거나 선데이토즈가 예상만큼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이정웅 사장)에겐 다시 기회가 올 것이고 다시 도약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예상할 수 있을까.

이정웅 사장과 선데이토즈는 벼락 스타가 된 케이스가 아니다. 온갖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실력을 키워가면서 자신들이 실력발휘를 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매번 그들에게 기회는 왔고, 그 기회를 반드시 잡았다. 그 기회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크든, 작든 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다만 신념이 부족해 그 기회가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뿐이다.”


이정웅 사장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신념을 갖고 시장 변화에 대처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준비해왔다. 기회가 왔을 때 그가 누구보다 먼저 이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항상 성공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공을 한 과정은 그 이후를 짐작케 한다. 모바일 시대를 열어젖힌 선데이토즈에게 앞으로 더 큰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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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는 데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함께 꿈꿀 만한 비전과 목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레이삭스도 그랬다. 하드웨어 제조업체에서 시작해 외주 작업도 하고 다양한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오다 SNS에 도전하는 현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였다가 헤어지고, 아이템을 수정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창업자가 일관되게 사업에 대한 비전을 품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음악을 좋아한 엔지니어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기계정밀공학과에 입학한 ‘학생’ 이승이는 음악을 좋아했다. 연주도 좋아했지만 특히 음악 감상에 취미가 있었다. 첫 학기에 그는 음악 동아리방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한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그는 나중에 함께 창업을 하는 방무석을 만난다. 

 첫 학기만 마치고 그는 바로 군에 입대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20대 초반의 남성은 좀 다급해지기 마련이다. ‘매를 먼저 맞자’는 심정으로 그 역시 일단 군 문제를 해결하러 입대했다.

 제대하고 그는 학교에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라도 미국에 가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작은 결정이 그의 인생 진로를 바꿔놓을 줄을 그가 알았을까. 4개월짜리 어학연수를 갔는데 돌아가려고 하니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그는 귀국을 1년 늦추기로 햇다.

 1년의 시간이 주어지자 다시 주위를 차분히 둘러봤다. 그전까지 그는 다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미국 학생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Boston에 있었던 그는 현지 유학생들과 대화를 하다가 용기를 얻게 된다.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너도 이곳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너보다 훨씬 영어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구요. 그래서 그 말에 입학 준비를 시작했죠.”

 공부한 시간은 고작 6개월. SAT를 보고 서류도 준비할 게 많았다. 정신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반신반의한 가운데 결단의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 학교 복학 최후통첩이 온 것이다. 그동안 군대 등으로 휴학을 많이 해 더 이상 휴학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고 복학신청을 하지 않으면 제적이 된다는 통보였다. 하필이면 미국 대학 합격자 발표가 복학신청 마감일 이후였다. 그로서는 미국 대학 합격을 확인한 뒤 편안한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께 전화를 했어요. 복학하지 않겠다구요. 그리고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합격할 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잘못하면 스물넷의 나이에 고졸로 다시 출발해야한다는 생각도 했죠.”

◆다만, 후회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10여개 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줄줄이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기대치 않았던 아이비리그에서도 합격장이 왔다.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코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첫 1년은 학교 생활 적응과 생존이 오로지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코넬대 당시 입학생 중에서 그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경력없이 바로 입학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고 한다. 그가 겪었을 고초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세월이 흘러 코넬대 전자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그가 선택한 직장은 삼성전자. 미국에서 면접을 보고 바로 입사해 금의환향,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그때가 2002년이었다. 2007년까지 그는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만든 것이 ‘블랙잭’이었다.

 좋은 직장에서 5년 이상 일하면서 그는 ‘인생의 시나리오’를 계속 생각했다. “50이 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이 회사에서 탄탄대로를 밟아 제일 잘 됐을 때를 생각했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

 직장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를 떠올려봐도 그는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 일이 아닌 것을 계속 하면 언젠가 지칠 것이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에게 실망하고 후회할 것 같았죠. 힘들겠지만 내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알게 된 2명과 함께 나와 창업을 했다. 한양대 시절 알게 된 방무석도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2007년 3월 그의 첫 창업 회사 ‘브레인쿼드’를 설립했다. 브레인쿼드는 전자악기를 만드는 업체였다. 하드웨어 회사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전자키보드를 만들었다. 1년반 동안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8년 10월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이승이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품을 들고 투자자를 물색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다. 투자자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그의 첫 창업 작품은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아이팟터치에 놀라다

2009년초 음악을 들으려고 아이팟터치를 구매한 이승이 대표는 깜짝 놀랐다. “제가 스마트폰을 만들어봐서 원리나 기계적인 장치 등에 대해서도 알쟎아요. 그런데 사용해보는 순간 ‘이 정도 퍼포먼스가 어떻게 가능할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손으로 키보드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이런 기기를 이용해 터치만 하면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업을 수정했다. 하드웨어 제조업체에서 앱 개발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창업 멤버는 방무석 이사와 둘 만 남게 됐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어 고생하던 차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진형 교수가 사무실을 빌려주는 대신 일을 좀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이 잘 풀리려니 때마침 더팟이라는 디자인 회사가 새로운 개발팀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회사 김홍균 대표와 만난 이승이 대표는 서로 뜻이 통한다는 것을 알고 회사를 합치기로 했다. 2009년 7월 통합회사 그레이삭스가 설립됐다. 이승이 대표가 그레이삭스의 대표를 맡고, 김홍균 더팟 대표는 그레이삭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기로 했다.

 그레이삭스는 한동안 음악 관련 앱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성과도 냈다. Finger Stomp, Drum Meister, String Trio, Aquarist 등 앱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드럼 앱과 스트링 트리오 등은 특히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수익성이 신통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려면 정말 앱을 10개 이상 만들어야겠더라구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물론 운영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외주 사업을 하면서 회사 운영비는 차질없이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회사의 대표작을 만들고픈 마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음악 앱을 들고 투자받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기회가 왔다. 이승이, 김홍균 등 회사 주력 멤버들이 밤늦게 회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진을 활용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이승이 대표가 작업을 시작, 불과 이틀만에 뚝딱하고 기본 컨셉트를 만들었다. 이제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나설 때가 됐다.

◆미디어를 지향하는 사진SNS, ‘해프닝’

2011년 이승이 대표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한 조찬모임에서 회사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장병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와 만난 게 계기가 돼 2011년 11월 엔젤 투자를 받게 된다.

 사진을 활용한 SNS 이름은 해프닝(Happen.in). 올해 입사한 이승이 대표의 코넬대 후배 박지현씨가 이름을 지었다. 얼핏 보기엔 사진을 올려놓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이를 통해 사람들을 사귀어 가는 여느 SNS와 유사하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지금 찍은 사진만 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트위터처럼 리트윗을 해서 전파하는 방식으로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대상은 얼마든지 제한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만 올려놓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다. 

 “사진을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습니다. 사진을 이용한 미디어가 얼마든지 가능해지는 거죠.”

 처음부터 실시간 사진이라는 컨셉트로 간 것은 아니었다. 만들다보니 현재 찍은 사진만 올릴 수 있게 했는데, 거기서 의외의 즐거움을 찾은 것이다. “실시간 사진만 올려놓게 하니까 3가지가 달라지더군요.”

 그게 뭘까. 우선 올라오는 사진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댓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사람들이 대화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실시간으로 사진을 검색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사진을 공유하면서 전세계의 뉴스를 공유하는 식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위치를 추가하면 서비스가 한층 더 발전한다. 위치를 정해놓고 해당 지역에서 올라오는 사진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고 그 지역의 그동안의 사진을 검색할 수도 있다. 아직 내부적으로 베타테스트중인 해프닝은 9월 중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10월중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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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대형 마트 인근에 있는 SK텔레콤 대리점을 들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대화 한 토막.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딸 뻘로 짐작되는 학생과 함께 대리점 직원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애니팡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이 휴대폰이 너무 오래되서 그런지 애니팡이 안되네요.”

“아 게임을 많이 하세요? 게임 하시기에 좋은 요금제와 폰을 알려드릴까요.”

“아뇨, 게임 안해요. 게임 안 좋아하는데, 딸이 해서 같이 애니팡을 하려고하는데, 안돼서..”

일견하기에도 게임에 별 관심이 없고, 해 본 적도 없는 분인 듯 했다. 그런데 대리점에 와서 게임이 되는 폰을 찾고 있는 모습이라니!

 2005년에 카트라이더가 대박을 치고,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오를 때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생전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여학생이나 주부 등-이 게임을 하러 PC방에 가고 친구들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기존에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을 대거 게임 시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카트라이더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개발·서비스 업체인 넥슨의 실적과 이 회사에 대한 평가도 껑충 뛰어올랐다.

 현상만 놓고 보면, 애니팡은 이보다 더 한 것 같다. 카트라이더를 하기 위해 PC를 살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애니팡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바꾸거나 스마트폰을 고르면서 애니팡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이처럼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숫자로 봐도 명확하다. 7월30일에 출시된 애니팡은 그 후 1주일 동안은 소비자들의 큰 변화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1주일뒤부터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4주차에 5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5주차가 지나자 다운로드 건수가 1000만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이용자수는 무려 600만명, 동시접속자수는 200만명이다. 일일 매출의 경우 다운로드 1000만을 달성하기 전에 이미 1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동안 접속이 잘 안되고 게임을 하다가도 에러가 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할 정도로 사용자 폭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과거 온라인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신작이 나올 때마다 대기하던 사람들이 몰려들 때 흔히 봤던 모습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숫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온라인게임 분야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런 모습을 선데이토즈가 만든 애니팡이라는 게임이 해냈다. 애니팡 정도는 아니지만, 이 게임의 뒤를 이어 파티스튜디오의 아이러브커피 등도 인기를 끌면서 ‘모바일 앱 게임’이라는 하나의 시장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물론 애니팡이나 아이러브커피의 성공은 6000만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카카오톡에 이 게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게임들도 많았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이 나오기 전에 앱스토어라는 공간에서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선전했던 팔라독과 같은 게임들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로비오사의 앵그리버드같은 게임도 있었다. 

 여러 사례들이 있음에도 애니팡을 주목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확산됐다는 점, 여러가지 에러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개발사와 카카오톡이 이를 결국 감당해냈다는 점,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 등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요인은 이번 흥행이 일회성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앱개발자들을 비롯해 모바일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가 바랬던 모바일 시장이 드디여 열렸다. 그 시장을 연 상징적인 현상의 첫번째가 카카오톡이었다면, 두번째는 애니팡 열풍이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기반 측면에서, 애니팡은 모바일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정표를 세웠다.

 모바일로 광고를 하던, 스폰서를 모으던, 음악 영화 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던,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장이지만 결국 게임이 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고, 열광해야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것을 애니팡이 다시 일깨워줬다. 애니팡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이로 인해 파급될 효과는 지금 생각하는 수준 이상일 것이다. 지금 애니팡이 보여주고 있는 수치가 이미 온라인게임 시절 겪었던 경험치를 한참 초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애니팡은 낮도깨비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임이 아니다.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 싸이월드가 앱스토어를 PC기반 웹 서비스에서 오픈했을 때 선데이토즈는 소셜게임 형식으로 애니팡을 서비스했었다. 그때도 사용자수 100만명을 넘기며 인기 몰이를 했었다. 스마트폰 게임보다 훨씬 작은 시장에서 한 차례 검증된 게임을 갖고 모바일에 들여와 제대로된 승부를 펼친 게 주효한 것이다. 즉, 족보가 있는 게임이다. 공교롭게도 애니팡이 출시되던 날 이정웅 사장을 분당 사무실 근처에서 만났었다. 나 역시 그랬지만, 그 역시 애니팡이 이렇게 대박이 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1000만을 돌파하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역사적인 날 만났었네요.”

“그러게요. 언젠가 모바일 게임에서 대박이 하나 나올 줄은 알았지만, 첫 게임이 우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네요. ”

선데이토즈와 이정웅 사장의 스토리는 예전에도 한번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다룬 적 있지만 조만간 최근의 스토리까지 업데이트한 풀스토리를 올려놓을 생각이다. 그 이야기 전체를 본다면, 이 회사와 모바일게임 시장이 가는 방향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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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눈에 보는 한국의 이동통신 역사와 미래 1 –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는 이동통신 산업

    Tracked from Insight of GS Caltex  삭제

      한 눈에 보는 한국의 이동통신 역사와 미래 1 –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는 이동통신 산업  멀리서 보기에는 세 나라가 평온하게 저마다의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도 그..

    2012/12/12 11:29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국내 최초의 음성인식 문자전송 서비스가 나왔다. 음성인식 전문업체 다이알로이드(www.dialoid.com)가 만든 음성인식 문자전송 앱 ‘다이알로이드’가 11일 구글플레이를 통해 출시됐다.

 다이알로이드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내 연락처 정보에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이강토’라는 친구에게 ‘오늘 드라마 내용이 감동적이었어’라는 문자를 보내고 싶을 경우, 1)스마트폰에서 다이알로이드 앱을 찾아 실행한 후 2)“이강토 문자 오늘 드라마 내용이 감동적이었어”라고 말만 하면 끝이다. 앱을 실행하는 손동작 이외에는 어떤 작동도 필요없이 음성만으로 문자 전송이 완료된다. 방금 온 문자에 대한 답장을 발송할 때에도 ‘답장 문자 확인했다 있다 보자’라고 말만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문자 전송을 하기 위해서는 휴대폰에서 문자 메세지 보내기 메뉴로 들어가 전송할 메세지를 입력한 후 연락처 정보에서 수신자를 찾아 ‘전송’ 버튼을 누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현재 나와 있는 음성 인식 애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문자 보내기 기능 역시 애플리케이션 실행 후 문자 보내기 선택, 문자 전송 등 수차례의 손동작이 필요하다. ‘다이알로이드’는 이 모든 과정을 ‘앱 열고 말하면 끝’인 ‘2 Step 문자 전송’으로 단순화 시켰다.

 이상호 대표는 처음부터 ‘앱을 실행하면 바로 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서비스를 개발해 왔다. 음성 인식 기술 자체에 대해선 자신감이 있었다. 다만 소비자들이 이것을 편하게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작동의 편의성에 더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이상호 대표와 다이알로이드 개발진에 대해선 한국의 스타트업 여든두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바 있다. 그들의 자세한 스토리는 이 글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듯 하다. 여기서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개발사인 ‘다이알로이드’는 NHN 기술연구팀 출신 4인이 2012년 2월에 설립한 음성인식 전문기업이다. 창업자 4인 모두 15년 이상의 음성 처리 및 검색 분야 경력을 보유한 국내 최고의 음성인식 개발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독보적인 한국어 연속 음성인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특히 한국어가 보유한 특징들을 보다 세심하게 기술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앱이 출시되기 전 이상호 대표를 잠깐 만나 개발 과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개발중이었던 서비스를 직접 시연도 해봤다. 출시 2주전이었기 때문에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음성을 인식하는 부분에 있었던 어떤 다른 음성 인식 관련 앱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엔 문자전송에 있어서 일부 에러가 있었지만 개선을 했기에 출시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음성 인식이라는 것은 문자전송 정도가 아니라 활용할 여지가 무궁무진한 기술이다. 전문 인력도 많지 않고 재정적인 지원이나 시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의지와 신념,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만 갖고 묵묵히 기술 개발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쨌든 서비스 자체야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지만, 다이알로이드의 기술 개발은 이것이 완성형이 아니다. 지금의 서비스는 운전을 하면서 문자를 보내야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음성 인식 기술이 고도화되면 생활의 모든 곳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공익적인 서비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다이알로이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이제, 다이알로이드는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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