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3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렸던 글로벌인재포럼 행사 가운데 열혈 청년들의 맨손 창업기세션의 주요 발언들입니다. 토크쇼 형태로 진행됐으며 패널로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박수근 (NBT 대표), 심여린 (스터디맥스 대표), Sarah Lee (글로우 레시피 대표) 등 네 분이 참석했고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임원기 기자 ; 안녕하세요 임원기입니다. 글로벌인재포럼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좀 더 일찍 이런 이야기를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이제는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에 대한 논의가 분야를 막론한 관심사가 됐다는 방증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창업입니다. 글로벌인재포럼의 세션에 가운데서는 좀 독특한 주제죠. 2의 창업붐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됐습니다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입니다.


 창업이 주제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혹시 기대하실지 모를 그런 주제? 예를 들어 성공의 비결이라던가, 성공 방정식이라던가 등과 같은 이야기보다는 좀 다른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왜 창업을 하게 됐는가에 대한 동기와 문제의식, 그리고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는가, 어떤 고난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내용은 따로 적어서 제출해 주시면 제가 대신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이렇게 진행을 하니 양해 바랍니다.


<지난 11월3일 서울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진행된 글로벌인재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봉진 대표 ; 안녕하세요 배달의 민족을 만들고 있는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입니다.

심여린 대표 : 영어 마비~ ~ 영어 마비! 영어 마비엔 스피킹맥스! 다 아시죠. 스피킹맥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터디맥스의 심여린입니다.

Sarah Lee 대표 :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케이뷰티의 우수성, 기술력을 소개하기 위해서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과 브랜드 인큐베이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우레시피의 공동대표 Sarah Lee입니다.

박수근 대표 : 안녕하세요 NBT의 박수근입니다. NBT라는 회사는 Next Big Thing을 만들어가는 회사이구요, 저희 회사는 안 밀면 손해라는 캐시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하 직책 생략)


임원기 ;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당연히 새로 만들어진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타트업 창업은 그저 사업을 새로 시작한 그런 게 아니라 (물론 사업을 하면 돈도 벌어야 하겠지만) 기존 서비스나 제품의 불편함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품·서비스 등으로 세상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그런 도전을 말하는 겁니다.


 이번 세션에 나오신 대표님들은 제가 다 섭외한 분들입니다.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뒀고 밖에서 보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난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해왔던 그런 분들입니다.


 1분 스피치 이런 거 잘 하시는 분들인데, 너무 짧게 자기 소개를 해서 제가 질문을 던지면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님의 경우 디자인 쪽 일을 해 오신 분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하고 있구요. 실제 경력도 네이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등 디자인 쪽에서 종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은 얼핏 보기엔 디자인과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분야같은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왜 꼭 창업을 통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기업이 성공해야 성공한 브랜드 나온다


김봉진 ; 창업의 동기에 대한 질문이라고 이해를 하고 말씀드리면요. 저도 왜 시작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시장의 기대가 있고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했느냐하면,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처음에 저는 사실 좀 장난스런 그런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런 서비스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에 가볍게 만든 겁니다. 처음 저희가 시작했을 때 저희랑 비슷한 게 뭐가 있었냐하면 여러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들이 만든 서울버스, 이런 앱이 있었습니다. 앱을 만들어서 앱스토어에 올려놓고 그냥 기존에 하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이버도 계속 다녔구요. 그러다가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그러면서 법인도 설립하고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사업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디자이너로서 예전부터 나만의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그런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배달의 민족도 브랜드 관점에서 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 저를 표현하거나 우리 회사,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그런 것에 중검을 두고 있습니다.


 굉장히 재밌는 게 성공한 브랜드는 그 기업이 성공을 해야 가능해요. 브랜드만 성공하고 기업이 실패하면 사실 그 브랜드는 실패한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제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사업을 잘 해야 하는,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사업 성공을 위해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잘 활용하는 그런 방식인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저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여러번 해 봤어요. 그런데 사실 어릴 때 제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음식 장사를 오래 하시는 걸 보면서 음식 장사 이런 거는 절대로 하면 안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제가 음식 배달 앱을 만들었쟎아요.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의 음식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거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IT가 발전을 하면서 커머스 분야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요. 처음엔 책이나 박스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물품으로 커머스가 발전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음식도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구매를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구요. 배달의 민족은 음식을 커머스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임원기 ; 사실 처음 제가 김봉진 대표님 창업한 지 1년이 안됐을 때 사무실을 찾아갔을 무렵엔 길거리의 수많은 전단지를 스마트폰으로 집어넣겠다 뭐 이런 컨셉으로 사업을 했었는데 이제는 푸드테크라고도 하고, 음식과 기술을 접목한 그런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창업하면 가장 대박이 난다는 의식주 중 하나를 하고 계시네요.


 다음엔 박수근 NBT 대표님의 말씀을 좀 들었으면 합니다. NBT가 하는 캐시슬라이드는 여러분들 폰에 따라, 아이폰을 쓰시면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벌써 2000만 다운로드가 됐고 중국에서는 1억 다운로드를 돌파한 서비스입니다. 박 대표님은 컨설턴트 생활을 하셨던 분인데, 어떻게 이렇게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게 됐는지 말씀을 좀 해주시죠.

 

박수근 ; 운좋게도 대학 시절에 선배들이 하는 스타트업에서 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낀 게 2가지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란 게 정말 멋있고 꼭 해 보고 싶은 일이구나.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타트업이 정말 대부분 망하겠구나, 주먹구구로 하면 다 망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제품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걸 정말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수익을 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그런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때 선배들의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해보긴 했지만 일이 잘 안되서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됐습니다.


그때 사실 정말 창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겁이 나서 창업에 나서질 못했습니다. 성장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구요. 좀 배워야겠다 이런 마음에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면 이런 일을 합니다. 주로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하는 전략 프로젝트 이런 것에 참여하구요 굵직한 일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그랬습니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서 많이 배웠습니다. 2년 반 동안 일하면서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즐거웠습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월급도 많이 받았구요.


 그런데 일하면서 뭔가 계속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고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보니 주변에 정말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갖고 변화와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좌절도 했구요.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고착화된 구조, 만들어진 시스템 이런 곳에서 변화를 주기란 쉽지 않다는 그런 생각을 했구요. 그래서 현재 있는 커런트 빅 씽(Current Big thing)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Next Big Thing을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에 공동 창업자 4명이 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였습니다. 저희는 일단 그만두고 모여서, 좀 특이하죠. 그 때부터 캐시 슬라이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Next Big Thing을 만들려면, 뭔가 시작점이 있어야 하는데 뭘로 시작점을 삼을까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2012년에 창업을 했는데 앞으로 뭔가 Next Big Thing이 온다면 그것은 모바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봤구요. 해결해야 하는 어떤 큰 문제들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커머스 교육 게임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바일 시대에 맞는 미디어가 필요할 거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있는 신문들이 있었고 방송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PC를 켜면 나오는 네이버와 같은 포털들이 미디어였습니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모바일 미디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시작했지만 2012년에 옥탑방에 4명이 모여 있는데 별로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뾰족한 그런 것을 하자. 그래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스마트폰 첫화면을 우리에게 빌려주면 우리가 리워드(혜택)를 주겠습니다이런 컨셉으로 시작했습니다.


창업, 직장생활보다 "5배 더 힘들고 10배 더 재밌다"


 처음부터 핵심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잠금앱을 설치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에 강조했고 날카롭고 뾰족한 기획덕분에 지금은 캐시슬라이드라는 제품이 회원 형태의 모바일 미디어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박수근 대표님은 컨설턴트 생활을 하시다가 세상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특히 박 대표님은 회사 내부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일 중독자로 통한다고 제가 안팎에서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직원들도 행복한지는 제가 따로 좀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웃음)

 

박수근 ; 예전 컨설팅 회사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 가끔 물어봅니다. 창업하니 어떠냐고. 저는 “5배 정도 더 힘들고 10배 정도 더 힘들다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직원들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임원기 ; 오늘 행사에는 미국에서 오신 분도 있습니다. Sarah Lee 대표님은 뉴욕에서 글로우 레시피란 회사를 창업하신 분인데, 오직 이 행사를 위해 미국 뉴욕에서 날아오셨습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해서 저 역시 Sarah Lee 대표님의 창업 스토리는 잘 알지 못하는데요. 창업을 하자마자 샤크 탱크라는 미국의 투자 유치 프로그램에 나가서 히트를 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로레알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나오셔서 그래도 가장 관련된 분야에서 창업을 하셨는데, 왜 창업을 했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Sarah Lee ; 저는 사회 생활은 한국에서 시작했습니다. 12년 전에 로레알 코리아에 대학 시절 인턴으로 시작해서 화장품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너무 많이 느껴서 일을 열심히 하고 3-4년 후에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갔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제품 기획과 마케팅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제품 기획을 할 때 한국 화장품의 컨셉과 경쟁력을 글로벌 회사 입장에서 벤치마킹하고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한국 제품을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한국 사람으로서 그런게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기획을 할 때 기획자로서 미래의 트렌드 등을 봐야 했는데 항상 한국이 No.1 고려 대상이었죠. 글로벌 브랜드인데도 기술력, 제조 파트너사는 항상 한국 파트너사였고 한국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본사와 이야기도 해 봤어요. 비비크림이 엄청나게 유행을 했는데 미국에서 6-7년 전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한국에서는 벌써 10년도 더 전에 나왔었죠. 미국 사람들이 볼 때는 이렇게 간단하게 피부 보습도 되고 선스크린도 되는 제품이 있다는 것에 놀라왔고 나오자마자 회사의 제품 카테고리에서 매출 0에서 2억 달러로 껑충 뛰었죠


 그때부터 모든 화장품 업계 사람들이 한국을 봐야겠다 이런 말을 했구요. 화장품의 미래는 한국이다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했죠. 로레알은 세계 넘버원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을 더 잘 알아야 하는 그런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에 들어와서 가로수길에 가서 요즘 유행하는 제품들도 알아보고 돌아가서 연구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 화장품 기술들이 글로벌 브랜드에 녹아 있는 반면 한국 제품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안타까왔죠. 사람들이 한국 제품을 써보면 효과도 느끼고 그러는 걸 보면서 기회를 봤습니다.


"자랑스런 한국 화장품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저희 공동 대표인 크리스틴 장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이런 걸 아예 우리가 가져와서 소개도 하고 한국브랜드화하면 어떨까. 그리고 한국의 상품과 기술력을 글로벌 브랜드의 그림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면 어떨까.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팔리는 프로모션용 제품이 아니라 실제 스토리가 있고 콘텐츠가 있고 정말 퀄러티가 있는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리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 2014년 말에 글로우 레시피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처음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사이트로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나 이런 것을 제공하고 싶었고, 한국의 최고 수준의 제품을 들여와서 큐레이션 해서, 어떻게 보면 편집샵을 시작한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시장의 지식과 미국 소비자들에 대한 이해도를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 시장에 맞는 한국 제품을 판매해보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더 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세포라, 메이시스와 같은 큰 백화점에서 한국 화장품에 관심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이들과 협력해 한국의 규모가 있고 기술력이 있는 화장품 브랜드 인큐베이팅에 나섰습니다. 저희가 이런 것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이커머스를 시작하고 시장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적인 이미지의 한국 브랜드이고 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피부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이 맞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그걸 깨뜨리고 싶었고 깨기 위해선 파워풀한 파트너와 함께 대형 리테일러에 입점을 해서 이게 한국에서 온 대단히 특이하고 재미있는 상품이다이런 게 아니라 미국사람들의 다양한 인종과 피부 타입에 맞는 전략적이면서도 효능이 뛰어난 제품이라는 걸 교육시킬 기회가 됐던 겁니다. 국내 대기업 등과 제휴를 맺어서 세포라 등 백화점에 우선 입점을 했습니다. 당시엔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기 보다는 정말 기술력이 있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한국 기업인 거다 이런 식으로 알렸습니다.


 지금은 2가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온라인 쇼핑몰이고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로서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한국 화장품이 아모레 퍼시픽이나 중소기업들의 제품도 좋은 게 많은데 그러다보면 수입해서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나요?

 

Sarah Lee ; 수입해서 판매하는 곳은 많지만 처음부터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저와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틴 장이 로레알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보니 로레알에 있는 수천명의 직원 중 저와 크리스틴 두 사람만 교포가 아닌 한국 사람이었고 한국 말을 하고 한국의 상황과 한국 기업들을 경험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한국에서 그냥 좋다고 하거나 막연히 우수한 제품이라고 하는 그런 화장품들이 막상 미국에 와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피부에 대한 접근 방식이 한국 사람들과 다릅니다. 피부 관리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피부 타입도 다르고 이것을 재해석 하지 않으면 장기간 인기를 끌기 힘듭니다. 하지만 저희는 프랑스 회사인 로레알의 미국 법인에 있으면서 프랑스 회사 제품을 미국 현지화하는 경험을 했었고 이것이 차별화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임원기 ; 더 물어볼 것이 많지만 차차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엔 심여린 대표님께로 넘어가겠습니다. 심여린 스터디맥스 대표님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쪽 분야로 가시게 된 것인지요?

심여린 : 저는 남편하고 공동 창업인데요 남편하고 제가 각각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MBA 가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영어 점수를 따고 나서 학교 투어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놀랐어요. 영어를 어느 정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들어가는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잘 안나오는 거에요

 

임원기 ; 거기서 영어 마비가 나온 거군요.

 

심여린 : (웃음) 그렇게 미국에 힘들게 입국해서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뉴스 앵커나 전문적으로 영어를 말하는 사람, 선생님 등 이런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화을 하는 사람들의 영어를 제대로 듣고 공부를 해 본 적은 없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생활에서는 영어가 안되는 거죠. 며칠간 미국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니 또 영어가 어느 정도 되더라구요


 그런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인인데 네가 쓰는 어휘력이나 문장이 정말 놀랍다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의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갖는 외국어 학습의 문제점을 깨닫고 우리가 지금 MBA를 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바로 잡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거죠.

미국에서 외국인들이 말하는 것을 찍어오고 따라하다보니까 그게 되게 좋더라구요. 사람들이 미국 가서 어학연수하면 몇 천만원씩 돈이 드는 데 저희가 그때 현지에 가서 한 게 사람들 모아놓고 대화하고 그걸 찍어오고 그랬는데 그게 그냥 어학연수 가서 받는 클래스랑 비슷한 겁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면 굳이 비싼 어학연수 가지 않고도 혜택을 줄 수 있겠다 생각한 거에요.


 저랑 저희 남편은 대학때부터 창업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어요. 연애할 때도 어떤 가게나 회사가 잘 되거나 망하거나 하면 그 이유를 같이 분석해보기도 했구요. 그렇게 계속 같이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나누면서 하다가 창업도 같이 했구요. 남편은 이미 대학때 이투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경력도 있고 해서 지금 일을 하는 것도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원기 ; 제가 스터디맥스를 처음 찾아갔을 때는 2010년이었는데 그때는 창업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였지만 한국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교육 분야인데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학습을 하게 해 준다는 컨셉을 듣고 아 여긴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 뒤로 2-3년이 지나 다시 뵀을 때 그 기간동안 상당히 고생을 한 걸 알고 놀랐죠. 우리가 지금부터 나눌 두 번째 주제가 창업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고난, 어려움 이런 것인데, 그냥 힘들다 차원이 아니라 회사가 망할 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일을 겪게 되는데..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극복을 해 왔는지 말씀 나온 김에 심여린 대표께서 먼저 말씀해주시죠.

 

10군데 VC 찾아갔다가 모조리 퇴짜맞기도


심여린 ; 사실 저희 사업 모델이 영어 교육 업계나 출판업계 이런 쪽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어요. 강의나 책 중심의 학습이 주된 시장에서 특이한 학습 방법을 제시한 거였죠. 마이너스 몇 억원을 통장에 찍어면서도 저희가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었고 VC분들을 만나러 다녔는데요. VC분들 만났을 때 10군데서 다 거절했어요. 저는 쉽게 투자 유치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컨셉트 특이하고 너무나 필요한 서비스고, 잘 될 것 같은데 워낙 특이하니까 매출이 나오면 그때 투자하겠다 뭐 이런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는 돈이 들어가야 매출이 본격적으로 나올 텐데 기대했던 투자가 안 들어오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그때 남편하고 둘이 청계천을 걸으면서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했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다행히 너무 좋은 분들이 투자를 해 주셔서 그 돈으로 마케팅을 하고 그리고 바로 40억원의 매출이 나왔습니다.

 

임원기 ; 첫 투자가 들어온 게 2011년인가 그랬죠? 그 전까지는 그러면 자본금으로 버티면서 계속 마이너스 통장 만들고 그랬겠네요

 

심여린 ; 그렇죠. 기보나 이런데서 대출도 받고 버텼죠. 힘든 시기였습니다.

 

임원기 ; 다른 분들도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김봉진 ; 힘든 일 많았죠.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얘기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 우아한 형제들이 두 번째 창업이었어요. 그 전에는 아내와 디자인 가구 쪽으로 창업을 했다가 시원하게 다 말아먹고, 그때 전세 대출금까지 다 날려서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가구점을 하면서 가구점에 소품들이 많이 있쟎아요? 그걸 팔 수가 없으니까 그걸 모아서 사과박스 배박스 이런 데다 모아서 집에 쌓아 놨습니다. 집도 좁은데 2-3년씩 집에 그걸 쌓아놓고 사는데 어느날 밤에 아내와 그걸 보면서 그게 한 5000만원어치 정도 될 거에요. 자기야 저게 정말 사과였으면 좋겠어 그럼 먹을 수 있쟎아.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배달의 민족 만들고 나서 직원들에게 그 제품을 쭉 나눠줬는데요 정말 다들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가슴이 찢어지고 뭐 그랬죠. 그런 것도 그렇고 정말 힘든 게 많았죠


 얼마 전에는 사실 정말 힘들었던 게 저희가 작년에 배달 앱 수수료 0%를 선언했는데 그 수수료 매출이 전체의 30%에 달했거든요. 그때 저희 생각은 고객이 우리의 이런 정책을 알아줄 것이고 다시 우리 앱을 많이 써 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매출이 회복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고객은 훨씬 더 늦게 움직이더라구요.


 그 시기가 늦게 오면서 어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네요. 올초가 되니까 다음달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주나하는 걱정을 할 정도가 됐습니다. 상당히 급박한 상황까지 간 거죠. 그렇게 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의 호기로운 결정으로 350명에 달하는 우리 직원들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이런 걱정을 하기도 했죠.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9시 뉴스에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이슈가 보도가 되고 이러면 매출이 오히려 더 올랐어요. 부정적인 보도라고 하더라도 일단 매출은 늘어나는 거죠. 그래서 더욱 이런 부분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임원기 ; 그래서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이런 말도 있는 거죠.

 

"이번 고비가 지나가면 다음 고비가 또 온다"


김봉진 ; . 그렇죠. 그래서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고 그러면서 더 난처해지고 그랬죠. 다행히 그 뒤로 서서히 매출이 올라와서 지금은 정상화가 되고 그랬죠.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아내와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아 정말 너무 힘들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 걸까. 나는 왜 창업을 해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걸까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했죠. 제 얘기를 듣고 나서 아내가 어느날 전화를 해서 그러더라구요. “자기야 자기가 힘든 건 창업을 해서가 아니야. 그 나이대가 힘든 거야. 대기업을 다녔으면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몰라서 걱정하고 있을거고, 자영업을 했으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거고, 그냥 사는 게 힘든 거지.”

누구나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 그 말이 왠지 위로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제 좌우명이 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가 온다입니다. 하하.

 

임원기 ;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라, 다음 고비가 또 온다. 그러면 뭐 고비가 지나가길 기다려도 그 다음에 낙이 없는 거네요? 또 고비가 오니까

 

김봉진 ; 그런 셈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서 나에게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임원기 ; Sarah Lee 대표님은 미국에서 창업을 했죠. 아마 상상이 잘 안가지만 사람을 뽑고, 투자자를 만나러 다니고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Sarah Lee ; 저는 처음에 제일 힘들었던 게 미국에서 한류 때문에 화장품 판매가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알다보니까 한국에 있는 기업의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의외로 굉장히 회의적이더라구요. 지금도 그분들을 설득하는 게 힘든 일입니다.


 처음에 저는 아니 한국 제품을 미국에 알리고 팔겠다는 데 당연히 시장을 확대하는 거니까 다들 좋다고 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부분 겁을 많이 내거나 걱정을 많이 하더라구요. 물론 우리는 한국 화장품이 잘 팔릴 것이다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증명할 방법은 없었고 그러다보니 그분들은 우리에게 상품을 선뜻 제공하기 힘들었던 반면에 우리는 그런 제품들을 많이 확보해야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좀 애매했던 거죠.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 브랜드에 콜드콜을 해서 미팅을 하고, 다짜고짜 찾아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미국이라고 하면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믿음이 있지를 않으니까 서로 협상을 하기 쉽지 않았고, 제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보니까 같이 소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잠도 잘 못자면서 전화를 돌리고 사람을 만나는게 힘들었어요.


 관계를 쌓아놓고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한국 기업 담당자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서로 얘기하는 게 힘들었지만 관계를 쌓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오히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렇더라구요.

 

임원기 ; 인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스타트업은 특히 사람이 전부인 그런 비즈니스이고, 함께 할 사람을 뽑는 게 정말 중요할 텐데. 미국에서 사람을 어떻게 채용을 하나요. 외국인이 설립한,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Sarah Lee ; 외국인이 설립한 회사라고 특별히 다르게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어요. 특히 요즘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면 기업이 작다보니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양하고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상황이 많거든요. 그런 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어쨌든 저희가 오랫동안 화장품 업계에서 업력을 쌓았고 로레알이라는 네임밸류가 있는 큰 회사에서 관계를 만들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저희도 사실 케이뷰티를 외국인들이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케이뷰티냐 아니냐를 떠나서 마케팅을 배울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점을 매력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저희는 케이뷰티를 알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자세를 중시했어요. 배우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돼 있는지 이걸 좀 봤죠.

 

믿음과 희망이 스타트업의 원동력


임원기 ; 캐시슬라이드는 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스타트업 중 하나인데, 그래서 얼핏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진 않겠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사람은 어떻게 뽑았고 등등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박수근 ;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희망이 꺾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런 화면잠금앱은 저희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만들다보니까 처음부터 곳곳에서 안될 거야 라는 말을 정말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금 화면을 미디어로 활용을 해 보자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고 시작하다보니까 광고를 붙여서 포인트를 주자 이렇게 했는데, 처음에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다 안될거라고 얘기합니다. 제품을 런칭해서 새로 채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 안될거라고 얘기를 합니다. 서비스를 어느 정도 해서 광고주들에게 세일즈를 하려고 하면 예전에 그런 비슷한 거 다 고민했었는데 다 안될거야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끝이 없었어요. 유저들이 예를 들어 100만명을 모았다 그렇게 수치를 들고가면 거기까지 갔으니까 거기가 한계야 안될 거야 이렇게 또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뭐 좋습니다. 지인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파트너나 광고주나 투자자들이 얘기할 수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저희가 헷갈리고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어 이거 진짜 안되는 건가? 우리 이거 못하는 건가? 그럴 때. 변화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흔들릴 때 힘들었습니다.

믿음과 희망이 없을 때 정말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의 일도 일어납니다. 가장 강력한 게 믿음과 희망이기도 합니다. 즉 조금만 이게 될 수 있다는 실적을 보여주고 어떤 트랙 레코드가 나오게 되면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걸 내놓고 카피캣이 등장합니다. 서비스 내놓고 3개월 만에 유저들을 모으니ᄁᆞ 6개월 내에 동일한 서비스가 10개 정도 나왔구요 1년 내에는 국내에서 대기업 3-4곳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1년이 넘어가면 전 세계에서 비슷한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3, 독일, 미국에서도 나오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에서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믿음과 희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구요, 거기서 파생되는 강력한 경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임원기 ; 한국은 창업가들이 세쪽짜리 사업계획서를 작성해도 맨 끝장에는 해외 진출 계획이 나와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나 필요성이 강하고 국내 시장이 작다는 스스로의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캐시슬라이드가 해외에 진출한 것도 이런 측면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박수근 ;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의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NBT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회사의 비전 자체가 NEXT Big Thing을 만들고 싶다는 회사인데,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다보니까 한국에서만 이렇게 사업을 하면 next big thing은 못 만들고 next fun thing만 만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건 만들겠지만 정말 큰 것은 만들기 힘들겠다는 생각. 결국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만 하면 그 변화의 크기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서비스를 해도 중국에서 하느냐 한국에서 하느냐 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임팩트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에 적극적으로 나가고 있구요.

 

임원기 ; 스터디맥스도 해외 진출하기에 좋은 서비스 아닌가요

 

심여린 ; 사실 국내에서 만든 콘텐츠 서비스 중에 해외에 나가서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진출 자체도 아직 많지 않습니다. 교육 콘텐츠 쪽은 한국의 수준이 높고 우리 서비스의 경우 영어를 영어로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동남아시아는 물론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진 ; 많은 분들이 혹시 배달음식이라는 게 한국에서만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영국의 저스트잇 이런 회사도 있구요. 물론 한국이 굉장히 큰 시장이기 때문에 저희는 한국을 잘 지켜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저희 경쟁사들이 아주 공격적으로 나오고 한국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우버잇츠나 딜리버리히어로즈와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한국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구요.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한국 시장을 지킬 것인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하지만, IT나 물류 이런 것들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게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대도시와 그 주변 인구에 비해 한국의 서울 등 대도시 주변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이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라고 저희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Sarah Lee ; 저희도 글로벌화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글로벌 시장이 케이뷰티에 매료되서 우리의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홍콩에도 거점을 마련했구요 전문가들이 편집한 셀렉션 코너 등도 만들고 저희도 미국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질문이 지금 너무 많이 들어와서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몇 개만 추려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오신 분들 중에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채용을 하실 때 어떤 기준으로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김봉진 ; 저는 채용할 때 오히려 저희가 질문을 하는게 아니라 어떤 게 궁금하세요 하고 말씀을 드려요. 그분이 반대로 질문을 저희에게 하는데, 사실 질문 안에 생각이 담겨 있어요. 어떤 분은 복지를 물어보시는 분이 있고, 일에 대해 물어보는 분이 있어요. 그 사람이 일에 대해 얼마나 집중해서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얼마나 보느냐를 중점적으로 봐요.

 

심여린 ; 인터뷰할 때 이 사람과 얼마나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봅니다. 저도 사실 같은 질문을 하는데 저희에게 궁금한 거 없으세요 라고 거꾸로 물어봐요. 질문에서 많은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임원기 ; 어떤 대학생이 박수근 대표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마트폰 다음에는 뭐가 또 있지 않겠느냐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느냐는 거죠.

 

박수근 ; 2010년 모바일 웨이브가 왔었고 주기적으로 또 빅 웨이브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 주기들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데 많은 웨이브의 가능성이 있지만 IoT나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한 웨이브가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NBT는 다음의 큰 것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넥스트 웨이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려고 합니다.

 

임원기 ; 이번엔 Sarah Lee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이 있네요.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관계에서 도움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Sarah Lee ; 저는 사업을 하면서 정말 관계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인들, 투자자들,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 저는 한국에서 계속 살았고 미국이라는 큰 땅에 살면서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품을 알리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이런 점을 잘 이해하는 누군가와 상의하면서 사업을 했더라면 훨씬 더 지름길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구요. 그래서 제가 만나는 젊은 분들에게 계속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네트워킹을 하라구요. 한국의 브랜드파트너와 관계를 맺을 때도 인간적으로 존중을 해 주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제일 먼저 공유해요. 그런 분들하고 파트너를 맺고 있죠. 이런 관계를 통해 서로의 일하는 스타일을 알고 비전을 공유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거든요

멘토십에 대해선, 모든 멘토가 다 좋지는 않구요 저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한데요. 일을 대하는 근무윤리? 이런 것들이 좋은 분들을 찾으시라도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원기 ; 관련된 질문인데요. 미국에서 창업을 하려고 하는 분인 것 같은데, 처음에 뭐가 중요한가 이런 질문입니다.

 

Sarah Lee; 본인의 상태에 따라 다른데요. 저는 뷰티 업계에서 계속 일했기 때문에 커넥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게 처음에 일 할 때 정말 많이 도움이 됐거든요. 제가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백화점에 입점을 하거나 그럴 때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미국 시장이 정말 터프하거든요. 그래서 시장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들어가는 것은 금물입니다. 꼭 시장 조사를 해 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Drive가 있어야 합니다. 경쟁이 심하니까요. 뉴욕에 있는데 경쟁사가 하루에도 몇십개가 런칭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중심을 잃지 않고 집중을 해야 합니다.

 

임원기 ; 아까 박수근 대표님이 믿음과 희망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처음에 다 안될거야 라고 얘기를 했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직원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 감당하셨는지 아니면 직원들하고 공유를 하셨는지.

 

박수근 ; 지인들의 피드백, 유저들의 피드백 이런 게 다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서 다 공유를 했구요. 저희는 아예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스타트업은 원래 일반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게 스타트업이 아니라 남들이 다 안된다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원기 ; 캐시슬라이드 전에 창업했다가 말아먹은 게 있다고 했는데 그게 어떤 사업이었는지, 왜 망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박수근 ; 제가 직접 창업을 했던 것은 아니었구요, 저는 꼬맹이가 일을 거들어봐라 해서 조인했던 회사였습니다. 기술도 좋았고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나서 보니까 기술이나 아디디어는 변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변화를 실제로 주기 위해선 실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통해 파트너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임원기 : 오늘 패널분들이 창업 과정의 어려웠던 점을 구구절절하게 말씀해주신 덕분인지 질문도 창업 과정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요. 이 고비가 지나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이런 말씀을 김봉진 대표가 하셨는데, 이런 시련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힘을 내서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야하는 이유는 뭔지.

 

김봉진 ; 저한테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요. 작년보다 나아졌나? 어제보다 나아졌나 이런 겁니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였던 것 같습니다. 3년전, 4년전에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겪고 있는 고난도 나중에 보면 큰 일이 아닐 수 있죠. 그런 걸 생각하면서 견디고 있구요. 고비를 지나면서 좀 더 성장하는 나를 보면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창업은 발명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임원기 ; 요즘 드론으로 배달을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런 것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김봉진 ; 그런 것은 먼저 도입하면 안됩니다. 그런 과격한 신기술은 영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데서 먼저 도입해서 일이 되는 것을 보고 하면 되구요. 도입하기 시작하면 또 빨리 됩니다.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창업은 발명이 아니거든요. 발명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창업 자체를 발명이라고 생각하고 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힘들게 한다고 봅니다. 저희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국가들을 보면서 드론과 같은 것들이 언제 적용될까 하는 것을 보고 있지만 마케팅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임원기 : 공동창업자의 중요성, 필요성, 그리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심여린 ; 박수근 대표님도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려면 조직이 중요하거든요. 저희 남편은 교육쪽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저는 교육 분야의 스티브잡스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하하 그리고 저는 커머스쪽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고 시너지를 내는 게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것 같아요.

 

임원기 ; Sarah Lee 대표님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과 창업을 한 케이스인데요

 

Sarah Lee : 함께 인턴생활을 했던 선후배 사이가 만나서 창업을 했어요. 여자 둘이 창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말을 많이 했는데, 사실 서로 너무 힘이 되고 의지가 됐어요. 뭘 모르고 진행해야 할 때도 의지가 되고 서로 상의를 많이 한 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얻는 힘이 정말 컸습니다.

 

임원기 ; 최근 청년 실업의 대안으로 창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준비가 안된 청년들에게 창업을 무턱대고 권하는 게 정말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심여린 ; 저는 창업을 권하진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힘들었던 일도 많았고 강심장이 필요하고, 대표라서 좋겠네 라고 남들은 말 하기도 하지만 너무 외로웠구요 힘들었습니다. 국가에서 청년 창업 지원 많이 하지만 그런 지원할 때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지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Sarah Lee ; 저 같은 경우는 만약에 준비가 됐고 올인할 마음가짐이 있으면 하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있었고 창업한 지 2년이 됐는데 이렇게 매일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아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즐겁게 일했지만 지금은 나의 뭔가를 이뤄내고 사회에 뭔가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성취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아주 많이 피곤해도 그런 성취감에 매일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물론 무모하게 하면 안되겠죠. 준비가 돼 있고, 내가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밸런스가 된다면 창업 하시라고 권하고 시습니다.

 

심여린 ; 저도 창업하고 3년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초기에 임원기 기자님을 뵀을 때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 전에 대기업을 다닐 때는 일요일 밤이 너무 싫었어요. 월요일이 곧 오니까요. 그런데 창업을 하고 그런 게 사라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또 좀 달라졌죠. 하하

 

김봉진 ; 나라에서 청년 창업을 계속 이렇게 지원하고 그러는데요 저도 그런 질문에 100% 동의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조울증에 걸려요. 성격도 이상해지는 것 같고. 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좀 다른 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본적으로 한국도 국가적으로 선진국의 예전 사업들을 답습해서 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면서 마진이 낮아지고 국가적인 불황이 오고 있거든요. 호황을 겪었다가 불황을 겪고 있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인데 그런 새로운 도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는 이런 창업이나 도전이 당연히 필요한 거구요.

 

임원기 ; 대기업에서 요즘 스타트업 문화를 강조하고 이러는데 이게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이러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arah Lee ; 위계질서적인 요소가 강하면 스타트업 문화가 잘 뿌리내리기 힘들다고 봅니다.

 

김봉진 ;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문화가 굉장히 민감한 주제인데요. 대기업도 처음에 시작할 때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면서 커 나간 기업들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히려 스타트업에게서 찾지 말고 대기업이 처음 시작할 때 바로 그 근본에서 스타트업 정신을 찾아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수근 ; 지금의 대기업의 문화나 구조는 어느 정도 정답이 정해져 있고 안정성이 중요한 환경에서 최적화된 구조인데요 스타트업은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만들어진 문화인데요. 사내벤처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느냐 실행하느냐보다 어떤 정신을 갖고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임원기 ; 오늘 점심시간을 오버해서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자리 끝까지 지켜주신 청중분들과 소중한 창업 스토리 들려주신 창업가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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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14년 어느 날, 회사의 선배가 리멤버라는 앱을 소개해줬다. 명함관리 앱이라고 했다. “전에도 비슷한 거 써 봤는데 인식률이 영 안좋더라고 답했다. 그 선배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아냐, 이건 명함을 보내면 손으로 쳐서 준대


 그 때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두가지였다. “, 그러면 정보는 대충 정확하겠네근데 그 많은 명함을 다 사람이 직접 입력하려면 얼마나 많은 직원이 필요할까, 돈은 어떻게 벌까였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젊은 기업가가 나왔다. “명함을 모으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그게 되겠어싶었다.


 2년 여가 지난 201611. 스타트업 취재 담당이 된 기자는 습관처럼 어제 만난 취재원의 명함을 리멤버 앱에서 촬영했다. 그랬더니 1초도 안돼 입력이 완료됐다는 알람이 떴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이게 되나싶었다. 불현듯 그 젊은 기업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를 찾아가게 됐다.

 

2년간 모은 6000만장의 명함


리멤버는 회원을 빨리 모았다. 출시 2년 반만에 140만명의 사용자와 명함 6000만장(중복 포함)을 모았다. 140만명은 단순한 앱 다운로드 숫자가 아닌 진성 사용자수다. 최 대표는 다른 모바일 서비스 대비 지속 이용 시간이 10배 이상 길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자로서도 이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앱이 없다. 이제 거의 리멤버가 스마트폰 주소록을 대체할 지경이다.


 서비스도 그간 많이 업그레이드 했다. 단순히 명함에 있는 정보를 글로만 옮겨주는 게 아니다. 명함의 주소를 지도로 띄워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용한 건 라이브서비스다. 리멤버 회원의 명함이 바뀌면, 이전에 같은 명함을 등록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거래처 차장이 부장으로 승진하면 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영업사원들에겐 정말 유용한 기능이다. 그간 시리즈B까지 받은 96억원의 투자금을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썼다.


<리멤버의 내년 구상을 설명하고 있는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  드라마앤컴퍼니 제공>


 모은 인물 정보도 질이 좋다. 최 대표는 직급으로 보면 대표급, 임원급, 팀장급, 중간관리자급, 사원급이 각각 20%이라고 말했다. 대표급 명함만 1200만장, 팀장급 이상으로만 3600만장이라는 얘기다. 밖에서 명함을 활발하게 주고 받는 사람들은 주로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자가 의문을 가졌던 대로 돈을 어떻게 버느냐다. 140만명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입력하는 사람 수만 한때 1500명에 이르렀다. 직접 고용이 아니긴 하나 인건비가 만만찮을 수 밖에 없다. 최근 앱에 광고를 붙이기 시작했다. “리멤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즈니스맨이어서 관련 광고를 붙이면 효과가 좋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앱 광고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긴 힘들다. 이미 드라마앤컴퍼니의 정규 임직원 수만 해도 30명이 넘는다. 매년 회사를 유지하는데만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비용 줄이는 묘책 찾았다


어느 회사든 돈 버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같다.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리는 것이다. 일단 비용 측면에서 최 대표는 묘안을 찾았다.


 리멤버 이전 명함관리 앱들의 인식률이 떨어졌던 것은 OCR(광학적 문자 판독장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프로그램이 문자를 읽어주는 기능인데, 이게 명함에선 좀처럼 먹히질 않았다. 명함마다 모양도, 글씨체도, 표시방법도 다 달랐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수기입력방법을 고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명함 6000만장을 모은 지금, 최 대표는 이제서야 OCR 카드를 꺼냈다. 6000만장의 명함 중 중복된 것이 상당수여서다. 지금은 명함이 새로 들어오면 OCR로 읽는다. 그리고 기존 데이터와 매칭을 시켜본다. 정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OCR이 명함을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기자가 최근 입력한 명함을 1초만에 처리해 보내준 것도 이 시스템 덕이었다


 최 대표는 지금은 전체 명함의 3분의 1 정도는 자동으로 처리한다한때 1500명에 이르던 타이피스트도 900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명함 빅데이터가 늘수록, 그리고 중복되는 비중이 높을 수록 자동 처리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타이피스트들도 점점 숙련되고 있고, 입력 정확도를 높이는 노하우도 많이 도입해서 인당 생산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비용은 계속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관계 진화서비스 진출


 다음은 매출을 늘리는 문제다. 최 대표는 내년부터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비전을 하나씩 실천에 옮길 계획이다. 1단계는 명함공유첩이다. 기자는 과거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는데, 보통 팀 명함첩을 한두권씩 만들었다. 함께 공유해야 하는 거래처 직원 명함이나 접대하기 좋은 식당 명함 등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이 기능이 리멤버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서로 취재원을 공유할 필요가 있는 기자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았다.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이고 내년 상반기 유료화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게 최 대표의 계획 중 몸통은 아니다.


 6000만장의 명함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본격적인 사업은 내년 하반기 시작할 계획이다. 일단 인물 소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살다보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자의 경우 기사에 멘트를 해 줄 전문가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쓴다. 영업사원들은 신규 판매처를 확보할 때 해당 회사 구매팀의 전화번호만이라도 알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는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구 아느냐고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리멤버를 통해 이 불편을 해결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기자가 IT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치자. 기자가 이제껏 리멤버에 입력한 명함에는 IT전문가가 없다. 하지만 기자의 지인이 입력한 명함 중에는 있다. 그러면 지인의 허가를 받고 기자에게 이 IT전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를 관계 진화서비스라고 불렀다.


 그 다음단계는 링크드인 처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리더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모아놓은 만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기에도 유리하다. 이 서비스들이 안정되면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투자해 준 벤처캐피탈 들이 일본 시장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세계적으로도 수기 입력을 통해 명함 데이터를 모은 사례는 없다.


 최 대표는 회원 수를 국내에서만 500만명 까지는 늘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직 목표에 3분의1도 못채운 셈이다. 500만명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가지고 인물소개, 구인구직 서비스를 해 준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사업모델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면. 구체적으로 과금을 어떻게 할 지는 최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최 대표의 얘기를 듣고 나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그의 목표가 허황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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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무엇일까. 대다수 사람들은 어두침침한 시내 뒷골목에서 도드라지게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빨려 들어가듯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커플들, 몇날 며칠 환기를 시켜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방 구석구석 짙게 배인 담배 연기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에서 모텔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전후다.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중소형 숙박업소 설립을 적극 유도했다. 현존하는 모텔 가운데 절반은 이 시기에 생겨났다. 올림픽 이후 대다수 업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일본에서 성행하던 러브 호텔을 벤치마킹했다. 중세 시대의 고성(固城)이나 이슬람 모스크를 닮은 건물이 등장하고 숙박이 아닌 대실 위주의 영업이 자리잡은 것도 이 시기다.

 

500만원에 인수한 다음카페가 야놀자닷컴의 시초


그랬던 모텔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호텔처럼 인터넷·모바일로 예약을 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아니라 파자마 파티를 하고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여가 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지상파 TV에서도 광고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낸 공()의 일부분은 이 사람에게 돌려도 될 것 같다. 바로 숙박 예약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업체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사진). 2005년 처음 온라인으로 전국의 모텔 정보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모바일 바로 예약, 프랜차이즈 설립, 종사자 교육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음지에 머물러 있던 모텔을 양지로 끌어내는데 10년 넘게 매진해왔다.



 그가 처음 모텔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군복무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종잣돈을 마련하려던 그에게 모텔은 숙식을 해결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장소였다. 그는 모텔 청소부터 시작해 매니저, 지배인까지 다 했다“4년 넘게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불만사항과 개선점 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모텔 사업자 대상 B2B 사업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모텔 종사자 1만여명이 가입한 다음 카페의 운영자였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정보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는 구인구직, 소모품 구입 등 종사자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컨설팅 사업을 해보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20052HMP시너지(호텔, 모텔, 펜션의 약자다)란 사이트를 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카페 운영자에게 무료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고객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모텔 정보를 제공하는 B2C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 이후다. 우연한 기회에 2005년 모텔 사용자들이 후기 등을 공유하는 카페를 500만원 주고 인수했다. 카페를 통해 모텔 가격, 약도, 사진, 후기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B2B 사업은 주로 비품을 싸게 파는 등 지출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실제 사업자들은 더 많은 사람이 오게 만들어 매출을 늘리는 데 훨씬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희를 통하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제휴 업소도 빠르게 늘었죠.”

 

숙박업 바꿔야 살아남는다리스타트선포


20075월 정식으로 야놀자닷컴을 열었다. 그해부터 바로 손익분기점(BEP)을 맞췄고 매년 50~100%씩 성장했다. 스타트업으로는 특이하게 창업 10주년인 지난해까지 단 한차례도 투자를 받지 않았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제도도 없었고 회사에 대한 색안경도 여전했다“2010년대 이후 스타트업이 늘면서 투자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매년 영업이익이 나는 상황에서 굳이 투자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7월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0억원, 이어 올해 4SL인베스트먼트에서 150억원을 투자받았다. 2019년을 목표로 상장 준비도 하고 있다.


 야놀자 자체의 기업가치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러브 호텔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소형 숙박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이같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사업자 역시 이 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야놀자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 회사 만 10년을 맞아 전 사원과 가족들, 거래처 관계자 등 800여분을 모셔놓고 리스타트(restart)’ 선포식을 했어요. 지난 10년간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해 살아남았다면 앞으로는 숙박업 자체를 변화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기적으로 필요한 과제 세 가지를 제시했어요. 시설 현대화와 매뉴얼 구축,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그것입니다.”


 시설 현대화는 단순히 고급화가 아니다. 사랑을 나누는 장소 뿐 아니라 출장자, 여행자들도 부담없이 갈 수 있는 장소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사업자들에게 교육함으로써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숙박산업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내·외국인 관광객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MRO·객실관리시스템·서비스교육 등 사업 다각화


이같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테헤란로의 야놀자 본사 2층에는 좋은숙박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선 모텔 창업자를 위한 교육은 물론 운영에 필요한 마케팅, 서비스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룸메이드 교육을 진행해 취업 알선도 해주고 있다. 창업과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료다. 쇼룸을 만들어 모텔 리모델링, 리노베이션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다. 숙박업소 운영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 공급 사업(MRO)도 한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사물인터넷(IoT) 객실관리 시스템도 직접 개발했다. IoT 센서 개발업체를 인수해 솔루션을 만들어 서울 노량진의 직영점(코텔)에서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객실에 센서를 부착해 도어락 자동 개폐, 전원 차단 등이 가능하다. 객실에서 전화를 하지 않고도 비품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직원이 적은 모텔은 호텔처럼 바로바로 응대를 할 수 없다이같은 시스템을 통해 고객의 불편을 줄이고 사업자의 비용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솔루션은 무상으로 진행하고 하드웨어는 판매하는 방식이다.


 사업 다각화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사업으로 인한 매출의 비중이 늘고 있다. 2014년 매출 174억원 가운데 광고료 수입은 105억원으로 60% 가량을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299억원 중 148억원으로 절반 이하(49.5%)였다. 이 대표는 온라인을 통한 예약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오프라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만큼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매출 비율이 64 정도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전국의 모텔은 3만개, 객실 수는 90만개 이상이다. 시장 규모는 144000억원으로 특급·관광호텔(36000억원)의 세 배 이상이다. 하지만 모텔의 음침한이미지 개선은 이제 출발점이다. 이 대표는 여행, 비즈니스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모텔도 바뀌어갈 것이라며 그 변화를 야놀자가 주도한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by lees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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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media)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전달수단이라고 나온다. 일반적으로 매체라고 하면 신문이나 방송같은 언론매체를 떠올린다. 신문이나 방송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큰 수단, 다른말로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모두 인터넷을 쓰게 되면서 매체의 주도권은 네이버같은 포털사이트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매일 인터넷에 접속할 때 나오는 첫 화면이 가장 큰 매체였다.


 그러면 2016년 현재 가장 큰 매체는 뭘까. 사람들이 어디에서 정보를 전달받는지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스마트폰 화면이다. 신창균 퓨쳐스트림네트웍스(FSN) 대표는 이같은 변화를 가장 빨리 파악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앱을 켤 때 광고를 띄워주는 카울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광고주와 새로운 매체인 앱 첫화면을 연결해 준 프로그램을 만든 건 한국에선 FSN이 최초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그의 창업인생 10년만에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인 코스닥 상장을 일궈냈다.

 

모바일 광고 시장 선점한 카울리


 신 대표는 2010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갓 고안한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는 몇 개의 포털사이트가 장악할 수 없고, 개별 애플리케이션() 별로 구동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결국 앱들이 매체가 되는 것이다. 그는 광고주와 앱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카울리였다.


 개념은 간단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앱을 통해 스마트폰을 쓴다. 그 앱을 켤 때 광고가 뜨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 수익을 앱 개발자와 FSN이 공유한다.


 단순히 연결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눌러볼만한 광고를 띄워야 한다. 이를 위해 스마트폰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운동 관련 앱이 많이 깔려있으면 나이키 신발 광고를 띄우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써서 사용자가 광고를 실제로 보게 하는 확률을 높인다.


 카울리는 시장에 먼저 뛰어들어 선점한 효과를 누렸다. 지금 카울리는 한국에서 앱을 만든다는 사람은 웬만하면 다 아는 프로그램이 됐다. 12000개의 앱에 카울리가 적용돼 있다. 매달 약 2500만명의 사람들이 카울리를 통해 띄워지는 광고를 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 대표는 2014년 전체 지분의 63.63%(당시 벤처캐피탈 등 투자자들이 FSN에 투자했던 지분 포함)을 옐로모바일에 매각하고 그룹의 일원이 됐다. 매각 가격은 약 178억원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스팩(SPAC·비상장기업과 합병한 뒤 상장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2차 투자회수도 마쳤다. 스타트업의 성공방정식을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신창균 퓨쳐스트림네트웍스 대표. by inklings>

 

해외 시장 개척에 집중


 신 대표는 아직도 모바일 광고 시장의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일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온라인광고협회에 따르면 올해 14000억원 수준인 모바일 광고 시장은 2017160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와 사용시간이 모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광고 단가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신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들이 웹보다 모바일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아직 모바일 광고단가는 웹에 비해 3분에 1수준이라며 모바일 비중이 커지고 광고 효과가 증명될 수록 단가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시장 상황은 좋은 셈이다.


 옐로모바일의 다른 계열사들과 시너지도 기대할만한 부분이다. FSN2014년 옐로모바일에 합류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시너지는 없었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옐로모바일이 그간 기업들을 인수하고 외형을 키우는데 집중하다보니 계열사 간 시너지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옐로모바일은 올해 중 현재 80개가 넘는 계열사 수를 줄이면서 지배구조를 단순화 하고 시너지를 내는데 집중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옐로모바일의 가격비교 서비스인 쿠차나 콘텐츠 서비스인 피키캐스트등 좋은 매체들과 FSN이 본격적으로 협업하면 적지 않은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 대표가 제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해외 시장 개척이다. 특히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의 유명인들과 협업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명인들은 기업의 의뢰를 받고 마케팅을 할 때 SNS에 글을 하나 올릴 때마다 돈을 받았다


 이같은 방식은 실제로 그 광고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FSN의 기술을 활용하면 유명인이 올린 글을 실제로 몇명이 봤는지 등 광고 효과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효과에 따라 광고주에게 돈을 받고 이를 FSN과 유명인이 나누는 것이다. 최근 인수한 베이징오블리스정보자문유한회사SNS상에서 유명인 마케팅을 대행해 주는 회사다. 신 대표는 옐로모바일이 해외 사업을 지원해 줘서 좀 더 수월히 시작할 수 있었다중국, 싱가폴 등에서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과 경쟁이 관건


그렇다고 미래가 마냥 장미빛인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카울리는 시장에 초기부터 진출했고 덕분에 많은 앱 개발자들이 카울리를 쓰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광고 시장이 유망해지자 대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NHN엔터테인먼트의 광고 계열사 NHN TX가 만든 토스트익스체인지’, 카카오의 아담등 국내 서비스는 물론 구글의 애드몹등 해외 대기업도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 신 대표는 우리가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많은 앱 개발자들이 카울리에 익숙해져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사용자 타겟팅 광고는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며 “FSN이 우수한 개발자와 자본을 갖춘 대기업과 경쟁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가관리도 FSN이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상장했다. 이후 거의 매일 주가가 하락하다가 지난 117일 갑자기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신 대표는 주가가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다아직 유통 주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적은 주식으로도 주가를 움직일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 아울러 실적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처음 상장한 기업이 주가를 조작하는 들의 타깃이 될 수 있고, 주가 변동이 심할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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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터넷 인사이드(limwonki.com)는 한국경제신문 임원기 기자 본인이 작성한 글만 게재를 해 왔습니다. 그것도 신문에 쓴 기사는 제외하고 별도 취재를 통해 새롭게 작성한 글만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임원기가 아닌 다른 기자의 글을 올립니다. 한국경제신문 남윤선 기자(by inklings)는 산업부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오랫동안 취재해 온 베테랑 기자입니다. 최근 저와 함께 스타트업 취재팀을 꾸리면서 합류, 스타트업과 첨단 기술,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같이 취재하게 됩니다. 이승우 기자(by leeswoo)는 경제부에서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을 출입했으며 IT기기와 최신 트렌드에 해박한 기자입니다. 역시 남 기자와 함께 스타트업 취재팀에 합류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시로 스타트업 취재 기록을 블로그를 통해 전달하게 됩니다. 우선 남윤선 기자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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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기가막힌 멜로디를 흥얼거린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노래로 만들면 대박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일반인들은 멜로디를 악보로 옮길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전설의 명곡이 수십만곡에 이를 지도 모를 일이다.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 쿨잼이 만든 험온은 이렇게 사라질 멜로디를 노래로 살려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이다. 흥얼거리기만 해도 그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것은 물론 발라드, R&B 등 각종 음악 스타일에 맞는 화음도 자동으로 입혀준다.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머신러닝’(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알고리즘을 활용한 최신 기술이 활용됐다. 수 많은 아마추어 뮤지션의 꿈을 살려줄 앱을 개발한 주인공은 삼성전자 출신의 최병익 대표다.

 

삼성을 뒤로 하고 창업한, 음악을 사랑하는 기술자


갤럭시노트7 사태등 이런 저런 사건사고가 있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직장 중 하나로 꼽힌다. 뒷면이 파란 삼성전자의 명함은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자 동년배 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최 대표는 이런 삼성전자를 떠나 험난한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대박의 꿈이나 거창한 계획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요, 사람들에게 쉽게 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고요.”


 최 대표는 원래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서 센서 선행개발을 맡았다. “2020년까지 모든 가전을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겠다는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의 비전을 실행하는 핵심부서다. 전공은 전기공학이다. 한편 교회에서 10년 넘게 반주를 하고 있는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원래 음악을 전공할까도 생각했지만, “음악은 취미로도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학도의 길을 택했다. 그러다가 삼성에 근무하면서 음악과 공학의 접점을 찾았다. 바로 MIR(music information retrieval·음악 정보 인출)이라는 학문이다.


 MIR은 쉽게 말해 소리인 음악을 신호로 바꾸어 정보화 시키는 것이다. 녹음과는 다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말 그대로 소리일 뿐이지만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면 이 소리는 정보가 된다. 개별신호를 가공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쪼개서 전달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MIR을 활용하면 악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맘껏 작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망설임없이 삼성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에 지원했다.


<'험온'이 띄워진 태블릿을 들고 토론을 하는 최병익 쿨잼 대표(첫줄 왼쪽)와 창업멤버들.남윤선 기자 >


 C랩 과제로 뽑히면 1년간 일상적 업무를 하지 않고 신사업 개발을 할 수 있다. 사업을 개발하면 사내 심사를 거쳐 분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삼성은 약간의 금액을 투자하고 지분을 가져간다. 최 대표는 험온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같이 할 사람을 찾았다.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삼성의 구동소프트웨어(OS)인 타이젠을 개발한 주역인 안영기 책임을 비롯한 쟁쟁한 인재 4명이 함께 사업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쿨잼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 대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멤버들은 삼성전자에서도 우수한 인재들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영기 최고기술책임자(CTO)우리는 모두 음악을 사랑했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최고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머신러닝활용, 허밍을 노래로 바꿔준다


허밍을 음표로 바꿔준다는 콘셉트는 간단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허밍으로 똑같은 도레미를 불러도 음색이나 소리의 진폭 등은 모두 다르다. 이를 기계적으로 악보로 옮기면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자신은 도레미를 허밍으로 불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이 인식한 건 도미레미파미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프로그램은 허밍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악보로 옮겨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기술이 머신러닝이다. 최 대표는 사람의 허밍은 파형이 굉장히 불안전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악보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수 많은 허밍 빅데이터를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해 사용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허밍은 물론 개짖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어떤 소리도 악보를 갖춘 음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단순히 악보로 옮겨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허밍을 악보로 옮겨주는 앱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험온은 악보에 좋아하는 장르의 화음도 붙여준다. 역시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했다. 프로그램이 많은 악보들을 학습해 사용자가 허밍한 멜로디에 최적화 된 화음을 골라 입혀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악보도 있지만 스스로가 음악 고수인 최 대표를 비롯한 팀원들이 직접 음원을 만들어 데이터를 입력했다. “스스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 앞으로 시장에 뛰어들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큰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일반인이 허밍을 악보로 만드는 게 신기할 순 있다. 출시 수개월만에 6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이 대중의 관심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 앱이 이 될까. 최 대표는 사업적인 가치도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유명 음악가들과 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화음을 입힐 때 인앱결제를 통해 박진영 스타일을 구매하면 그대로 음악을 구성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최 대표는 전문가들로부터 험온으로 만든 음악파일을 가공이 가능한 미디형식으로 추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올 초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3대 음악축제 중 하나)에 앱을 선보였을 때 미디 추출만 되면 100달러라도 지불하고 이 앱을 사겠다는 뮤지션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는 머신러닝을 연구하다보면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대표는 게임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음악 검색을 하고 싶어하는 검색사이트들과 협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식으로 독립한지는 석달이 채 안됐지만 벌써 해외 유명 포털사이트들과 미팅이 잡히고 있다. 앱도 좋지만 삼성 출신이라는 이름표와 각종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덕에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CTO자신 없었으면 삼성전자 타이틀을 버리고 나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by ink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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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요괴워치나 헬로카봇 등 최근 만화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손목 시계에 대고 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호출하는 등의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금 세대의 어린이들은 손목 시계를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한 것 같다. 마치 어른들이 스마트폰을 매일같이 사용하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어린이들을 위한 스마트워치 개발에 나서는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키위플러스는 그런 업체다. 이 회사의 장점이 있다면, 창업자들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출신들이라는 점. 그리고 하드웨어 뿐 아니라 디자인,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서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강점을 가진 인물들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23기 아헴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01학번인 서상원 대표는 학부 시절부터 일찌감치 창업에 나섰다. “첫번째 사업은 사실 창업이라고 말하긴 뭐하다라고 쑥스러워 하지만, 어쨌든 웹호스팅 사업으로 그의 첫 창업 이력이 시작됐다. 첫 사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아직 동기도 뚜렷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그는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웹하드 솔루션 사업이었다. 웹하드 사업자들에 대한 사이트 및 데이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그런데 계약까지 체결했고, 업체들이 상당한 매출이 발생했는데 돈이 들어오질 않았다.


 “분명히 엄청나게 매출이 나오고 있는데 솔루션 비용을 내질 않더라구요. 학생 시절에 경험이 없어서 그랬죠. 이쪽은 관리 비용이 계속 들어가는데 상대방이 돈을 제때 내지 않으니 사업을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1년 남짓 사업을 운영하면서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이때 웹하드 업체들로부터 발생되는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그는 데이터 보관과 처리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카이스트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당시 배운 이런 문제의식은 다시 한번 창업으로 이어졌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그는 철저하게 기술 기반의 회사를 설립했다.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함께 문제의식을 나눴던 선배, 동료들이 공동으로 아헴스(AHEMS)라는 클라우드 기술 회사를 2009년 창업했다. 아헴스의 주된 기수 영역은 클라우드 관리 솔루션. 그리고 분산파일시스템과 기존 CDN 서비스를 접목시킨 클라우드 컴퓨팅 네트워크였다.


 특히 아헴스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는 단순히 가상머신을 임대해 주는 것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게 자원 할당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장점이었다. 내부 자원이 부족할 경우 아마존 등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호환성을 제공할 수 있었다.


 아헴스의 이런 기술력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심이던 통신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창업한 지 불과 2년 뒤인 2011년 아헴스가 KT에 인수되면서 서 대표 역시 KT에 입사를 하게 됐다.

 

어린이용 스마트워치 시장의 발견


KT에서 1년 가량 클라우드 사업 부문장을 지낸 뒤 그는 LG전자로 적을 옮겼다. 2012년이었다. LG전자에서도 그가 맡은 일은 당연히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그는 LG전자에서도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 개발과 사업화 부문을 맡았지만 그 동안 소프트웨어 업무만 해 왔던 그에게 LG전자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 계기가 됐다.


 “2013년에 처음으로 국내에서도 어린이용 스마트워치, 즉 키즈워치라고 불리는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걸 처음 접하고 저도 자녀가 있고 그러니까 한 번 사서 써 봤어요. 그런데 상당히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에 분명히 시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제품이 엄청나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그가 이 분야에서 사업을 했을까. 잠재적인 경쟁제품을 보면서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한편, 자신이 만들면 이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 서 대표가 어린이용 스마트워치에서 주목한 것은 자녀들의 현재 상태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부모들의 수요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스마트워치가 그런 수요를 충족하는 데 최적의 제품이라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돼도 스마트폰을 쓰지만 5세에서 8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아직 한글 타이핑을 하는 것이 익숙치 않고, 유해 콘텐츠 노출 등에 대한 우려가 많은 데다 분실의 위험 등으로 인해 스마트폰을 쓰기 힘들다. 스마트워치가 있어서 자녀들의 위치 파악이 되고, 통화도 가능하면서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면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의 스마트폰 보유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요. 어린 자녀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우려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201243%였던 초등학생 저학년 어린이의 스마트폰 보유비율은 201434%로 뚝 떨어졌고 이후로도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LG전자에 재직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본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2013년말이었다. 카이스트 후배인 이준섭 대표가 신생법인 키위플러스의 대표를 맡았다. 서 대표와 이 대표는 LG전자와 삼성전자에 있는 카이스트 출신들의 후배들을 모아 회사 멤버를 꾸리고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했다. 제품 기획과 개발에만 꼬박 16개월 이상 걸려 드디어 20158, 키위플러스의 첫 어린이용 스마트워치 제품이 나왔다. 출시전 테스트 버전의 개발이 완료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배터리 전쟁


첫 제품을 딱 만들었는데,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전원을 켜놓고 대기 상태로만 있어도 배터리가 2시간밖에 안가더라구요.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배터리가 2시간 밖에 못 버티는 제품을 도저히 시중에 팔 수는 없었다. 키위플러스가 만든 키위워치는 국내 최초의 안드로이드 OS 기반 어린이용 제품이었다. 기존 어떤 제품보다 얇고, 고사양을 자랑했다. 기존의 제품들은 위치 추적과 전화 통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키위 워치는 영어학습, 한자학습 등 콘텐츠는 물론, 음성 인식 기능을 통해 부모와의 실시간 문자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했다. 굳이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도 이모티콘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능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어도 대기 시간에서 2시간 밖에 못 버티면 쓸 수가 없었다. 실제로 몇 번만 사용하면 채 1시간도 버티질 못하는 걸 발견했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였습니다.”


 서상원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들이 달려들었다. 부품 하나하나의 성능을 점검하고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기능도 다시 살폈다. 이미 스마트워치 제작 경험이 있는 중국의 샤오미 개발진들과 면담을 신청해 이들이 어떻게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렸는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최적화했는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약 석 달 간의 기간 동안 오직 최적화에만 공을 들였다. 기적처럼 배터리 시간이 늘었다. 2시간에 불과했던 배터리 지속 시간(대기 시간 기준)70시간으로 늘었고 2016년에 접어들어선 100시간으로 늘었다.


 초기 마젤란기술투자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은 데 이어 20164월 후속 투자를 유치하면서 키위플러스 경영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투자자들의 책임 경영 요청에 의해 최대주주인 서 대표가 키위플러스 대표에 취임한 것이다. 서 대표는 키위플러스 대표 취임 이전엔 핀플레이 대표를 맡고 있었다. 핀플레이는 스마트워치 제품의 통신사 유통과 A/S 등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키위플러스는 제품의 기획과 생산에만 주력하고 핀플레이가 유통 및 판매 이후 서비스를 책임지는 구조였다. 서 대표는 핀플레이와 키위플러스 모두에서 단일 최대주주였다.


 키위 워치는 당초 2015년말 출시될 때는 롯데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직접 판매를 하는 구조였다. 4000개 가량 팔렸는데, 신통치 않은 실적일 수도 있지만 이때 입소문이 나면서 통신사들과 협상이 용이해졌다. 제품의 성능을 확인한 통신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올해 4월부터는 KT 대리점을 통한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키위플러스 서상원 대표(왼쪽 네 번째)와 직원들.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Go Global!


처음부터 키위플러스는 국내 시장에 머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한국에서 팔면 수백만대 정도는 팔 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을 지향했다. 세계적인 키즈 스마트워치 제조업체가 되겠다는 것.


 글로벌을 지향하는 이들의 지향점은 라인캐릭터를 앞세운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10억명 다운로드, 매 월 2억명 이상 접속하는 라인메신저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네이버 라인과 제휴를 맺었다. 라인키즈폰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부모에 대한 추가적인 서비스를 출시하는 한편, 판매 이후의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부모 전용 앱을 출시, 자녀의 위치를 확인하는 한편,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게 만들었다. 부모가 앱을 먼저 다운로드한 다음에 특정 콘텐츠를 등록하면 자녀의 키위워치에서 해당 콘텐츠를 쓸 수 있는 구조다. 영어, 수학, 과학, 국어 등 학습 콘텐츠를 비롯, 아이 주변 위험 인물을 경고하는 늑대 탐지기서비스도 제공한다.


키위워치는 분명 전자제품이지만, 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키위플러스와 핀플레이 창업멤버 및 직원들은 소프트웨어 쪽에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 회사를 다른 경쟁사들과 구별짓는 요소라는 게 서 대표의 설명. 소프트웨어의 강점이 배터리 최적화, 다양한 콘텐츠 등 경쟁력을 갖게 했다.


 창업멤버들의 주된 경력이 클라우드 분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데이터 처리에 대한 경쟁력은 향후 서비스 확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키즈폰을 통해 축적되는 엄청난 양의 위치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린이와 부모를 연결하거나 어린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고안할 수 있다는 게 서 대표의 구상.


 “키즈폰 앱은 부모들이 거의 예외없이 무조건 위치 추적에 동의하는 서비스입니다. 여기서 자녀들의 동선이나 움직임에 대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어요. 앞으로 어린 자녀들과 이들의 부모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겠습니다.”


by wonkis


**이 글은 디지에코 스타트업 스토리(www.digieco.co.kr)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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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TRE)의 이철희 대표는 예전부터 쓰레기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쓰레기는 버려야 할 것이고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쓰레기를 다시 활용하는 것에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춥고 배고픈 나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관문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한 사업기회

그는 본래 건축학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00학번이라고 하니까 16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을 마치진 못했다. 아마 경제적인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고 인테리어 업체에 들어가 일을 했다고 한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2년쯤 있다가 중국에 프로젝트를 나갈 일이 있었어요. 중국에 가서 보니 중국 인테리어 시장이 급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냥 사무실에만 앉아서 행정적인 일만 처리했으면 아마 그런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현장을 다니는 일을 했다. 현장을 다니다보니 이쪽 분야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많은 물자와 사람이 모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중국 프로젝트 일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계속 그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직접 내가 해 보자하고 결심하고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사업 기회만 보고 달랑 단돈 200만원만 들고 중국에 갔다. 회사 직원으로서 중국에 갔을 때와 사업을 하러 중국에 갔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고객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인테리어 사업을 해 본 경험과 그동안의 인맥 등을 활용해봤지만 결국 현지에 있는 한국 사람들의 일거리를 맡아서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되긴 힘든 구조였다. 현지인들의 사업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자 일거리를 갈수록 줄어들고 갖고 있는 돈은 바닥이 났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정말 길거리에서 한달 반 정도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기를 쓰고 일감을 따 내 그럭 저럭 버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3년차부터는 한국 사람들 일감은 거의 안하고 중국인들의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리를 잡은 셈이죠. 그러다가 5년이 지나서 한국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결국 중국에서 중국 현지 일을 따내긴 했지만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의 어려움을 뼈져리게 깨달은 그는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2010년이었다.


 

첫 시도와 실패

이철희 대표가 한국에 돌아온 것은 중국 사업의 어려움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쓰레기를 활용한 사업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 중국에서는 아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봤다.


 귀국하자마자 그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개인 사업으로 인테리어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사업 경험도 부족했고 관련 시장에 대한 지식도 부족해 사업이 쉽지 않았다.


 그는 당초 쓰레기 가운데 소재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고 있었다. 그냥 쓰레기를 재활용해 물상품을 제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양한 물건으로 만들 수 있도록 소재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 소재화할 수 있는 재료를 찾는데는 시간이 걸렸고 그의 사업은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빚만 떠안은 채 2013년에는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커피 전문점을 지나던 그는 종량제 봉투가 터져 상당히 많은 양의 커피 찌꺼기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똑같은 광경을 몇 차례 본 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쓰레기의 재활용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 온 그이기에 가능한 물음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는 커피 찌꺼기가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다는 것, 0.2%의 결과물(커피)을 얻기 위해 99.8%가 버려지고 이는 커피 생산의 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커피 찌꺼기를 버리는 일은 커피 전문점을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커피를 취급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면한, 아주 귀챦은 일입니다. 대부분을 그대로 버리니까 손실이기도 하구요. 소각하는 과정에서의 환경적인 문제도 무시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찾던, 쓰레기 재활용의 궁극의 지점을 커피 찌꺼기에서 찾았다. 커피 찌꺼기는 일단 어디에서나 쉽게 수집할 수 있다. 즉 공급이 부족할 걱정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커피 찌꺼기를 수집한다고 할 때 쌍수를 들어 환영하거나 수집에 도움을 줄 이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쓰레기나 찌꺼기 중 비교적 다루기 쉽고, 천연재로 그대로인 상태(물이 첨가되긴 했지만)라는 점도 고려했다.


 문제는 커피 찌꺼기가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는 점이었다. 그는 각종 문헌과 논문 등을 닥치는 대로 뒤졌다. 그래서 커피 찌꺼기를 그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대로 소재화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봤다. 그의 결론은 소재화가 가능하다는 거였다.

 

나무를 베지 않고 나무를 만드는 회사


기존 회사를 정리하고 트리(TRE)라는 회사를 설립한 게 2013년말이었다. 당시 그는 커피찌꺼기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소재를 개발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


 꼬박 1년 반 동안 커피찌꺼기를 쌓아놓고 실험을 계속했다. 매일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찌꺼기 수십 박스를 받아와서 테스트를 했다. 의정부에 마련한 공장형 사무실에서는 끊임없이 화학반응을 실험했다.


 “커피찌꺼기에 대한 화학반응을 통해 얼마나 견고하게 굳어질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어요.”

스타벅스, 이디야 등 커피전문점을 다니면서 커피찌꺼기를 수집했다. 업소에서는 두 팔 들어 환영했다. 가뜩이나 처리하기 골치 아픈 커피찌꺼기를 그냥 가져가겠다니 반색을 하는 게 당연. 20156월이 돼서야 이철희 대표는 나무 대용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소재화에 성공했다. 이를 입증하는 특허도 출원했고 각종 특허 신청도 해 놓은 상태다.


 이 대표를 만나던 날 그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로버트 해리스란 카페로 안내를 했다. 여기엔 트리에서 개발한 커피찌꺼기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 조명갓 등이 설치돼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커피숍의 사장님은 이철희 대표가 사업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투자를 했고 이 대표는 이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만들어 커피숍에 비치를 한 것이다.


 제품을 보자마자 냄새부터 맡았다. 그런데 커피 냄새가 나진 않았다. “다들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이라고 하면 냄새부터 맡습니다.” 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설명을 따로 듣지 않는다면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냥 나무로 만든 원목 테이블 같았다. 실제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과 비슷한 강도를 갖는다고 했다. 테이블 뿐 아니라 각종 인테리어 마감재, 조명, 소품 등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원목을 가공하듯이 나무나 합판의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이 대표가 본래 지향했던 부분이었다. 즉 산업현장이나 인테리어 공사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일단 테이블 등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제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제품화의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제품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투자유치가 시설 확보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커피찌꺼기로 만든 테이블은 기존의 원목 테이블에 비해 40%-50% 저렴할 정도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 테이블 사이즈가 커 질수록 가격 경쟁력이 커진다. 원목으로 큰 사이즈(예를 들어 2m 이상)의 식탁을 만들 경우 단가가 급상승하는 반면 트리의 방식은 그럴 걱정이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무를 베지 않고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나무 대용 자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철희 대표의 말이다. 가구재로 많이 쓰이는 나무의 소비와 훼손을 줄인 리사이클 제품인 동시에, 디자인까지 접목한 업사이클 제품이라는 점이 포인트다. “트리는 '훼손하지 않으며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업사이클 전문 기업입니다.”


 스타벅스에 이어 이디야 등 커피 전문점에 납품을 시작했거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제품화에 대한 인정은 이미 받았다. 이제는 대량 생산과 소재를 통한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대형 가구업체나 원목을 활용해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에 소재를 판매하는 것에서 진짜 성장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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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갈 때면 새삼 느끼는 게 있다. ‘한국에는 참 싸고 좋은 옷이 많구나.’ 그런데 한국의 싸고 질 좋은 옷들이 해외에선 막상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스토레츠를 만든 재이 김보용 대표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 시작됐다.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로 발전한 그의 아이디어는 동대문표 의류와 자체 제작한 패션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면서 실행됐다.


 재이의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 '스토레츠'는 최신 유행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 빠른 상품 회전율,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유럽, 중동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했다. 올리비아 홀트, 제이미 정 등 할리우드 스타나 유명 패션 블로거들이 스토레츠 제품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1-2년새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스토레츠가 한국의 스타트업 243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왜 한국엔 ZARA 같은 브랜드가 없을까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는 대학 재학 중에도 전공에서 주로 다루던 국내외 정치 이슈나 정치 이론보다는 사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옷이나 패션 쪽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재미를 들였다고 한다. 사실 취미생활 수준이었을 수 있는데, 이걸 좀 격하게 한 것 같다. “대학 재학 중에 동대문에서 양말을 사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하기도 했는데 엄청 잘 팔렸어요. 그것 때문에 옥션 파워셀러가 되기도 했죠.”


 하여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양한 의류 상품을 이것저것 팔면서 의류 판매에 대한 을 익혔고, 결국 전공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택한 김보용. 2000년대 중반 훌쩍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 유학 중에도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한국 쇼핑몰 등에서 옷을 사입었다고 한다. “지마켓이나 동대문표 옷을 주로 입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사서 입다가 가져간 것도 있고, 해외에서도 한국 쇼핑몰에서 주문해다가 입었던 것도 있구요.”

 그런데 그냥 편하게 그의 취향대로 사 입은 옷에 대해 현지 외국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런 옷을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냥 동대문표 옷인데도 말이죠. 그만큼 예쁘고,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의 반응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한국 패션 의류의 경쟁력을 실감했어요. 그런데 왜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중화된 브랜드가 없을까이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그는 영국 백화점에서 인턴을 하기도 하고 현지 패션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틈틈이 경험을 쌓았다. “영국의 브라운스라고 하는 패션 브랜드에서 인터넷 사업부 인턴을 했어요. 해외에서 통하고 글로벌 소비자들을 겨냥한 온라인샵의 초기 상태를 경험해 본 셈이 됐죠.”


 이런 경험을 하면서 그가 자신이 생각했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한국의 패션 상품들, 특히 롱테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수많은 브랜드들이 좀 더 큰 시장에 나가지 못한 이유는 기업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아닐까.


 “기업화가 안 된 곳이 많았어요. 패션사업을 글로벌하게 더 키우려는 그런 시도가 적었던 거죠. 하지만 누군가 제대로 시도를 한다면 충분히 해 볼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목표를 쇼핑몰 창업으로 두고 귀국한 그는 우선 의류 업계의 공급망을 제대로 알기 위해 벤더 업체에 취직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는 업체에도 취직하기도 했다. 패션 상품의 주문부터 제작, 유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배웠다고 생각한 그는 2011년 인터넷쇼핑몰 스토레츠를 열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 와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옷 가게를 낸 것 같았다


기업화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그 역시 그쪽에 경험은 없었다. 일단 당면 과제는 인터넷에서 한국의 경쟁력있는 동대문표 의류 상품을 좋은 가격에,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것.

처음엔 개인사업자로 시작했다. 기존에 인터넷 쇼핑몰 파워 셀러 경험을 하면서 익히 해 본 일이었다. 그런데 옷을 팔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쇼핑몰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와 옷을 살 것 같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매장을 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스토레츠는 결국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의류 상품을 판매하는 게 주된 업이었고, 1차적인 관문은 좋은 상품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고 이를 잘 알리는 것이었다. 해외 소비자들이 찾는 상품이 많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사이트는 활성화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좋은 상품의 확보 못지 않게 해외 소비자들의 눈높에 맞춘 UI나 결제 시스템, 편리한 구매 방식 등이 선결돼야 했다.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문제는 자신있었다고 했다. 알리는 것도 하면 되지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결제 문제는 처음부터 이 회사를 난관에 빠뜨렸다.

해외에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옷을 팔아야 했는데 당시 한국의 결제 시스템 문제로 외국인이 한국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결제가 안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액티브엑스 등 복잡한 프로그램을 강요해서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죠. 정말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말도 못할 만큼 고생을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2013년 한국에서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도 물론 화제가 됐지만) 논란이 됐던 액티브엑스 문제가 떠올랐다. 해외에서 물건을 사려고 해도 결제가 안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대한 논란이었다.


 다행히 결제 문제가 조금씩 해결됐다. 결제문제가 개선되면서 해외 소비자들에 대한 마케팅도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업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법인화를 하면서부터였다. 본엔젤스 등 외부 투자자들의 조언을 듣고 협업을 하면서 사업이 크게 팽창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키운다


 “2015년에 들어와서 법인으로 전환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4년이나 지나서야 그렇게 한거죠. 법인으로 전환하고 본엔젤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동대문표 옷이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었다. 하지만 법인화를 전후해 상품의 구성이 다양해졌다. 스토레츠가 지향하는 것은 개성 강한 브랜드’. 한국의 자라(ZARA) 수준에 그치지 않겠다는 게 김보용 대표의 포부다. 즉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와 명품 스타일을 대중화시켜 빠른 시간 내에 상품을 선보이고 회전율을 높인 SPA 브랜드, 딱 그 중간 지점을 겨냥했다.


 “명품 브랜드는 고가라 부담스럽고, SPA 브랜드는 뭐랄까. 너무 유행만 좇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가 어렵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예쁜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결국은 동대문표 옷 만으로는 안된다. 직접 디자인한 옷의 비중을 늘리면서 스토레츠를 자체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


 올들어 지난해 상반기 대비 스토레츠 방문자 수는 5.5배 늘었고, 페이지뷰는 718%나 증가했다. 매출은 540% 증가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실적이 더 좋다. 김 대표는 2분기엔 작년 2분기에 비해 매출이 6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대응하면서 자라나 H&M과 같은 기존의 SPA 브랜드보다 훨씬 더 개성 강한 소비자들을 충족할 수 있는 디자인에 승부를 걸고 있다. 좋은 옷을 싸게 만들어내는 동대문의 효율성과 김 대표의 감성이 만나 현재까지는 반응이 좋다. 김 대표는 처음엔 한국의 자라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우수한 패션을 알리는 대표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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