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우주(Woozoo)라는 셰어 하우스(Share house) 사업을 하고 있던 김정헌 대표는 그 새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발을 내딛었던 셰어 하우스 사업은 안착을 해 있었고 그는 인큐베이터로서, 저자로서, 창업가로서 다양한 일에 다시 도전하는 중이었다.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2012년부터 그가 2년여 기간 동안 사업을 구상하고 멤버를 모으고 사업을 일궜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책 제목은 ‘같이의 가치를 짓다’. 그가 한 사업의 핵심을 제목에 고스란히 담았다. 프로젝트 옥, 우주 사업을 함께 했던 계현철, 이정호, 조성신, 박형수 등 창업멤버들과 함께 책을 엮었다.

지난해 초 그를 만났을 때 우주의 첫 셰어 하우스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단하지만 묵직했다. 꿈이 있는 사람들끼리 공간을 나눠서 같이 생활을 하자는 것. 공유경제의 일환이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주거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기업 창업가다운 해법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그 뒤로 착실하게 사업은 진행됐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15개의 셰어 하우스가 나왔고 지금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처음 그의 창업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그의 생각이 난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 그것을 위해 하나씩 준비해나가는 과정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아마 그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나에게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으리라. 그가 쓴 책을 보면서 그런 어려움과 고난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해 내고야 마는 그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주거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는 개인들의 문제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제 점점 국가나 공공기관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젊은 나이에 주거 문제에 대한 압박으로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나름의 해법을 던져보겠다고 나선 것이니 어찌 의미가 없을까.

그런데 그는 최근 회사 경영에서는 손을 떼고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고 했다. 과거 함께 딜라이트라는 보청기 회사를 창업했던 김정현 대표가 우주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청년 김정헌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이 순조롭게 되고 있는 가운데 왜 중단했을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불확실 가운데 뭔가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그의 적성에 보다 맞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그는 그래서 현재 JP모건이 지원을 하고 희망제작소가 기획을 한 사회적 기업 스타트업 과정에서 멘토링 및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경제 핵심인재 육성센터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투자자들에게까지 연결해주는 게 그의 하는 일이다.

그는 과거 학생 시절에도 JP모건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 기업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소시지 프로젝트(Soci知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사회적 기업을 배우고 알아가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예전부터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 UBS 등 글로벌 IB은행들이 사회적 기업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일종의 사회 공헌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그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싶은 팀 중 이미 사업을 시작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팀 중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만한 그런 팀을 뽑는 게 1차 작업이다. 이미 현재 15개 창업팀을 발굴해서 컨설팅을 하고 있는 단계. 그에게 몇 가지 사례만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눈 뜨면 도착’이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팀이 있어요.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쉽게 말하면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같이 빌리는 그런 서비스입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역에 하는 학생들끼리 전세버스를 빌려서 타고 다닌다는 것. 예를 들어 일산이나 분당, 평촌, 판교, 용인, 수원, 남양주 등 수도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신촌에 있는 학교까지 오려면 차를 여러번 갈아타거나 버스를 타고 와도 계속 서서 와야 해서 학교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같은 지역에 사는 학생들끼리 매달 몇 만원 수준의 적은 금액만 내도 전세버스를 빌려서 차를 같이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하면 차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앨 뿐 아니라 계속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공실률 50%가 넘는 동네독서실의 남는 자리를 공유하는 서비스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폐이어폰, 즉 한쪽이 들리지 않거나 못쓰게 된 이어폰을 기증을 받아서 이걸로 팔찌를 제작, 수익금을 청각장애인에게 보내는 보청기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사회적 기업도 15개 중 하나다.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하거나 이와 관련해 인큐베이팅을 하는 곳은 제법 있다. 그가 하는 것의 차이점은 경험자가 한다는 것.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성과를 낸 창업가가 다른 사회적 기업 창업가에게 방향을 가르쳐주고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창업을 하는 것도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또 해봐야죠. 뭔가를 시작할 때 가슴이 뛰고 의욕이 생겨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창업의 형태로 해보겠다는 것. 그것을 계속 잡고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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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오랜 기간의 준비 과정과 경험을 통해 확보한 실행력. 많은 것을 갖춘 팀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대의명분까지 있다. 프로젝트 옥((PJT OK)의 창업자는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벌써 네번째 등장하는 사회적기업 동아리 넥스터스 대표 출신이다. 30대 초반이지만 벌써 두번째 창업이고, 두번째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창업을 거듭하면서 그가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업의 모습도 진화해가고 있다. 소셜 하우징 ‘우주’(WOOZOO)를 첫 프로젝트로 시작한 김정헌 프로젝트 옥(PJT OK) 대표를 만났다.

◆고등학생때부터 창업을 꿈꾸다

김정헌 대표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창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꿈꾸던 창업은 여느 사업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은 없을까.’ 이게 고등학생 김정헌이 하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2때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등을 거쳤다. 2002년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그는 자신이 꿈꾸는 남다른 사업가의 길을 고민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의 사회적 기업 동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미시간 주립대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년 동안 그는 이 연구소에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적기업 자료와 실태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2008년 귀국했을 때 한국에서는 때마침 넥스터스(NEXTERS: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사람들)라는 사회적기업 동아리가 출범해 있었다. 넥스터스는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한상엽 위즈돔 대표가 만든 국내 최초의 사회적 기업 대학생 연구 동아리. 한 대표와 면접을 보고 대학생 김상헌은 넥스터스에 들어갔고 2대 대표가 됐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의 확신은 굳어졌다. “사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업은 내 인생에 의미가 없다” 이렇게 생각한 김정헌 대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창업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아무런 사회 활동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대학생으로서 바로 창업을 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더라구요. ”

 그래서 그는 일단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하나은행에 입사해 기업금융팀에서 2년간 일을 한 그는 단기간에 가장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컨설팅 업체 아서디리틀(Arthur D. Little)에 입사해 컨설턴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절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창업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같은 넥스터스 출신의 김정현과 함께 딜라이트라는 회사를 차리고 보청기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사업 아이디어를 낸 김정현이 대표를 맡았고 컨설팅 회사에 있던 김정헌은 2012년초 아서디리틀을 나와 본격적으로 딜라이트 일을 함께 했다.

◆두번째 창업, ‘프로젝트 옥’

김정헌 대표가 딜라이트를 창업했던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싶었기 때문. 첫 창업에서 그가 생각한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그런데 회사가 순조롭게 성장하고 궤도에 오르자 그는 또 다른 일에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른바 쉐어 하우스(Share house).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젊은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경기는 어려운데 주택 임대료는 치솟아 힘들어지는 상황을 해결해주는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2012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포럼에 참석했다가 대학생인 계현철(서강대 전자공학과 06학번)을 만나는 등 함께 창업할 만한 사람들을 알게 된 것도 그를 자극했다. 그의 계획은 흔히 생각하는 집을 짓고 어려운 사람들을 살게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집을 활용하되 전세로 구한 뒤 리모델링을 해서 저렴한 가격에 대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 즉 집을 전세로 구한 뒤 이 집을 다시 임대하는 것인데, 그는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로 했다. 집만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그의 기획이었다. 

그는 회사 이름을 '프로젝트 옥(屋)'이라고 명명했다. 옥은 한자로 집을 뜻하는 말인데 영어로 쓰면 OK로 쓸 수 있다. 어감이 좋다. 김정헌, 계현철, 이정호, 박형수 등 4명이 창업 멤버로 뭉쳤다. 

 프로젝트 옥은 말 그대로 집에 대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경영은 김정헌 대표가 맡았다. 나머지 창업 멤버인 계현철, 이정호, 박형수 등 3명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들이다. 그리고 모두들 어떤 형태로든 쉐어하우스를 경험해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계현철은 런던과 파리에서도 쉐어하우스에 살아본 경험이 있다. 

“창업 멤버들이 모두 쉐어 하우스를 경험하면서 현재 전월세 주택이나 홈스테이 시스템의 문제점, 세입자들이 느끼는 어려움 등을 체험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습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해당 일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나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 옥은 첫번째 프로젝트로 우주(WOOZOO)를 기획했다.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집’이 표어다. 홈 페이지(http://woozoo.kr)도 최근 오픈했다. 우주는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대학생들을 위한 공동주택을 기획했다. 등록금 부담에 갈수록 치솟는 집세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사업적으로 돈도 된다는 게 김정헌 대표의 설명. 기존 집을 빌려 리모델링하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는다. 이를 위해 전대사업자로 등록도 했다. 

◆우주, 2월15일까지 첫 입주자 모집

우주의 첫번째 집은 1층짜리 한옥을 개조한 집. 테마는 ‘창업’이다. 우주 프로젝트의 특징은 그냥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는 점. 즉 대학생들 중 아무나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을 한다. 왜 이런 테마를 삼았을까.

 “젊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을 수 없쟎아요.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나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서로 배우고 적응하면서 살기가 훨씬 수월하리라 판단했어요. 무엇보다 우주의 목표는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이런 쉐어하우스를 통해 경험과 지식도 공유하는 거거든요. ”

 2월15일까지 첫 입주자를 모집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2월12일 현재 41명이 신청했는데, 이 중에는 대학생이 아닌 사회 초년생 직장인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일단 이번 테마는 창업을 지향하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직장인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김정헌 대표는 곧 일반 직장인들,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공간도 만들어갈 계획이다. 이번에 신청한 직장인들은 대기자 명단에 올라간다.

 신청자 중 3명을 뽑는다. 직접 면접도 실시하고 있다. 3명이 선정되면 이들은 한 달에 35만원을 내고 새집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35만원에는 관리비, 가스비, 인터넷 등이 포함되고 빌트인 가구도 제공된다. 신촌 대학가 인근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방이 간신히 한 사람이 살 만한 수준인 것에 비교하면 훨씬 환경이 좋다. 

 김정헌 대표는 이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창업이 테마인 만큼 성공한 창업가나 멘토가 될만한 창업가를 선정해 대화를 나누고 강연을 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두번째, 세번째 테마도 곧이어 나온다. 두번째 테마는 미술 지망생들. 이들을 위한 남산 시민시범아파트를 이미 구해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이 집도 2월중 오픈한다.

 프로젝트 옥의 첫번째 프로젝트 우주는 전적으로 어려운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즉 대학생 구제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거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김정현 대표는 기업체들의 투자나 기부를 받을 계획이다. 가장 부담이 되는 게 전세보증금인데 기업들이 몇년 후 전세보증금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즉 자금을 빌려주는 부담이 없다. 기업들이 요청할 경우 이자도 지급할 수 있다는 게 김정헌 대표의 설명. 

 “쉐어하우스는이미 미국이나 유럽, 이웃국가인 일본에서도 1인주거의 대안으로 널리 자리잡았습니다. 현재 1호점을 종로구 권농동에 오픈하고 홍보중인데요, 2월 말에 첫 입주자가 생기고 올 해 안에 10개의 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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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활기가 넘쳤다. 문이 반쯤 열린 회의실에서는 회사를 방문한 손님들과의 토론이 한창이었다. 사무실 안쪽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려는 여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김정현 대표를 만나러 서울 당산동에 있는 딜라이트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마침 자리를 잠깐 비운 상태였다. IT(정보기술) 분야의 벤처를 주로 취재해온 나에게 딜라이트 사무실의 풍경은 신선했다.  사람과 PC로만 가득찬 적만한 그런 사무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를 기다리면서 찬찬히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서는 보청기를 만드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고 포장과 판매를 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그를 만나자마자 든 생각은, 그를 너무 늦게 만났다는 점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고, 돈을 벌고,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본 그는 창업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사회적 기업이 유행이나 일시적인 붐에 그치지 않고 영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아마 딜라이트의 가는 길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당초 사회적기업을 취재하기 위해 소개를 받고 받다가 그를 만나게 됐지만,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해 꼭 소개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생때 첫 창업

고등학교 2학년때인 2003년, 김 대표는 첫 창업을 했다. 그의 첫 사업은 온라인쇼핑몰. 당시 한창 유행하던 MP3플레이어, 전자사전 등을 싸게 구입해다가 마진을 붙여서 온라인에서 파는 일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돈을 제법 벌었다고 한다. 

 “정말 쉴 새 없이 일했어요” 

 그가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첫 대입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도 영향을 미쳤다.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던 것이다. “어차피 대학에 못 간 거 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돈을 벌었죠. 한 달에 천만원씩 벌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직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은 꽤나 공허했다. 학교에 가서 학업을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대학 입시가 끝나고 동기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1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2007년 학번으로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어서 돈 걱정은 좀 덜하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는 김정현 대표.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해 보니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지만 학업을 통해서 진리랄까, 아니면 삶의 의미? 이런 것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창업을 기웃거리게 됐죠.”

 1년반 정도 공부를 하다가 그는 2008년 사회적기업 연구모임 넥스터스를 만들었다. 넥스터스는 당시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사회적기업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이를 어떻게 국내에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한 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대학 연합 동아리 성격을 띄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돈’ 버는게 목적인 인생에 지쳤다

우선 드는 생각은 ‘그는 왜 이런 걸 시작하게 됐을까’다. 그에게 물어보니 ‘돈 버는게 목적인 인생에 회의를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회적 기업 기업가다운 답변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구체적인 동기가 궁금했다. 

 “돈을 벌어서 내가 잘먹고 잘사는 것 말고 뭔가 다른 게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정말 공허하더라구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나중에 뭐가 남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 그래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넥스터스를 만들고 여기를 통해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사업을 하는 그런 일을 추진하게 됐죠. 때마침 외국에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고 해외 사례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동기부여가 됐죠.”

 레인보우브릿지라는 회사를 시작한 게 2008년. 8명이서 창업을 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생산한 과자 등 제품을 사다가 판매를 하는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었고, 조금씩 하면서 방향을 모색하고 확장을 검토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초기 창업 규모가 너무 컸던 것도 문제였고 사람이 많다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것도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넥스터스를 통해 경로당에 봉사활동을 다니다 귀가 잘들지 않는 노인들이 150~200만원을 호가하는 보청기를 구입하는 것을 보게 됐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보청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던 김남욱씨를 알게된 것도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보청기 사업을 구상하면서 인도의 사회적기업인 아라빈드 안과병원을 롤모델로 떠올렸다. 지난 1976년 설립된 아라빈드 병원은 최고의 안과전문의들이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면서 명성을 떨쳤고 부자 환자들이 앞다퉈 병원을 찾게 됐다.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연간 수입 1534만 달러, 영업이익은 680만 달러다.

 비록 직접적인 의료행위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모델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김정현 대표는 김남욱, 원준호, 그리고 넥스터스 멤버인 김정헌씨와 함게 넷이서 보청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기 전 20094년 4월 중소기업청에 저가보청기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사업지원금 2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보청기 기술력 확보를 위해 연세대 내 의료기기 연구센터와 함께 파트너쉽을 구축했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혁신, 딜라이트

미리 사업제안서도 썼고, 몇 차례 창업 경험도 있었고, 창업 동기도 뚜렷했지만 역시 사업은 쉽지 않았다. 보청기를 자체 기술로 만들려다보니 첫 모델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래도 대학생 청년이 사회적 기업을 한다는 소식에 도와주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2011년 3월에는 기술보증기금에서 사회적기업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고 같은 해 6월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사회적기업 부설 기술연구소 설립 인증을 받기도 했다.  딜라이트가 지향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청기 지원 금액인 34만원에 제품의 가격을 맞춰 소외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수요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 시중에서 보청기 가격이 한쪽에 100~200만원씩 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보청기 지원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이런 고가의 보청기를 구매할 형편이 안되는 청각장애인이나 난청인들이 경제적인 고민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 직접 보청기 생산시스템을 만들었다. 솔라이어라는 보츠나와 기업으로부터 태양열을 이용한 충전기술을 전수받아 저렴한 생산이 가능해졌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기존 보청기업체들의 유통 경로를 파괴했다. 중간에 거치는 수많은 유통상을 건너뛰고 직접 소비자들에게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보청기 구매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1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50억원대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청기 사업만으로는 결코 기업 존재의 이유, 즉 이윤추구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윤추구라는 목적만 놓고 보면 이런 가격에 이런 사업을 결코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사회적기업이 할 일이죠. 어쨌든 기업이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이런 사회적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꾸준히 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딜라이트는 저가형 보청기만 만들지는 않는다. 고가형, 프리미엄급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금전적 도움 필요한 이들 연결하는 서비스 준비 

사실 딜라이트의 보청기 사업은 그가 하려는 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청기 사업을 통해 한국에서도 소셜벤처, 또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다른 분야의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어찌보면 보청기 사업으로 그는 사회적 기업의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다음 단계의 일은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업. 물론 지금의 고금리 악질 대부업체와 같은 모델은 아니다. 청년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되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일이다. 

 “매월 소액의 자금을 기부를 해도 경제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또는 시간이 없어서 그것을 못하는 사람이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 반면 도움을 받고 싶어도 통로가 없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런 사람들을 온라인을 통해서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중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기부를 할 수도 있고, 저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도 있습니다. 딜라이트는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죠.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를 모델로 하되 좀 더 현 상황에 맞게 소셜 요소를 도입해서 해 볼 계획입니다.”

 이 사업은 내년 하반기께나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을 했을 경우 상환율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올 하반기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베타 서비스 형태로 제한적으로만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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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항상 너무 막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기여는 돈을 벌어서 세금을 잘 내고 인재를 채용해서 젊은이들을 흡수하고 착실하게 성장해 이같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큰 관심을 갖지 않거나 한계가 많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기업’에 속하는 회사다.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이라...더욱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제너레이션(Wegeneration)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창업자의 남다른 신념에 끌려서였다. 그리고 아직은 이런 분야에서 너무 척박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런 시도에 대한 갈증때문이기도 하다.

◆남다른 어린 시절이 촉발한 문제의식

문성현 위제너레이션 대표는 유년 시절을 태국에서 보냈다. 대기업에서 일하시던 부친이 해외 지사에서 근무를 한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마치고 그는 다시 국외로 나갔다. 이번엔 멕시코였다. 멕시코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은 미국으로 갔다.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멕시코에서 보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배웠을까. “태국과 멕시코는 모두 빈부격차가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정세도 불안정했구요. 국민의 절반은 판잣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부자는 행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대다수는 불안하고 불행해보였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아 모두들 경호원을 데리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빈부격차가 심한 멕시코에서 그가 학교를 다닐 때 이미 공교육은 붕괴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은 모두 멕시코에선 외국인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국인인 그가 볼 때 외국인학교를 다니는, 꽤 잘 사는 멕시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멕시코를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국가 정체성이 희박했다. 이런 사회가 되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립초등학교 방과후프로그램에 가서 스페인어와 수학을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재미있죠? 외국인인 제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다니 말입니다.”

 2004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University of Pennsylvania(유펜)에 생명공학을 전공으로 입학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에겐 약간의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과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한 그는 동아시아학과 경제학, 그리고 신경과학을 한꺼번에 복수전공으로 택해 공부했다. 여러가지를 하다보니 졸업이 약간 늦어졌다. 2008년 12월에 학업을 마쳤을 때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학부에서 얻은 지식으로는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는 거였다. 

 대학 졸업후 2009년 노스웨스턴 로스쿨에 진학, 기업법과 법경제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자신을 포함해 그가 창업을 통해 기업가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올 4월 로스쿨을 수료하자마자 한국으로 들어와 사회적 기업 위제너레이션을 창업했다. 

◆세상에 대한 공헌을 먼저 하자

“어머니가 항상 강조했던 말씀이 있었어요. ‘부의 축적이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되서는 안된다. 이웃들과 나눔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였죠.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애쓰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나눔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었습니다.”

 생각은 일찌감치 해왔지만 계기는 천천히 만들어졌다. 나눔을 실천하는 것에 꼭 창업이라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그 방법을 택했다. 여기에는 분명 계기가 있을 것이다.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학부 3년 동안 문 대표는 신경과학연구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험을 살려 로스쿨에 진학한 뒤 2011년 폐부종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관련 의료 기기 사업으로 창업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창업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변호사 생활을 3년 정도 하고 나서 창업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갑내기이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신현성 티켓몬스터 사장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소셜네트워크와 모바일 열풍이 부는 것을 목격하면서 트위터를 활용한 광고를 활용한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변호사 생활을 먼저 해 볼 생각을 접고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변호사와 창업은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로스쿨에서는 모든 정황을 고려하는 종합적인 판단을 가르칩니다. 그런 훈련이 창업에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 그는 유명인 트위터를 활용해 광고를 하려고 했다. 친구들과 4명이서 파트타임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기업이나 상품의 광고를 유명인들 트위터를 통해서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유명인들이 이런식으로 트위터에서 이름이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초 그는 ‘돈을 번 다음에 기부나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큰 돈을 번 다음에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세상에 공헌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일을 직접 해보자는데 생각이 이르렀다. 이런 생각에 골몰해 있던 그의 눈에 좋은 사업모델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던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소통이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크라우드 펀딩이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었지만 그는 이 모델이 그대로 한국에 들어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기부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기부 사이트가 수수료를 떼는 것에 대해서 정서적인 거부반응이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미국에선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5%의 수수료를 받는다) SNS가 미국처럼 활발하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2012년 1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한국에 먼저 들어와있던 김철희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문 대표와 동갑내기였고 유펜에서는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큰 그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처음 시작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상의를 했죠.”

 한국에서 취직 준비를 하고 있던 김씨가 합류하기로 했고 이어서 역시 유펜 출신의 김영인, 성대 경영학과를 휴학중이던 박서영 등이 뜻을 같이했다. 이주호 영상프로듀서와 시카고 미대 출신의 심정현, 이아이리스 등 디자이너가 오면서 팀이 완성됐다. 7명은 올 4월 자본금 4000만원으로 위제너레이션을 설립했다.

 위제너레이션이라는 회사명은 ‘젊은 우리 세대야말로 의미있는 나눔으로 이 사회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 멋진 세대다’라는 뜻을 담았다. 

 쉽고 재미있고,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부에 초점을 맞추고 천원부터 시작하는 소액기부, 유명 인사 및 기업과의 협력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기부 문화를 만들어 나가려는 게 위제너레이션의 출발점이다. 

 “돈이 있어야만 이웃을 돕고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과 기부는 기본적으로 사회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 소통이란 돈이 아니라 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제너레이션은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이런 소통의 문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연인이 함께 손잡고 걸으면서 교통비를 아껴 천원씩 기부를 하고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하고 식사비를 아껴  천원씩 기부를 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사업 철학이다. 돈을 번다는 차원에서는 큰 꿈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문화를 바꾸고 새로 만들어보겠다는 점에서는 정말 큰, 거창한 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SNS 등을 통한 기부만으로도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을까. 위제너레이션의 기부 서비스는 7월말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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