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6.15 한국의 스타트업-(84)엔키노 성기범 대표 (1)
  2. 2012.03.02 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자를 만나다 (2)

‘아이러브스쿨’에서 맛봤던 그 달콤한 꿈을 잊을 수 없었나보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버렸지만 2000년 아이러브스쿨에 있을 때 이들은 행복했었다. 매일 밤을 세고 사람들이 모이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인생도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아이러브스쿨은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때 그 기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창업의 자리에 섰다. 엔키노 성기범 대표와 임준규 이사의 이야기다. 인터넷 벤처 초기 시절 못 다 이룬 그 꿈을 이들은 이제 모바일 시대를 맞아 다시 이루려 하고 있다.

◆아이러브스쿨에서 벤처의 꿈을 꾸다

홍익대 산업공학과 89학번인 성기범 대표는 졸업직후 고려대 산업공학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홍익대에서 당시 막 군대에서 제대한 김영삼 대표(홍익대 87학번)를 만났다. 나이차도 얼마 안 나고 성향도 비슷했던 이들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MIS(경영정보시스템) 과정을 김영삼 대표와 함께 이수하게 됐고 여기서 프로그래머가 되는 기반을 닦았다.

 97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 기술기획팀에 입사해서 만난 사람이 당시 임준규 과장이었다. 임준규 과장은 LBS(위치기반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성기범 대표 역시 김영삼 대표와 함께 만났다 하면 창업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기에 임준규 과장과도 번죽이 잘 맞았다. 

 때마침 김영삼 대표가 아이러브스쿨을 창업하고 증가하는 트래픽으로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2000년초 성기범, 임준규 두 사람은 삼성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러브스쿨에 합류했다. 성기범은 마케팅 홍보팀장으로, 임준규는 기획팀장으로 각각 입사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대박만을 노렸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회적 분위기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눈앞에 빤히 보이는 엄청난 기회들을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었다. 사용자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주변의 부추김도 이들에게 대박의 꿈을 꾸게 했다. 실제로도 아이러브스쿨의 사회적 파장효과는 엄청났다. 하지만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지, 어떤 식으로 확장시켜나갈지, 매각한 뒤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감이 없었던 이들은 결국 회사를 잃었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 2001년 1월 성기범, 임준규 두 사람은 먼저 아이러브스쿨을 떠났다. 하지만 손에 얼마간의 돈은 쥔 상태였다. 2001년 4월 성 대표는 밸류랩이라는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를 차렸다. 자신은 완결짓지 못했지만 벤처의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루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성기범, 임준규 뿐 아니라 김영삼 대표도 합류했다. 그야말로 아이러브스쿨 출신들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실패로 지쳐있던 이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밸류랩에는 성기범 대표 혼자 남아있게 됐다.

◆다시 시작해보자

밸류랩은 2002년 북모임이라는 일종의 사이버 서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가상의 도서관에 내가 정보를 직접 등록하고 이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컨셉트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등록하자’를 기치로 내 걸고 시작했다. 이런 것을 하면 어떤 편리함이나 이득이 있을까.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DVD를 등록했다고 합시다. 나와 친구든 온라인에서 어떤 관계를 맺은 사람은 상대방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그것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다른 것과 교환할 수 있죠.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갖고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지까지 알면 여러가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Who has what?”을 주제로 한 북모임 서비스는 당초 모든 물건을 등록할 수 있게 하자는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우선 가장 등록이 쉬운 책으로 출발을 하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지역 정보가 결합되면 지역을 기반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지가 파악이 된다.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2005년 코리아닷컴과 제휴를 맺으면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확장, 8000여명의 사람들이 5만5000권의 책 정보를 올려놓게 됐다. 

 “서비스가 막 확장하고 있던 시점에 당시 인기를 끌던 미니홈피 스타일로 변경을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 방식을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국내에서 성과가 빨리 나오지 못하면 글로벌에서 승부를 봐야했는데 글로벌화를 못한 것도 아쉬웠구요.”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한계를 느낀 성기범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거기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7년 다시 귀국해 IT와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일했다. 그래도 그는 마음 속에 계속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때 계기가 마련됐다. 

◆사람들의 스마트폰 ‘홈’을 장악하겠다

2010년말 성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연세대컴퓨터공학과 88학번 출신인 문현정씨를 2010년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문현정씨는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비자발급 관련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류를 미리 정해진 양식으로 작성을 해서 대사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문현정씨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저작권이 본인의 소유가 아니라 미국 정부 소유가 되면서 미국의 전혀 엉뚱한 업체가 이것을 활용해 돈을 벌게 된다.

이것을 보고 분노한 성기범, 문현정. 두 사람은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가 떳떳하게 팔아서 자립하자”고 의기투합, 2011년 8월8일 창업했다. ‘아빠의 자격’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팀을 만들고 SK텔레콤의 상생혁신센터에 아이디어를 제안해 1인 창조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때 ‘환전왕’이라는 앱을 만들어 5만건이 다운로드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어떤 은행에서 환전을 하면 가장 싼 지,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 해당 은행 중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딘지 등을 알려주는 앱이었다. 

 이들의 다음 프로젝트는 ‘꽃 인식 앱’. “꽃에다 앱을 갖다대면 무슨 꽃인지 바로 알려주면 재밌지 않을까? 확장되면 꽃이 아닌 다른 분야로도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그러면 사용될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임준규 부사장이 합류했고 디자인을 맡을 손범진 팀장이 새로 들어오면서 팀 구성이 완료됐다. 그런데 인식을 한 이미지를 프로세싱 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배경화면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착안하게 된다. 

 “이제 모두들 PC를 손에 들고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배경화면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그런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스마트폰의 홈을 장악하자! 배경화면은 결코 그냥 배경화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게 출발점이 됐습니다. ”

 그렇게 해서 나온 앱이 키노(Kino). 처음엔 동영상으로 배경화면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앱으로 출시됐다. 어떤 동영상이든 키노 앱을 활용하면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바꿀 수 있다. 배경 화면을 여러가지 자신의 입맛대로 변화시키거나 복수의 배경화면을 깔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아이폰에서는 안된다. 안드로이드폰에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각자 찍은 동영상으로 배경 화면을 만들고 자신의 배경화면을 남과 공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바탕화면에서 이미지와 동영상을 주고 받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게 엔키노의 구상이다. SNS 기능이 추가된 새 버전의 키노 앱은 3개월 뒤 출시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특정 앱이 아니라 바탕화면이 개인적인 미디어 공간이 될 것이란 게 성 대표의 가정. 즉 광고업체들이 이제 특정 앱을 실현해야 하는 그런 광고판이 아니라 개개인의 휴대폰 바탕화면에서 직접 광고를 하고자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앞서 스마트폰 홈을 미리 장악하겠다는 계획. 인식 앱을 만들려고 했다가 일이 커졌다. 아이러브스쿨 출신들의 재미있는 실험이 무르익고 있다. 

신고
한국경제신문 2월27일(월)자 1면에 실렸던 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인터뷰 내용의 전문을 싣습니다. 신문에는 지면 사정상 일부만 게재됐습니다. 임정욱 라이코스 대표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전문을 요청하셨습니다만 제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MWC 2012 취재차 체류하고 있었던 관계로 블로그에 전문을 올리는 게 좀 늦어졌습니다. 그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모두 올립니다. 신문에는 제목을 뽑기 위해 특정 대목을 앞으로 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이 글에는 시간 순서대로 제가 그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그대로 올렸습니다. 이번 취재는 윤희은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1차 내용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혹시 김영삼 사장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은 아마 좀 어리둥절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읽지 마시고 이 글 끝으로 스크롤해 내려가면 김영삼 사장이 누구인지 제가 간략히 써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먼저 본 후 읽으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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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아이러브스쿨 창업자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한 벤처기업가가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문턱에서 좌절한 스토리는 무엇일까. 마음 한 구석에 착잡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쓸까에 대한 고민은 둘째였다. 너무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괜한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한편으로는 그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자리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점차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뜻밖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저는 금양 정현철 전 사장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의도가 어찌됐던 결과적으로 나를 속였고 그로 인해 큰 손해와 엄청난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저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 그대로 돈을 벌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성공을 거뒀다면 저는 인간 말종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경영 철학도 없이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사업을 하고 으스대고 돈을 마음껏 쓰면서 기업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아니 그 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았겠죠. 지금 돌이켜보면 금양과 주식 매각 계약을 체결하던 전후의 시점, 저는 인간으로서는 망가진 존재였습니다. 진실한 사랑도 없었고, 삶에 대한 고민도 없었죠. 그러고 보면 그런 일을 겪은 후 저는 오히려 그때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말종이 되지 않도록 기회를 준 정현철씨에게 감사합니다.”

 정말 뜻밖이었다. 지난 11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돈도 잃고, 친구도 잃고, 가정도 잃고, 자존심과 명예까지 모두 잃었다.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며 그냥 생을 마감해버릴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것은 자신의 실패담이 창업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때문이었다고 한다. 내가 대화 내용 전문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흔쾌히 동의했다. 많은 것을 초월한 듯한 그런 모습도 보여줬다. 그와 장장 3시간에 걸쳐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원래 창업에 뜻이 있었습니까.

 “창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정보학과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었는데 같은 연구실 옆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싸이월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인맥 기반으로 하려면 학연이 최고인데 그걸 안하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내가 해보자’고 어느날 결심하고 만들었죠. 연구실에 같이 있던 이춘석, 최병구 두 사람과 같이 각자 50만원씩 내서 150만원으로 PC 사서 개발했습니다.”
▶학교에서 시작한 건가요?
 "그렇죠. 당시 카이스트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인터넷 환경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카이스트 출신들 중 많은 IT 창업자들이 나올 수 있었죠. 저희도 학교 밖에서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이트를 오픈하고 나서 얼마 안돼 (회원이 몇 없던 시절인데) 비만 오면 사이트 접속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니 당시 학교에서 건물이 낡아서 누전 우려가 있다고 비만 오면 전기를 내려버렸더군요. 이래선 서비스를 유지하기 힘들겠다 싶어서 PC를 들고 밖으로 나오게 됐죠." 
▶운영비가 많이 들텐데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나요
 “창업하고 얼마 안돼 사무실 전화비를 낼 돈이 없더군요. 집에는 쌀이 떨어졌죠. 할 수 없이 아버지를 찾아가 3000만원을 빌렸어요. 그런데 회원이 아직 1만명도 안됐던 1999년말에 KTB와 금양 두 회사가 저를 찾아왔어요.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 같길래 10억만 투자해 달라고 했죠. 지분 40%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동시에 투자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왜 금양을 택했나요?
 “KTB는 권성문 대표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문제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금양쪽은 회사 차원의 투자였습니다. 우호적으로 다가왔기에 좋게 해석했습니다. 금양은 발포제 만드는 중소기업인데, 부산에 근거가 있고 나름 견실한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금양이 회원 1만명일 때 10억원을 투자하면서 지분 40%를 가져갔어요.“ 
▶창업 후 얼마 안 돼 최대 주주가 변경됐네요?
 “금양이 단일 최대주주가 된 거죠. 1999년 가을에 창업했는데 그해 말에 투자를 받았어요. 저는 30% 좀 넘는 지분이 있었고 다른 창업자와 직원 등 우호지분을 합쳐 60% 가량 있었어요. 창업자 쪽 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별 문제 없을거라고 봤어요. 제가 너무 경영을 몰랐던거죠. 나중에 알고보니 창업자들이 최대주주 자리는 회사를 매각하기 전까지는 내놓지 않더군요.”
▶다른 회사도 만나 봤습니까.
 “삼성 LG 효성 등 다른 대기업도 만나 투자를 타진해 봤습니다. 다들 투자 의사는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조금씩만 투자하려 했습니다. 외국 회사들을 만나면서 국내 회사들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됐죠. 국내 기업들, 투자자들은 투자를 했을 때 기존 다른 대주주와 지분 싸움을 해서 이길 정도로만 지분을 확보하려고 하더군요. 회사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서 인수 뒤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았아요.”
▶외국 기업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외국 기업들은 벤처기업을 인수할 때 지분 전체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리고 창업자의 공로를 인정해 줘요. 지분을 다 인수하고 오히려 스톡옵션을 주고 경영권을 보장해 줍니다. 야후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금양과 사전 조율이 없었나요
 “금양이 투자하고 5개월이 안돼 2000년 5월에 25만명 돌파했어요. 회원이 너무 빠른 속도로 늘어 추가 투자가 필요해 금양을 찾아갔는데 돈을 더 투자 못한다고 거절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회원이 150만명이 됐어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당황스러웠죠.”
▶야후는 어떤 조건을 제시했나요.
 “야후는 회원 한명당 얼마씩 계산하는 그런 기준이 있었어요. 300만명일 때 야후가 왔는데 300억원으로 시가총액을 산정했어요. 그런데 한달 만에 회사 회원수가 450만명이 되니깐 야후가 그걸 보고 놀라서 일단 가치를 500억원으로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야후코리아는 당시 한국 증시에 상장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커뮤니티가 약하다는 게 항상 약점이었어요.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해서 커뮤니티를 키우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금양이 태도가 바뀌었어요.”
▶가치를 그 정도로 평가해준 것에 반응한 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 야후와는 2000년 8월31일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는데 14일에 금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영권을 보장하고 야후와 같은 기준으로 투자를 한다는 거였어요. 일부 돈을 현금화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죠.”
▶그 말대로 했나요.
 “아닙니다. 그냥 순리대로 하자는 생각에 이미 늦었다고 하고 야후와 계약을 맺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양을 만나보니 야후와 계약을 안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야후가 100% 지분을 인수하려면 금양 지분도 사야하는데 금양은 팔 생각이 없었어요.”
▶금양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계약을 무산시킬 수 있는 상황 아니었나요. 처음부터 무리한 계약을 추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후가 저희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정 안되면 창업자들이 갖고 있는 60% 지분이라도 사겠다고 했어요. 금양과의 지분 매각 협상은 그 뒤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거절했어요.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죠.”
▶금양과는 어떻게 됐나요.
 “최종적으로 야후와 모든 협상이 결렬된 뒤 9월6일 금양과 계약을 했습니다. 지분 11%를 81억원에 금양이 샀어요. 저는 지분을 매각해 당시 30억원을 현금화했는데 이 중 3억원을 직원 몇명에게 나눠줬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요. 겉멋만 부린 거죠. 금양은 지분이 51%가 되면서 아이러브스쿨을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그때 그럼 회사 주인이 금양으로 바뀐 거네요.
 “그런데 그걸 제가 몰랐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아이러브스쿨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현실을 몰랐죠. 경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회원이 너무 빨리 늘어서 당황했고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하루에 몇십만명씩 가입하기도 했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금양 자회사로 편입되자마자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창업자들은 다 회사를 나갔고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뭐하러 이 회사에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회사를 나갔나요.
 “2000년말에 금양을 찾아갔더니 보유 지분 전부를 사주겠다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2001년 2월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돈을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2달 정도 뒤에 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걸 믿었다는 게 이상하네요.
 “믿었습니다. 그 전에 지분을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돈을 잘 받았거든요.그런데 그 뒤로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 합치면 160억원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정말 큰 돈이었는데 말입니다.”
▶지분을 팔고 뭘 할 계획이었나요.
 “그냥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회사는 커졌지만 일은 경영은 제 뜻대로 안됐고 이참에 사업하느라 못다한 공부를 마저하려고 했죠. 그런데 결국 돌아가지도 못했어요. 너무 창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알았고, 심지어 기부 요청도 들어왔는데 저는 매각 대금도 못 받고 세금때문에 빚만 잔뜩 진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걸 왜 그리 신경썼는지. 철학이 없어서 중심도 못 잡았고 그냥 체념하는 심정으로 집에 있었습니다.”
▶세금 문제는 어떻게 된 건가요.
 “세금을 간과한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주식을 양도했으니 세금을 내야하는데 돈을 못 받아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2004년 세금부과 예비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원래 낼 돈은 8억원인데 연체료, 미신고가산세 등이 붙어 24억원으로 불었어요. 잘못하면 있는 재산을 전부 빼앗길 것 같아서 아내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어요. 일종의 위장이혼인데, 얼마 안 가 진짜로 이혼을 했어요. 아내와 처가쪽 식구들이 결국 그 힘든 시기를 견디지 못했어요. 나에게 돌아서는 걸 보면서 피눈물이 났습니다.” 
▶재기 시도를 계속 한 것으로 압니다.
 “돈 벌어서 세금 내 보겠다고 2004년에 아파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공동구매 사이트 아이티아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투자 받으러 가도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아이러브스쿨을 만들어 그렇게 키워본 경험이 있다는 제 경력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군요.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았어요. 당시엔 벤처 거품이 완전히 꺼지고 난 뒤 벤처 투자에 대한 반감이 심하던 시절이었어요. 벤처 차리고 3년 지나면 다 사채업자한테 가는 거 모르냐며 외면했습니다. 결국 2005년말 사업을 완전히 접었죠.”
▶그 뒤로 공백이 많았습니다.
 “죽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다시 재혼하지 않았으면 아마 진작에 자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내는 나와 함께 아이티아를 설립했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엔 아이티아를 포기 못하겠다고 하다가 나까지 살려보겠다고 했습니다. 2006년 아는 분에게 오피스텔을 빌려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신용불량자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국내에선 안되겠다 싶어 2010년 중국에서 사업을 시도했지만 잘 안됐구요.”
▶왜 벤처기업에 투자를 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국내에서는 IT벤처를 아이디어사업이 아니라 단순한 돈벌이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투자를 하고 장기적으로 추이를 봐서 회사를 키워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투자하고 빨리 이익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만 해요. 산업을 장기적으로 못 보니 결국 IT사업이 ‘빨리 피고 빨리 죽는’ 사업이 된 겁니다.”
▶벤처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공을 대비하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대개의 사람들이 실패를 대비하지요. 대신 성공에 대해서는 ‘성공하면 성공하는 거지’하고 맙니다. 하지만 성공을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성공을 준비하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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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사장은 누구>
김영삼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정보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던 1999년 연구실에서 동료 2명과 함께 아이러브스쿨을 창업했다. 아이러브스쿨은 초등학교 친구들을 연결시켜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새로운 개념을 앞세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 1년도 안돼 500만명의 회원을 모으며 세계 인터넷 사이트 순위를 매기는 알렉사랭킹에서 한국 1위, 세계 3위까지 올랐다.
 2000년 8월 야후코리아가 500억원에 인수를 추진했으나 계약이 무산된 뒤 그는 금양에 지분을 넘기고 2001년초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금양측이 지분 매각 대금을 주지 않으면서 주식 양도세를 내지 못한 그는 미납 세금, 이자 등이 더해져 개인 빚이 20억원까지 불어났다. 2004년 아이티아라는 아파트 기반의 SNS를 설립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에 가서 사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아 귀국했다. 금양 전 대표이사였던 정현철씨를 상대로 주식매각대금 청구 소송(민사) 1심에서 승소했고 현재 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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