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3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렸던 글로벌인재포럼 행사 가운데 열혈 청년들의 맨손 창업기세션의 주요 발언들입니다. 토크쇼 형태로 진행됐으며 패널로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박수근 (NBT 대표), 심여린 (스터디맥스 대표), Sarah Lee (글로우 레시피 대표) 등 네 분이 참석했고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임원기 기자 ; 안녕하세요 임원기입니다. 글로벌인재포럼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좀 더 일찍 이런 이야기를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이제는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에 대한 논의가 분야를 막론한 관심사가 됐다는 방증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창업입니다. 글로벌인재포럼의 세션에 가운데서는 좀 독특한 주제죠. 2의 창업붐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됐습니다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입니다.


 창업이 주제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혹시 기대하실지 모를 그런 주제? 예를 들어 성공의 비결이라던가, 성공 방정식이라던가 등과 같은 이야기보다는 좀 다른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왜 창업을 하게 됐는가에 대한 동기와 문제의식, 그리고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는가, 어떤 고난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내용은 따로 적어서 제출해 주시면 제가 대신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이렇게 진행을 하니 양해 바랍니다.


<지난 11월3일 서울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진행된 글로벌인재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봉진 대표 ; 안녕하세요 배달의 민족을 만들고 있는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입니다.

심여린 대표 : 영어 마비~ ~ 영어 마비! 영어 마비엔 스피킹맥스! 다 아시죠. 스피킹맥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터디맥스의 심여린입니다.

Sarah Lee 대표 :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케이뷰티의 우수성, 기술력을 소개하기 위해서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과 브랜드 인큐베이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우레시피의 공동대표 Sarah Lee입니다.

박수근 대표 : 안녕하세요 NBT의 박수근입니다. NBT라는 회사는 Next Big Thing을 만들어가는 회사이구요, 저희 회사는 안 밀면 손해라는 캐시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하 직책 생략)


임원기 ;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당연히 새로 만들어진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타트업 창업은 그저 사업을 새로 시작한 그런 게 아니라 (물론 사업을 하면 돈도 벌어야 하겠지만) 기존 서비스나 제품의 불편함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품·서비스 등으로 세상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그런 도전을 말하는 겁니다.


 이번 세션에 나오신 대표님들은 제가 다 섭외한 분들입니다.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뒀고 밖에서 보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난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해왔던 그런 분들입니다.


 1분 스피치 이런 거 잘 하시는 분들인데, 너무 짧게 자기 소개를 해서 제가 질문을 던지면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님의 경우 디자인 쪽 일을 해 오신 분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하고 있구요. 실제 경력도 네이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등 디자인 쪽에서 종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은 얼핏 보기엔 디자인과 별 상관 없어 보이는 분야같은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왜 꼭 창업을 통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기업이 성공해야 성공한 브랜드 나온다


김봉진 ; 창업의 동기에 대한 질문이라고 이해를 하고 말씀드리면요. 저도 왜 시작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시장의 기대가 있고 어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했느냐하면,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처음에 저는 사실 좀 장난스런 그런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런 서비스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에 가볍게 만든 겁니다. 처음 저희가 시작했을 때 저희랑 비슷한 게 뭐가 있었냐하면 여러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들이 만든 서울버스, 이런 앱이 있었습니다. 앱을 만들어서 앱스토어에 올려놓고 그냥 기존에 하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이버도 계속 다녔구요. 그러다가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그러면서 법인도 설립하고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사업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디자이너로서 예전부터 나만의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그런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배달의 민족도 브랜드 관점에서 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 저를 표현하거나 우리 회사,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그런 것에 중검을 두고 있습니다.


 굉장히 재밌는 게 성공한 브랜드는 그 기업이 성공을 해야 가능해요. 브랜드만 성공하고 기업이 실패하면 사실 그 브랜드는 실패한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제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사업을 잘 해야 하는,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사업 성공을 위해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잘 활용하는 그런 방식인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저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여러번 해 봤어요. 그런데 사실 어릴 때 제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음식 장사를 오래 하시는 걸 보면서 음식 장사 이런 거는 절대로 하면 안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제가 음식 배달 앱을 만들었쟎아요.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의 음식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거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IT가 발전을 하면서 커머스 분야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요. 처음엔 책이나 박스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물품으로 커머스가 발전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음식도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구매를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구요. 배달의 민족은 음식을 커머스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임원기 ; 사실 처음 제가 김봉진 대표님 창업한 지 1년이 안됐을 때 사무실을 찾아갔을 무렵엔 길거리의 수많은 전단지를 스마트폰으로 집어넣겠다 뭐 이런 컨셉으로 사업을 했었는데 이제는 푸드테크라고도 하고, 음식과 기술을 접목한 그런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창업하면 가장 대박이 난다는 의식주 중 하나를 하고 계시네요.


 다음엔 박수근 NBT 대표님의 말씀을 좀 들었으면 합니다. NBT가 하는 캐시슬라이드는 여러분들 폰에 따라, 아이폰을 쓰시면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벌써 2000만 다운로드가 됐고 중국에서는 1억 다운로드를 돌파한 서비스입니다. 박 대표님은 컨설턴트 생활을 하셨던 분인데, 어떻게 이렇게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게 됐는지 말씀을 좀 해주시죠.

 

박수근 ; 운좋게도 대학 시절에 선배들이 하는 스타트업에서 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낀 게 2가지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란 게 정말 멋있고 꼭 해 보고 싶은 일이구나.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타트업이 정말 대부분 망하겠구나, 주먹구구로 하면 다 망하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제품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걸 정말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수익을 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그런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때 선배들의 스타트업에서 잠깐 일해보긴 했지만 일이 잘 안되서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됐습니다.


그때 사실 정말 창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겁이 나서 창업에 나서질 못했습니다. 성장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구요. 좀 배워야겠다 이런 마음에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면 이런 일을 합니다. 주로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이 하는 전략 프로젝트 이런 것에 참여하구요 굵직한 일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그랬습니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서 많이 배웠습니다. 2년 반 동안 일하면서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즐거웠습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월급도 많이 받았구요.


 그런데 일하면서 뭔가 계속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고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보니 주변에 정말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갖고 변화와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좌절도 했구요.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고착화된 구조, 만들어진 시스템 이런 곳에서 변화를 주기란 쉽지 않다는 그런 생각을 했구요. 그래서 현재 있는 커런트 빅 씽(Current Big thing)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Next Big Thing을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에 공동 창업자 4명이 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였습니다. 저희는 일단 그만두고 모여서, 좀 특이하죠. 그 때부터 캐시 슬라이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Next Big Thing을 만들려면, 뭔가 시작점이 있어야 하는데 뭘로 시작점을 삼을까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2012년에 창업을 했는데 앞으로 뭔가 Next Big Thing이 온다면 그것은 모바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봤구요. 해결해야 하는 어떤 큰 문제들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커머스 교육 게임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바일 시대에 맞는 미디어가 필요할 거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있는 신문들이 있었고 방송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PC를 켜면 나오는 네이버와 같은 포털들이 미디어였습니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모바일 미디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시작했지만 2012년에 옥탑방에 4명이 모여 있는데 별로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뾰족한 그런 것을 하자. 그래서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스마트폰 첫화면을 우리에게 빌려주면 우리가 리워드(혜택)를 주겠습니다이런 컨셉으로 시작했습니다.


창업, 직장생활보다 "5배 더 힘들고 10배 더 재밌다"


 처음부터 핵심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잠금앱을 설치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에 강조했고 날카롭고 뾰족한 기획덕분에 지금은 캐시슬라이드라는 제품이 회원 형태의 모바일 미디어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박수근 대표님은 컨설턴트 생활을 하시다가 세상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특히 박 대표님은 회사 내부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일 중독자로 통한다고 제가 안팎에서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직원들도 행복한지는 제가 따로 좀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웃음)

 

박수근 ; 예전 컨설팅 회사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 가끔 물어봅니다. 창업하니 어떠냐고. 저는 “5배 정도 더 힘들고 10배 정도 더 힘들다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직원들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임원기 ; 오늘 행사에는 미국에서 오신 분도 있습니다. Sarah Lee 대표님은 뉴욕에서 글로우 레시피란 회사를 창업하신 분인데, 오직 이 행사를 위해 미국 뉴욕에서 날아오셨습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해서 저 역시 Sarah Lee 대표님의 창업 스토리는 잘 알지 못하는데요. 창업을 하자마자 샤크 탱크라는 미국의 투자 유치 프로그램에 나가서 히트를 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로레알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나오셔서 그래도 가장 관련된 분야에서 창업을 하셨는데, 왜 창업을 했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Sarah Lee ; 저는 사회 생활은 한국에서 시작했습니다. 12년 전에 로레알 코리아에 대학 시절 인턴으로 시작해서 화장품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너무 많이 느껴서 일을 열심히 하고 3-4년 후에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갔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제품 기획과 마케팅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제품 기획을 할 때 한국 화장품의 컨셉과 경쟁력을 글로벌 회사 입장에서 벤치마킹하고 영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한국 제품을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한국 사람으로서 그런게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기획을 할 때 기획자로서 미래의 트렌드 등을 봐야 했는데 항상 한국이 No.1 고려 대상이었죠. 글로벌 브랜드인데도 기술력, 제조 파트너사는 항상 한국 파트너사였고 한국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본사와 이야기도 해 봤어요. 비비크림이 엄청나게 유행을 했는데 미국에서 6-7년 전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한국에서는 벌써 10년도 더 전에 나왔었죠. 미국 사람들이 볼 때는 이렇게 간단하게 피부 보습도 되고 선스크린도 되는 제품이 있다는 것에 놀라왔고 나오자마자 회사의 제품 카테고리에서 매출 0에서 2억 달러로 껑충 뛰었죠


 그때부터 모든 화장품 업계 사람들이 한국을 봐야겠다 이런 말을 했구요. 화장품의 미래는 한국이다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했죠. 로레알은 세계 넘버원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을 더 잘 알아야 하는 그런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에 들어와서 가로수길에 가서 요즘 유행하는 제품들도 알아보고 돌아가서 연구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국 화장품 기술들이 글로벌 브랜드에 녹아 있는 반면 한국 제품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안타까왔죠. 사람들이 한국 제품을 써보면 효과도 느끼고 그러는 걸 보면서 기회를 봤습니다.


"자랑스런 한국 화장품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저희 공동 대표인 크리스틴 장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이런 걸 아예 우리가 가져와서 소개도 하고 한국브랜드화하면 어떨까. 그리고 한국의 상품과 기술력을 글로벌 브랜드의 그림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면 어떨까.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팔리는 프로모션용 제품이 아니라 실제 스토리가 있고 콘텐츠가 있고 정말 퀄러티가 있는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리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 2014년 말에 글로우 레시피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처음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사이트로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나 이런 것을 제공하고 싶었고, 한국의 최고 수준의 제품을 들여와서 큐레이션 해서, 어떻게 보면 편집샵을 시작한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시장의 지식과 미국 소비자들에 대한 이해도를 최대한 활용해서 미국 시장에 맞는 한국 제품을 판매해보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더 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세포라, 메이시스와 같은 큰 백화점에서 한국 화장품에 관심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이들과 협력해 한국의 규모가 있고 기술력이 있는 화장품 브랜드 인큐베이팅에 나섰습니다. 저희가 이런 것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이커머스를 시작하고 시장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적인 이미지의 한국 브랜드이고 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피부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이 맞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그걸 깨뜨리고 싶었고 깨기 위해선 파워풀한 파트너와 함께 대형 리테일러에 입점을 해서 이게 한국에서 온 대단히 특이하고 재미있는 상품이다이런 게 아니라 미국사람들의 다양한 인종과 피부 타입에 맞는 전략적이면서도 효능이 뛰어난 제품이라는 걸 교육시킬 기회가 됐던 겁니다. 국내 대기업 등과 제휴를 맺어서 세포라 등 백화점에 우선 입점을 했습니다. 당시엔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기 보다는 정말 기술력이 있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한국 기업인 거다 이런 식으로 알렸습니다.


 지금은 2가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온라인 쇼핑몰이고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로서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한국 화장품이 아모레 퍼시픽이나 중소기업들의 제품도 좋은 게 많은데 그러다보면 수입해서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나요?

 

Sarah Lee ; 수입해서 판매하는 곳은 많지만 처음부터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저와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틴 장이 로레알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보니 로레알에 있는 수천명의 직원 중 저와 크리스틴 두 사람만 교포가 아닌 한국 사람이었고 한국 말을 하고 한국의 상황과 한국 기업들을 경험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희가 보기에 한국에서 그냥 좋다고 하거나 막연히 우수한 제품이라고 하는 그런 화장품들이 막상 미국에 와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피부에 대한 접근 방식이 한국 사람들과 다릅니다. 피부 관리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피부 타입도 다르고 이것을 재해석 하지 않으면 장기간 인기를 끌기 힘듭니다. 하지만 저희는 프랑스 회사인 로레알의 미국 법인에 있으면서 프랑스 회사 제품을 미국 현지화하는 경험을 했었고 이것이 차별화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임원기 ; 더 물어볼 것이 많지만 차차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엔 심여린 대표님께로 넘어가겠습니다. 심여린 스터디맥스 대표님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쪽 분야로 가시게 된 것인지요?

심여린 : 저는 남편하고 공동 창업인데요 남편하고 제가 각각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MBA 가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영어 점수를 따고 나서 학교 투어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놀랐어요. 영어를 어느 정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들어가는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잘 안나오는 거에요

 

임원기 ; 거기서 영어 마비가 나온 거군요.

 

심여린 : (웃음) 그렇게 미국에 힘들게 입국해서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뉴스 앵커나 전문적으로 영어를 말하는 사람, 선생님 등 이런 사람들의 영어 발음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화을 하는 사람들의 영어를 제대로 듣고 공부를 해 본 적은 없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생활에서는 영어가 안되는 거죠. 며칠간 미국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니 또 영어가 어느 정도 되더라구요


 그런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인인데 네가 쓰는 어휘력이나 문장이 정말 놀랍다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의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갖는 외국어 학습의 문제점을 깨닫고 우리가 지금 MBA를 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바로 잡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거죠.

미국에서 외국인들이 말하는 것을 찍어오고 따라하다보니까 그게 되게 좋더라구요. 사람들이 미국 가서 어학연수하면 몇 천만원씩 돈이 드는 데 저희가 그때 현지에 가서 한 게 사람들 모아놓고 대화하고 그걸 찍어오고 그랬는데 그게 그냥 어학연수 가서 받는 클래스랑 비슷한 겁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면 굳이 비싼 어학연수 가지 않고도 혜택을 줄 수 있겠다 생각한 거에요.


 저랑 저희 남편은 대학때부터 창업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어요. 연애할 때도 어떤 가게나 회사가 잘 되거나 망하거나 하면 그 이유를 같이 분석해보기도 했구요. 그렇게 계속 같이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나누면서 하다가 창업도 같이 했구요. 남편은 이미 대학때 이투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경력도 있고 해서 지금 일을 하는 것도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원기 ; 제가 스터디맥스를 처음 찾아갔을 때는 2010년이었는데 그때는 창업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였지만 한국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교육 분야인데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학습을 하게 해 준다는 컨셉을 듣고 아 여긴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 뒤로 2-3년이 지나 다시 뵀을 때 그 기간동안 상당히 고생을 한 걸 알고 놀랐죠. 우리가 지금부터 나눌 두 번째 주제가 창업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고난, 어려움 이런 것인데, 그냥 힘들다 차원이 아니라 회사가 망할 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일을 겪게 되는데..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극복을 해 왔는지 말씀 나온 김에 심여린 대표께서 먼저 말씀해주시죠.

 

10군데 VC 찾아갔다가 모조리 퇴짜맞기도


심여린 ; 사실 저희 사업 모델이 영어 교육 업계나 출판업계 이런 쪽에서 상당히 특이한 모델이었어요. 강의나 책 중심의 학습이 주된 시장에서 특이한 학습 방법을 제시한 거였죠. 마이너스 몇 억원을 통장에 찍어면서도 저희가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었고 VC분들을 만나러 다녔는데요. VC분들 만났을 때 10군데서 다 거절했어요. 저는 쉽게 투자 유치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컨셉트 특이하고 너무나 필요한 서비스고, 잘 될 것 같은데 워낙 특이하니까 매출이 나오면 그때 투자하겠다 뭐 이런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희는 돈이 들어가야 매출이 본격적으로 나올 텐데 기대했던 투자가 안 들어오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그때 남편하고 둘이 청계천을 걸으면서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했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다행히 너무 좋은 분들이 투자를 해 주셔서 그 돈으로 마케팅을 하고 그리고 바로 40억원의 매출이 나왔습니다.

 

임원기 ; 첫 투자가 들어온 게 2011년인가 그랬죠? 그 전까지는 그러면 자본금으로 버티면서 계속 마이너스 통장 만들고 그랬겠네요

 

심여린 ; 그렇죠. 기보나 이런데서 대출도 받고 버텼죠. 힘든 시기였습니다.

 

임원기 ; 다른 분들도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김봉진 ; 힘든 일 많았죠.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얘기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 우아한 형제들이 두 번째 창업이었어요. 그 전에는 아내와 디자인 가구 쪽으로 창업을 했다가 시원하게 다 말아먹고, 그때 전세 대출금까지 다 날려서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가구점을 하면서 가구점에 소품들이 많이 있쟎아요? 그걸 팔 수가 없으니까 그걸 모아서 사과박스 배박스 이런 데다 모아서 집에 쌓아 놨습니다. 집도 좁은데 2-3년씩 집에 그걸 쌓아놓고 사는데 어느날 밤에 아내와 그걸 보면서 그게 한 5000만원어치 정도 될 거에요. 자기야 저게 정말 사과였으면 좋겠어 그럼 먹을 수 있쟎아.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배달의 민족 만들고 나서 직원들에게 그 제품을 쭉 나눠줬는데요 정말 다들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가슴이 찢어지고 뭐 그랬죠. 그런 것도 그렇고 정말 힘든 게 많았죠


 얼마 전에는 사실 정말 힘들었던 게 저희가 작년에 배달 앱 수수료 0%를 선언했는데 그 수수료 매출이 전체의 30%에 달했거든요. 그때 저희 생각은 고객이 우리의 이런 정책을 알아줄 것이고 다시 우리 앱을 많이 써 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매출이 회복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고객은 훨씬 더 늦게 움직이더라구요.


 그 시기가 늦게 오면서 어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네요. 올초가 되니까 다음달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주나하는 걱정을 할 정도가 됐습니다. 상당히 급박한 상황까지 간 거죠. 그렇게 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의 호기로운 결정으로 350명에 달하는 우리 직원들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이런 걱정을 하기도 했죠.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9시 뉴스에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이슈가 보도가 되고 이러면 매출이 오히려 더 올랐어요. 부정적인 보도라고 하더라도 일단 매출은 늘어나는 거죠. 그래서 더욱 이런 부분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임원기 ; 그래서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이런 말도 있는 거죠.

 

"이번 고비가 지나가면 다음 고비가 또 온다"


김봉진 ; . 그렇죠. 그래서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고 그러면서 더 난처해지고 그랬죠. 다행히 그 뒤로 서서히 매출이 올라와서 지금은 정상화가 되고 그랬죠.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아내와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아 정말 너무 힘들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 걸까. 나는 왜 창업을 해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걸까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했죠. 제 얘기를 듣고 나서 아내가 어느날 전화를 해서 그러더라구요. “자기야 자기가 힘든 건 창업을 해서가 아니야. 그 나이대가 힘든 거야. 대기업을 다녔으면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몰라서 걱정하고 있을거고, 자영업을 했으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거고, 그냥 사는 게 힘든 거지.”

누구나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 그 말이 왠지 위로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제 좌우명이 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가 온다입니다. 하하.

 

임원기 ;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라, 다음 고비가 또 온다. 그러면 뭐 고비가 지나가길 기다려도 그 다음에 낙이 없는 거네요? 또 고비가 오니까

 

김봉진 ; 그런 셈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서 나에게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임원기 ; Sarah Lee 대표님은 미국에서 창업을 했죠. 아마 상상이 잘 안가지만 사람을 뽑고, 투자자를 만나러 다니고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Sarah Lee ; 저는 처음에 제일 힘들었던 게 미국에서 한류 때문에 화장품 판매가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알다보니까 한국에 있는 기업의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의외로 굉장히 회의적이더라구요. 지금도 그분들을 설득하는 게 힘든 일입니다.


 처음에 저는 아니 한국 제품을 미국에 알리고 팔겠다는 데 당연히 시장을 확대하는 거니까 다들 좋다고 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부분 겁을 많이 내거나 걱정을 많이 하더라구요. 물론 우리는 한국 화장품이 잘 팔릴 것이다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증명할 방법은 없었고 그러다보니 그분들은 우리에게 상품을 선뜻 제공하기 힘들었던 반면에 우리는 그런 제품들을 많이 확보해야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좀 애매했던 거죠.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 브랜드에 콜드콜을 해서 미팅을 하고, 다짜고짜 찾아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미국이라고 하면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믿음이 있지를 않으니까 서로 협상을 하기 쉽지 않았고, 제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보니까 같이 소주 한 잔 하면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잠도 잘 못자면서 전화를 돌리고 사람을 만나는게 힘들었어요.


 관계를 쌓아놓고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한국 기업 담당자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서로 얘기하는 게 힘들었지만 관계를 쌓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오히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렇더라구요.

 

임원기 ; 인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스타트업은 특히 사람이 전부인 그런 비즈니스이고, 함께 할 사람을 뽑는 게 정말 중요할 텐데. 미국에서 사람을 어떻게 채용을 하나요. 외국인이 설립한,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Sarah Lee ; 외국인이 설립한 회사라고 특별히 다르게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어요. 특히 요즘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면 기업이 작다보니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양하고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상황이 많거든요. 그런 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어쨌든 저희가 오랫동안 화장품 업계에서 업력을 쌓았고 로레알이라는 네임밸류가 있는 큰 회사에서 관계를 만들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저희도 사실 케이뷰티를 외국인들이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케이뷰티냐 아니냐를 떠나서 마케팅을 배울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점을 매력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저희는 케이뷰티를 알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자세를 중시했어요. 배우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돼 있는지 이걸 좀 봤죠.

 

믿음과 희망이 스타트업의 원동력


임원기 ; 캐시슬라이드는 한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스타트업 중 하나인데, 그래서 얼핏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진 않겠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사람은 어떻게 뽑았고 등등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박수근 ;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희망이 꺾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런 화면잠금앱은 저희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만들다보니까 처음부터 곳곳에서 안될 거야 라는 말을 정말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금 화면을 미디어로 활용을 해 보자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고 시작하다보니까 광고를 붙여서 포인트를 주자 이렇게 했는데, 처음에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다 안될거라고 얘기합니다. 제품을 런칭해서 새로 채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 안될거라고 얘기를 합니다. 서비스를 어느 정도 해서 광고주들에게 세일즈를 하려고 하면 예전에 그런 비슷한 거 다 고민했었는데 다 안될거야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끝이 없었어요. 유저들이 예를 들어 100만명을 모았다 그렇게 수치를 들고가면 거기까지 갔으니까 거기가 한계야 안될 거야 이렇게 또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뭐 좋습니다. 지인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파트너나 광고주나 투자자들이 얘기할 수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저희가 헷갈리고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어 이거 진짜 안되는 건가? 우리 이거 못하는 건가? 그럴 때. 변화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이 흔들릴 때 힘들었습니다.

믿음과 희망이 없을 때 정말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의 일도 일어납니다. 가장 강력한 게 믿음과 희망이기도 합니다. 즉 조금만 이게 될 수 있다는 실적을 보여주고 어떤 트랙 레코드가 나오게 되면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걸 내놓고 카피캣이 등장합니다. 서비스 내놓고 3개월 만에 유저들을 모으니ᄁᆞ 6개월 내에 동일한 서비스가 10개 정도 나왔구요 1년 내에는 국내에서 대기업 3-4곳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1년이 넘어가면 전 세계에서 비슷한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3, 독일, 미국에서도 나오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에서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믿음과 희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구요, 거기서 파생되는 강력한 경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임원기 ; 한국은 창업가들이 세쪽짜리 사업계획서를 작성해도 맨 끝장에는 해외 진출 계획이 나와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나 필요성이 강하고 국내 시장이 작다는 스스로의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캐시슬라이드가 해외에 진출한 것도 이런 측면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박수근 ;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의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NBT는 글로벌 시장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회사의 비전 자체가 NEXT Big Thing을 만들고 싶다는 회사인데,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다보니까 한국에서만 이렇게 사업을 하면 next big thing은 못 만들고 next fun thing만 만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건 만들겠지만 정말 큰 것은 만들기 힘들겠다는 생각. 결국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만 하면 그 변화의 크기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서비스를 해도 중국에서 하느냐 한국에서 하느냐 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임팩트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외에 적극적으로 나가고 있구요.

 

임원기 ; 스터디맥스도 해외 진출하기에 좋은 서비스 아닌가요

 

심여린 ; 사실 국내에서 만든 콘텐츠 서비스 중에 해외에 나가서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진출 자체도 아직 많지 않습니다. 교육 콘텐츠 쪽은 한국의 수준이 높고 우리 서비스의 경우 영어를 영어로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동남아시아는 물론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진 ; 많은 분들이 혹시 배달음식이라는 게 한국에서만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영국의 저스트잇 이런 회사도 있구요. 물론 한국이 굉장히 큰 시장이기 때문에 저희는 한국을 잘 지켜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저희 경쟁사들이 아주 공격적으로 나오고 한국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우버잇츠나 딜리버리히어로즈와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한국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구요.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한국 시장을 지킬 것인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하지만, IT나 물류 이런 것들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게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대도시와 그 주변 인구에 비해 한국의 서울 등 대도시 주변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이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라고 저희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Sarah Lee ; 저희도 글로벌화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글로벌 시장이 케이뷰티에 매료되서 우리의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홍콩에도 거점을 마련했구요 전문가들이 편집한 셀렉션 코너 등도 만들고 저희도 미국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임원기 ; 질문이 지금 너무 많이 들어와서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몇 개만 추려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오신 분들 중에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채용을 하실 때 어떤 기준으로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김봉진 ; 저는 채용할 때 오히려 저희가 질문을 하는게 아니라 어떤 게 궁금하세요 하고 말씀을 드려요. 그분이 반대로 질문을 저희에게 하는데, 사실 질문 안에 생각이 담겨 있어요. 어떤 분은 복지를 물어보시는 분이 있고, 일에 대해 물어보는 분이 있어요. 그 사람이 일에 대해 얼마나 집중해서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얼마나 보느냐를 중점적으로 봐요.

 

심여린 ; 인터뷰할 때 이 사람과 얼마나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봅니다. 저도 사실 같은 질문을 하는데 저희에게 궁금한 거 없으세요 라고 거꾸로 물어봐요. 질문에서 많은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임원기 ; 어떤 대학생이 박수근 대표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마트폰 다음에는 뭐가 또 있지 않겠느냐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느냐는 거죠.

 

박수근 ; 2010년 모바일 웨이브가 왔었고 주기적으로 또 빅 웨이브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 주기들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데 많은 웨이브의 가능성이 있지만 IoT나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한 웨이브가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NBT는 다음의 큰 것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넥스트 웨이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려고 합니다.

 

임원기 ; 이번엔 Sarah Lee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이 있네요.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관계에서 도움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Sarah Lee ; 저는 사업을 하면서 정말 관계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인들, 투자자들,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 저는 한국에서 계속 살았고 미국이라는 큰 땅에 살면서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품을 알리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이런 점을 잘 이해하는 누군가와 상의하면서 사업을 했더라면 훨씬 더 지름길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구요. 그래서 제가 만나는 젊은 분들에게 계속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네트워킹을 하라구요. 한국의 브랜드파트너와 관계를 맺을 때도 인간적으로 존중을 해 주고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제일 먼저 공유해요. 그런 분들하고 파트너를 맺고 있죠. 이런 관계를 통해 서로의 일하는 스타일을 알고 비전을 공유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거든요

멘토십에 대해선, 모든 멘토가 다 좋지는 않구요 저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한데요. 일을 대하는 근무윤리? 이런 것들이 좋은 분들을 찾으시라도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원기 ; 관련된 질문인데요. 미국에서 창업을 하려고 하는 분인 것 같은데, 처음에 뭐가 중요한가 이런 질문입니다.

 

Sarah Lee; 본인의 상태에 따라 다른데요. 저는 뷰티 업계에서 계속 일했기 때문에 커넥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게 처음에 일 할 때 정말 많이 도움이 됐거든요. 제가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백화점에 입점을 하거나 그럴 때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미국 시장이 정말 터프하거든요. 그래서 시장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들어가는 것은 금물입니다. 꼭 시장 조사를 해 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Drive가 있어야 합니다. 경쟁이 심하니까요. 뉴욕에 있는데 경쟁사가 하루에도 몇십개가 런칭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중심을 잃지 않고 집중을 해야 합니다.

 

임원기 ; 아까 박수근 대표님이 믿음과 희망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처음에 다 안될거야 라고 얘기를 했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직원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 감당하셨는지 아니면 직원들하고 공유를 하셨는지.

 

박수근 ; 지인들의 피드백, 유저들의 피드백 이런 게 다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서 다 공유를 했구요. 저희는 아예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스타트업은 원래 일반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게 스타트업이 아니라 남들이 다 안된다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원기 ; 캐시슬라이드 전에 창업했다가 말아먹은 게 있다고 했는데 그게 어떤 사업이었는지, 왜 망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박수근 ; 제가 직접 창업을 했던 것은 아니었구요, 저는 꼬맹이가 일을 거들어봐라 해서 조인했던 회사였습니다. 기술도 좋았고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나서 보니까 기술이나 아디디어는 변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변화를 실제로 주기 위해선 실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통해 파트너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임원기 : 오늘 패널분들이 창업 과정의 어려웠던 점을 구구절절하게 말씀해주신 덕분인지 질문도 창업 과정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요. 이 고비가 지나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이런 말씀을 김봉진 대표가 하셨는데, 이런 시련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힘을 내서 앞으로 나가는 원동력이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야하는 이유는 뭔지.

 

김봉진 ; 저한테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요. 작년보다 나아졌나? 어제보다 나아졌나 이런 겁니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였던 것 같습니다. 3년전, 4년전에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겪고 있는 고난도 나중에 보면 큰 일이 아닐 수 있죠. 그런 걸 생각하면서 견디고 있구요. 고비를 지나면서 좀 더 성장하는 나를 보면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창업은 발명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임원기 ; 요즘 드론으로 배달을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런 것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김봉진 ; 그런 것은 먼저 도입하면 안됩니다. 그런 과격한 신기술은 영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데서 먼저 도입해서 일이 되는 것을 보고 하면 되구요. 도입하기 시작하면 또 빨리 됩니다.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창업은 발명이 아니거든요. 발명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창업 자체를 발명이라고 생각하고 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힘들게 한다고 봅니다. 저희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국가들을 보면서 드론과 같은 것들이 언제 적용될까 하는 것을 보고 있지만 마케팅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임원기 : 공동창업자의 중요성, 필요성, 그리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심여린 ; 박수근 대표님도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러려면 조직이 중요하거든요. 저희 남편은 교육쪽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저는 교육 분야의 스티브잡스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하하 그리고 저는 커머스쪽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고 시너지를 내는 게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것 같아요.

 

임원기 ; Sarah Lee 대표님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과 창업을 한 케이스인데요

 

Sarah Lee : 함께 인턴생활을 했던 선후배 사이가 만나서 창업을 했어요. 여자 둘이 창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말을 많이 했는데, 사실 서로 너무 힘이 되고 의지가 됐어요. 뭘 모르고 진행해야 할 때도 의지가 되고 서로 상의를 많이 한 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얻는 힘이 정말 컸습니다.

 

임원기 ; 최근 청년 실업의 대안으로 창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준비가 안된 청년들에게 창업을 무턱대고 권하는 게 정말 무책임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심여린 ; 저는 창업을 권하진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너무 힘들었던 일도 많았고 강심장이 필요하고, 대표라서 좋겠네 라고 남들은 말 하기도 하지만 너무 외로웠구요 힘들었습니다. 국가에서 청년 창업 지원 많이 하지만 그런 지원할 때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지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Sarah Lee ; 저 같은 경우는 만약에 준비가 됐고 올인할 마음가짐이 있으면 하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있었고 창업한 지 2년이 됐는데 이렇게 매일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아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즐겁게 일했지만 지금은 나의 뭔가를 이뤄내고 사회에 뭔가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성취감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아주 많이 피곤해도 그런 성취감에 매일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물론 무모하게 하면 안되겠죠. 준비가 돼 있고, 내가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밸런스가 된다면 창업 하시라고 권하고 시습니다.

 

심여린 ; 저도 창업하고 3년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초기에 임원기 기자님을 뵀을 때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 전에 대기업을 다닐 때는 일요일 밤이 너무 싫었어요. 월요일이 곧 오니까요. 그런데 창업을 하고 그런 게 사라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또 좀 달라졌죠. 하하

 

김봉진 ; 나라에서 청년 창업을 계속 이렇게 지원하고 그러는데요 저도 그런 질문에 100% 동의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조울증에 걸려요. 성격도 이상해지는 것 같고. 그런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좀 다른 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본적으로 한국도 국가적으로 선진국의 예전 사업들을 답습해서 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면서 마진이 낮아지고 국가적인 불황이 오고 있거든요. 호황을 겪었다가 불황을 겪고 있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인데 그런 새로운 도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는 이런 창업이나 도전이 당연히 필요한 거구요.

 

임원기 ; 대기업에서 요즘 스타트업 문화를 강조하고 이러는데 이게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이러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arah Lee ; 위계질서적인 요소가 강하면 스타트업 문화가 잘 뿌리내리기 힘들다고 봅니다.

 

김봉진 ;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문화가 굉장히 민감한 주제인데요. 대기업도 처음에 시작할 때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면서 커 나간 기업들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히려 스타트업에게서 찾지 말고 대기업이 처음 시작할 때 바로 그 근본에서 스타트업 정신을 찾아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박수근 ; 지금의 대기업의 문화나 구조는 어느 정도 정답이 정해져 있고 안정성이 중요한 환경에서 최적화된 구조인데요 스타트업은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만들어진 문화인데요. 사내벤처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느냐 실행하느냐보다 어떤 정신을 갖고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임원기 ; 오늘 점심시간을 오버해서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자리 끝까지 지켜주신 청중분들과 소중한 창업 스토리 들려주신 창업가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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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목) 오전 10시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김범수 총장 취임식 기조연설 전문.

안녕하세요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NHN을 나와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미국으로 갔을 때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당시 저는 두 가지 일을 경험했습니다. 아이폰이 출시되는 현장에 있었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볼 수 있는 중심에 있었습니다. 아이폰 출시와 아이폰을 직접 써 본 경험은 저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마이너스 통장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기에 그런 시스템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 뒤로 한국에 돌아와서 두 가지를 했습니다. 아이폰 출시를 대비해 아이위랩(카카오의 전신)을 만들었고 또 케이큐브벤처스라는 벤처캐피탈도 만들었습니다. 카카오는 스마트폰의 선두 회사가 됐고 케이큐브벤처스는 스타트업의 베스트프렌드로서 약 70개에 달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10년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지속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남경필 경기도지사께서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직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사실 카카오를 성장시키고 사업을 하기도 바쁘고 벅찬데, 할 수 있을까 라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스타트업캠퍼스 현장을 와 보고 즉석에서 수락을 하게 됐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일부로서 제가 그렸던 꿈을 실현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웅장한 건물에 꿈을 실현할 준비를 하면서 여러 센터장님과 사람들 만나보면서 또 다른 많은 생각 들었습니다. 이미 전국에 100개 가까운 센터가 존재하고 VC, 액셀러레이터 등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다른 것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내부 인원들과 함께 수 십 차례 회의도 하고 사람 만나는 기간 거쳤습니다. 그 결과를 오늘 말씀 해드리려고 합니다.

축구선수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어린 친구 하나가 축구에 관심 많아서 축구를 열정적 연습했습니다. 드리블 연습, 패스 연습, 팀워크 연습 등을 통해 땀 흘리며 성장했습니다. 모든 이가 꿈꾸는, 실제 경기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관중 함성 속에서 축구장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웬걸, 낯선 광경 펼쳐졌습니다. 희망을 꿈꿔왔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낮선 경기장이 펼쳐진 겁니다.(그는 여기서 야구장 사진을 띄웠다.) 누군가 여기는 야구장이라 한 겁니다. 이 선수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야구의 룰도 모르고 맞딱뜨린 야구장의 모습에 그가 느낀 당혹감이나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임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바뀐다고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고 예측조차 못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죠. 대한민국 청년이 좋은 대학 나와서 막 사회에 내딛는 순간 게임의 룰이 바뀐 겁니다. 어디에서도 자신을 찾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단순히 백수의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존감이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올해 1월에 있었던 World Economic Forum에서 나온 전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향후 5년간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지고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65%는 세상에 없는 일자리를 가질 것이라는 충격적 예측이 나왔습니다.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조짐입니다. 조짐을 스크래치라고 합니다. 스크래치 난 배 타고 나가면 침몰하기 때문에 나온 용어라고 합니다.

저는 요즘 이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전세계에 충격을 준 이세돌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은 특히 한국에 충격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막연히 생각한 미래가 성큼 앞으로 다가온 겁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이것을 느꼈고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과 경쟁해야할 상황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와 ICT(정보통신기술)이 결합하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제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5년내 10년내 일자리 더 늘기 어려운 구조가 됐습니다. 혹자는 고용 시대의 종말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인류에게 축복이어야 할 수명 연장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타임지에 나온 아이의 모습입니다. 타임지는 이 아이가 142세를 살거라고 썼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평균 수명이 70세일 때 앞으로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올 거다라고 했는데 훨씬 급속하게 수명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이제 직업 하나로 평생 살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2, 3의 직업이나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거기에 대한 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담론도 시작하기 전입니다. 빠른 담론과 문제의식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은 해방후 70년간 아버지 세대의 희생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뤘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면 성공한다는 성공방정식이 강렬히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은 85% 대학 진학률이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교육열을 낳았고 이 성공방적식이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통했습니다. 고속성장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과잉 학력과 갈 곳 모르는 청년만 남아 있습니다. (끊어진 다리 사진 보여주며) 미래로 향하던 다리가 끊어진 상황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다리를 이어야 할까요. 이제 직업의 시대에서 업()의 시대로,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내가 열정을 몰입할 수 있는 업의 시대가 필연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업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창업지원센터 개념이 아니라 좀더 넓은 의미의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창업을 할 정도의 역량 있는 사람은 소수에 국한됩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이미 꽤 많은 지원과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창업지원센터에서. 스타트업 캠퍼스는 그보다 넓은 범위의 도움 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약간 썰렁한 농담) 스타트업의 업이 이 업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영어의 업(UP)이네요

넌 커서 뭐가되고 싶니. 우리 어렸을 때 이런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교사 교수 대통령 등등 여러 직업을 얘기했습니다. 이제 그 직업은 없어질 지 모릅니다. 이제 뭘 하고 싶니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람을 돕고 싶어요.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겐 의사 외에도 많은 업의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스타트업 캠퍼스는 업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습니다. 스타트업 캠퍼스 주된 역할은 업을 찾아가는 플랫폼 비전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걸로는 직관이 생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에서 직관이 생긴다고 합니다. 저 역시 과거 미국을 가지 않고 아이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뉴스 신문 인터넷에서 본 느낌으로는 이런 속도로 달려갈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2년간 스마트폰 사용하면서 직관이 생겼습니다. 미래 바꿀 것이란 직관 생겼고 이를 믿고 기존의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올인했습니다. 20여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그는 10년 전이라고 말했는데, 20년전을 잘못 말한 듯)

유니텔 접하고 PC통신 머물다가 인터넷 접하고 이것이 가져올 미래가 직관처럼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직관을 깨울 수 있는 경험과 체험의 산물이 포함돼야 하고 그런 체험이 모여서 자신의 꿈을, 미래를, 업을 찾아가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지식의 시대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문제해결능력을 꼽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콜라보레이션, 크리에이티브 싱킹. 이 세가지가 필수 요소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 캠퍼스는 두가지 기본 개념을 채택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강연이 아닌 프로젝트 베이스 러닝(Learning)과 플립트(Flipped) 러닝으로 진행됩니다. 제가 감동 받았던 것은 '거꾸로 교실'의 가능성입니다. 한 교사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거꾸로 교실을 통해 학생이 변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모든 권력을 교사가 가졌지만 학생이 주도권을 가질 때 배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지금 파주에 거꾸로 교실 센터가 열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미래에 학생 적응력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플랫폼을 설계하고 아키텍쳐 잡고 하는 데 전세계에서 몇번째 손가락 꼽히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한게임부터 카카오톡에 이르기까지 모든 플랫폼의 가치 알고 있습니다.

업 배우거나 전환하거나 업 시키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역학을 잘 수행하게끔 장애물을 치워주고 독려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스타트업 캠퍼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프로젝트들 ,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자기의 업을 찾아가는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준비할 것입니다. 스타트업 캠퍼스는 연결만 하고, 나머지는 퍼실리테이터라는 파트너와 함게 할 겁니다.

대한민국에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 고군분투 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스타트업 캠퍼스와 함께 (이들이 하는프로젝트가)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그램 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스타트업 캠퍼스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참여한 모든 분들 같이 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든든한 마음으로, 전 이런 분야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콜라보 통해서 이 문제 해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도지사 말씀대로 흙수저 헬조선 취준생, 이런 말이 보여주듯이 아픔과 좌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로봇과 경쟁하고 공존해야 하는 시대. 100세 이후의 삶.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공포로 다가오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의 미래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뿌옇게 낀 안개 속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 파트너 분들 한 두가지 길이나마 열어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언제나 위험과 어려움 있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길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에 우리는 반드시 길을 찾고 우리 아이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그렇게 노력할 것이라고. 이 말로 취임사를 대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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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성공한 창업가를 만나 누구라도 가장 처음에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숱하게 던졌고 성공한 기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 바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라는 제목의 책은 이처럼 창업가들에게 듣고 싶은 핵심적인 질문을 주제로 출간됐다. 현재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그것도 창업을 꿈꾸고 있는 젊은이들이 직접 성공한 창업가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오가는 대화를 녹취록을 풀듯이 써내려갔다.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 창업자 등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만나고 싶어할만한 8명의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최대한 현장감과 자신들의 궁금함 그리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을 드러냈다. 주제 뿐 아니라 풀어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어떻게 대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들을 만났다.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의 공동 저자들. 왼쪽부터 이상호, 김준호, 최우정>

◆답답함을 풀고 싶다

서울대 법학과 05학번인 김준호 군은 책의 출발점이 된 질문을 던지고, 이 작업을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법학과 학생으로는 매우 특이하게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택했고 컴퓨터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대 벤처동아리인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SNU SV) 활동도 했다. 

 그가 처음부터 책을 써야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막막하더라구요. 제가 엔지니어가 아니다보니 더욱 그랬구요.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답답했죠. 대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부터 하기 시작한 거구요. 창업과 관련해 저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보겠다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

 원래 그는 일단 대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다음 이를 동아리 게시판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으로 내도 되지 않겠냐’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답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대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록으로까지 남겨보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런 답답함을 안고 있어도 그냥 넘기기 때문이다. 답답함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남다른 경험에서 오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2011년에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가 주최한 글로벌스타트업워크샵(GSW)이 있었는데 여기서 제가 연사 섭외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때 황창규, 이재웅 등 성공한 기업가나 벤처기업인 등을 섭외해 보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역시 무슨 계기가 있겠지 싶었다.

 하여간 이런 경험을 한 덕에 그는 자신의 창업의 궁금증, 더 나아가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만한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8명이 모이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김준호군은 벤처동아리 게시판에 함께 인터뷰하는 작업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깃발들고, ‘일을 시작할테니 관심있는 사람은 모두 모여라!’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까다롭게 골랐다. 아무래도 그가 갖고 있는 그런 문제의식과 비슷한 문제의식, 아니 유사한 관심사가 있어야 함께 일을 해나가면서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면접을 하면서 한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졌어요. ‘창업을 한다면, 누구와 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이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거죠.”

 그렇게 해서 김준호를 포함해 총 8명이 모이게 됐다. 이 중 6명은 서울대 학생벤처네트워크 동아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등 서울대생이고 나머지 2명은 연세대, 고려대 재학생이었다. 

 이들을 만났을 때 공동 저자 중 2명이 함께 나왔다. 연세대 화학공학과 09학번 이상호는 연세대학교 벤처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2009년) 창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개발자로 변신을 꾀해야한다는 생각을 한편 하면서 창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준호가 올린 모집 공고를 보고, ‘창업을 하고 싶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기획이다’라고 판단, 응모를 했고 함께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2년 SNUSV 동아리 부회장을 맡았던 최우정은 서울대 디자인 08학번. 그 역시 쟁쟁한 학교 선배들의 창업 스토리를 보면서 창업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알고 싶었다. 김준호가 올린 내용은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도 합류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

대부분 책을 쓴다는 일 자체가 처음인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12년 2월에 팀원을 모집했고, 바로 인터뷰 작업에 들어갔는데, 2013년 2월에야 마지막 인터뷰가 끝났죠. 그런데 그 뒤로 책이 나오는데는 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리더격인 김준호의 설명.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저자들로부터 직접 책을 받았다. 디자인이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디자인을 전공으로 한 최우정씨가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저자가 직접 디자인을 했으니 남다를수밖에 없다. 

 이들은 김범수, 장병규, 손주은, 권도균, 이택경 등 일선 취재기자들도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직접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했다. 자신들이 궁금한 창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성공한 창업가들이 한 말을 그대로 녹취를 따서 옮겨 적었다. 덕분에 바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는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대신 이들 자신의 해석이나 평가, 생각 등은 대부분 배제했다. 즉 대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창업가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내는, 즉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도 상당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옛 이야기, 속마음, 하고 싶은 일들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무려 2년에 걸친 작업을 하는 동안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김준호는 “오히려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창업을 해 보겠다는, 창업 자체에 대한 목적 의식이 강했고 그래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이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느긋한 마음마저 갖게 됐다는 것. “아직 병역특례 기간이 남아있어서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등 해외에 나가 외국업체에서 일해보는 기회도 갖고 싶어요. 그러면서 창업을 준비해볼까 합니다.”

 함께 자리를 한 이상호는 일단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군대에서 개발자가 될 지 아니면 팀을 만들어 창업을 할 지 좀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다. 게임업체 취직을 생각하고 있던 최우정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신만의 꿈이 생겼다고 한다. “디자이너 생산자들을 위한 툴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런 목표를 갖고 앞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들 역시 2년여 시간동안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그게 책이 나온 것 못지 않게 이들에게 중요해보였다. 그리고 2년간의 작업으로 나온 책이 창업을 고민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생각과 고민의 시간을 갖게 해주지 않을까.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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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완의 우주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번에 하려는 얘기는 그의 과거 우주인이 되고자 했던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여전히 우주인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다른 이야기다. 이 정도만 되도 짐작하겠지만 이번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다.

 작년 여름 고산 대표의 강연을 처음 들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말했다. 담담했지만,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인이 되고자 했던 저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싶다는 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민간이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시대가 옵니다. 우주선을 타지는 못했지만, 우주선을 쏘아올리겠다는 저의 꿈은 계속됩니다.”

 그 뒤로 1년이 지났다. 그의 이 말이 계속해서 생각나는 것은 그의 강연 중 인상깊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 뒤 그가 살아온 모습이 자신의 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는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 그 강연이 한때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고산 대표를 다시 찾았다. 타이드인스티튜트 사무실은 여전히 세운상가에 있었다. 가서 보고 나는 그가 왜 세운상가에 사무실을 얻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그가 자신이 왜 세운상가에 사무실을 얻었는지 그렇게 여러번 설명을 했는데,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한 번 가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세운상가 5층에 위치한 타이드인스티튜트 사무실에서. 고산 대표.>

그가 2011년 타이드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고, 작년에 그와 몇 차례 만나 얘기를 들을 때도 사실 나는 긴가민가했었다. 고 대표를 만났을 때 그런 생각들을 얘기했었다.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는, 역시 솔직한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자리도 잡았고, 어슴푸레했던 많은 부분들이 상당히 구체화됐다는게 그의 설명.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보자. 타이드인스티튜트는 뭘 하는 곳인가? 아주 쉽게 말하면 벤처 창업을 도와주는 곳이다. 사단법인이고, 비영리다.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창업 도우미로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타이드워크숍(TIDE Workshop)에 응집돼 있다. “제조업 창업의 첫 허들은 시제품 제작입니다. 그것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자.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시작했죠.”

 타이드워크숍의 모토는 ‘당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방법’. 방법만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장소도 제공해주면 더 좋다. 고산 대표는 그래서 열린 제작 공간 팹랩(Fab Lab)을 만들었다. 미국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의 Fab Lab을 본뜬 것이다. 한국에서 민간이 하는 공간으로는 최초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있는 세운상가 5층 사무실이 곧 팹랩의 공간이기도 했다. 찾아갔을 때 사무실에는 3D 프린터, 레이저커터 등 직접 제작하고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기들이 구비돼 있었다. 여기에 세운상가의 장점이 다시 부각된다. “나가면 바로 필요한 부품을 살 수 있쟎아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죠. ” 그가 직접 비치된 장비를 보여주면서 어떤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을 해 줬다. 지금 당장은 간단한 모형을 만들 수있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앞으로 점점 더 정교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물론 이것을 아무 준비 없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고 타이드가 워크숍을 통해 그런 지식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들은 미국의 로컬 모터스(Local Motors)와 같은 사례들이 국내에서 가능하게 되는 시점을 앞당길 지 모른다.

 로컬모터스는 여느 제조업체들과는 사뭇 다른, 자신들이 직접 차를 만들어 파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디자인과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최종 단계에서는 로컬 모터스의 마이크로 공장에 가서 자신이 탈 자동차를 직접 조립해 온다. 랠리 파이터(Rally Fighter)는 그들의 첫 작품이었다. 자동차를 일반인들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 속 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제작 지식과 경험 등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고, 부품들이 모듈화되고, 제작 공간과 장비가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소비자가 프로슈머로 변신하는 일이 제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로컬모터스에 참여하는 대중들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이들이다. 사실 이들도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벽은 점차 낮아지지 않을까.

 그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또는 DIY(Do it Yourself)를 하려는 일반인들의 양산에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는 창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창업 중에서도 기술 개발형과 제조형 창업이 그의 주된 관심이다. 기술이나 제조 쪽에 역량이 있지만 테크닉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타이드 아카데미(TIDE Academy)가 그것이다. “Singularity University를 모델로 했어요.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창조형, 선도형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 고 대표의 부연설명이다.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교육이 8가지 트랙으로 준비돼 있고, 디자인, 회계 등 스타트업을 경영하기 위한 5가지 툴에 대한 강의도 마련돼 있다. 3주간의 트렌드 교육을 거쳐, 3주간 시제품 제작 교육을 받고 나면 2주간 멘토링을 받고 선도기업 탐방도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이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참가비가 전혀 없다는 것도 매력적. 

 이게 다가 아니다. 고 대표는 국내와 해외에서 창업자간 또는 창업자와 VC, 정부인사,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타트업 스프링보드’와 ‘TIDE Insight’가 그것이다. 2011년 7월 처음으로 시작된 ‘스타트업 스프링보드’는 국내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해외에 있는 한인 창업가들 또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위해 만들어진 것. 창업경진대회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흔히 있는, 행사 후 일회성으로 해외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창업가들 사이에 좀 더 반복적으로, 지속성이 있는 만남이 필요하다는 고 대표의 생각이 반영됐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아시죠? 그거의 해외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외에 있는 한인 창업가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에 도움도 주고 실제로 사업 확대도 가능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TIDE Insight’는 국내에서 밀도있게 이뤄지는 창업 관련 인물들의 네트워크다. 만나서 생각을 공유하고 전문가의 발표도 들으면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이 만나다보니 보다 밀도있는 정보의 공유나 친밀감있는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게 고 대표의 생각.

 이런 여러 활동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제조업 창업과 국내 제조업의 저변 확대. 고 대표가 스스로는 인큐베이터가 아닌 플랫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즉 그가 만든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싹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이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 기업들에 투자해서 이익을 얻는 그런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인큐베이터들이 할 일이고, 자신은 수많은 메이커스(makers; 이때의 메이커스는 크리스 앤더슨이 쓴 최신작 ‘메이커스’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수요를 창출해나가는, 제조업 혁명을 불러올 그런 사람들)들이 이뤄낼 새로운 혁명과 도전의 플랫폼이 되고 싶다는 것. 어찌보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자신이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 위에서 자신도 도전하고 싶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실제로 그는 직접 창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물론 이 창업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플랫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창업한 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다룰 수 있을 듯 하다. 여운을 남기며, 오늘은 여기까지.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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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벤처 창업이 활성화겠죠.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똑똑한 젊은이들은 여전히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업에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4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KDI(한국개발원) 주최로 열린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정책방향’ 세미나에 앞서 이석우 카카오 대표를 만났다. 그는 현재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관련 논의에 대해 “큰 방향은 맞다고 보고, 바람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에 대한) 체감도는 아직 낮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벤처창업 활성화 및 벤처생태계 조성을 꼽았다. 이를 위해선 똑똑한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설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똑똑한 청년들은 창업을 하지 않고, 고시 공부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을 꿈꾼다. 한국에서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은 아직도 매우 독특한 인생관을 지녔거나,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거나(또는 세상사에 무지하거나 철이 없거나), 자신만의 어떤 세계가 있는 특이한 인물 쯤으로 치부된다.

 왜? 창업 자체도 엄청난 모험인데, 실패했을 때 상상도 못할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의 걸림돌로 창업 의지를 꺾는 법과 제도를 꼽았다. 특히 대출을 받거나 정책 자금 등을 지원받을 때 창업자의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 이 대표는 “연대보증을 했다가 그 빚을 못 갚으면 사기죄로 형사처벌까지 받는 게 현재 한국의 현실”라며 “창업을 독려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창업자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지우는 제도”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청년창업 생태계 조성 및 활성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청년 벤처기업인 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4.3%는 ‘창업실패에 따른 사회안전망 미약’을 창업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이석우 대표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그는 “지금 이런 현실에서는 솔직히 저도 어디가서 젊은이들에게 창업하라고 선뜻 얘기 못 합니다. 실패를 했을 때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거든요. 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교육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어릴 때부터 창업을 준비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에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액이라도 신용카드를 만들어 차곡차곡 신용을 쌓아가도록 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신용이 준비되고 창업 의지가 있는 준비된 창업자에게 연대보증이라는 가혹한 부담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창조경제가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것이라면 창업생태계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선 우스개소리로 벤처캐피털이 벤처 투자를 고려할 때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인도계이면 점수를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로 실리콘밸리를 떠받치는 힘은 인도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것”이라며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창조경제 달성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 투자펀드 조성 다 좋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육성은 20년 걸리는 것이고 투자펀드 조성은 민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정부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 창업과 투자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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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쫓아갔더니 미래가 보였다”

글로시박스 최홍준 대표는 일관된 길을 가지는 않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근무를 했지만 미국에 건너가 장사를 경험하는가 하면 투자와 관련된 업무를 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 역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미래를 걱정할 때는 앞날이 보이지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열정을 쫓았을 때 새로운 세상이, 미래가 열렸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꿈을 쫓아, 열정을 쫓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글로시박스 최홍준 대표를 만났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서울대 경제학과 95학번인 최 대표는 학교를 졸업하고 IBM에서 근무를 했다. 5년동안 그는 세일즈와 사업 개발 분야의 일을 했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서 근무를 한 사람답게 그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고민했다. 그래서 UCLA로 건너가 MBA(경영학석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최홍준 대표는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수재들이 그렇듯, 그 역시 자신을 계속 단련하고 자신에게 투자해 실력을 점점 키워서 더 높은 자리로 가는 그런 목표를 세우고 앞을 향해 달려갔다. “계속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생각을 한거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어요. 그랬더니 기왕이면 내가 가진 것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어지더라구요. 물론 돈도 벌어야겠죠. 하지만 좀 더 가치있게 살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는 MBA 과정 중에 LA(로스앤젤레스)에서 중고 옷을 판매하는 등 창업 예비 훈련을 나름대로 했다.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하는 당장의 목적은 물론 학위를 따는 것이었지만 그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직접 장사를 하는 것을 포함해 현지 기업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견문을 넓히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라이트미디어라는 회사에서 광고 네트워크 관련 일을 하다가 야후에서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는 야후 본사에서 일을 하는 기회도 얻었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 그는 SK텔레콤에서 1년반 정도 투자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하지만 그가 대기업에서 느낀 것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제가 저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할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제 능력의 한계까지 일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로켓인터넷을 통해 창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화장품 정기 체험 서비스 1호

로켓인터넷은 한국의 패스트트랙아시아(FTA)와 유사한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그는 로켓인터넷을 UCLA MBA 중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독일에서 태동한 로켓인터넷은 인터넷·모바일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초기 투자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마치 매월 잡지를 구독하듯 화장품 최신 제품을 담은 ‘박스’를 정기적으로 받아 이를 써 본다는 개념의 ‘글로시박스’ 사업 아이디어를 로켓인터넷은 글로벌 서비스로 확산하고 싶어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브라질 등 5개국에서 비슷한 시기 일제히 서비스가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최홍준 대표가 이 사업을 맡아 시작하게 됐다. 사업 기획안을 만들고 2011년 3월 28일 법인을 설립했다. 5월에 첫 상품을 출시했다. 

 글로시박스(Glossy Box)는 화장품 시장의 허점, 즉 여성들이 화장품을 쓰면서 느끼는 불편함에 착안했다. 일상 생활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서비스로 출발한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은 누구나 화장품에 관심이 많고 새 제품이 나오면 이를 써보고 싶어한다. 누구나 더 예뻐 보이고 싶어, 피부가 더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새 제품이 나오면 그 중 자기에게 더 적합한 제품이 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매월 쏟아지는 신제품 사이에서 정작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사실 뭐가 나오는지도 잘 모른다)

 최 대표가 이 사업을 하면서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미용실에서 우연히 여성 잡지를 보면서부터다. 한 권의 여성 잡지에 300개가 넘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었고 이들이 500종이 넘는 화장품 신제품 광고를 하고 있었다. 광고를 하는 제품만 그 정도였다. ‘이렇게 수많은 제품이 쏟아져나오는데,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자’ 이런 생각이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선택을 강요할 순 없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새 제품을 써 보고 그 중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게 한다면 업체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화장품 정기 체험 서비스라는 카테고리로 글로시박스는 국내에서 첫 선을 보였다. 글로시박스는 매월 여성 회원들에게 필요한 (화장품을 포함한)뷰티아이템 5가지를 큐레이팅, 핑크색 박스에 담아 보내준다. 소비자는 화장품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하는 수고를 덜고 화장품 브랜드는 자사의 제품을 타게팅된 소비자의 손에 쥐어줄 수 있다. 그리고 글로시박스는 소비자들로부터 정기 서비스료를 받아 돈을 번다. 3자가 모두 이익이다.

◆하나를 성사하기 위해 아흔아홉번 거절을 당할 수 있다

글로시박스는 독일의 로켓인터넷으로부터 초기 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통상적인 스타트업에서 비해선 비교적 수월하게 시작한 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창업 아이템도 분명하고 수익 모델도 확실히 갖췄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웠다.

 “제품은 매달 쏟아져 나오지, 소비자와 업체에게 모두 이익이지, 비교적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일단 화장품 업체들로부터 제대로된 물건을 조달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화장품 회사에 별다른 인맥이 있을리 없는 30대 남성이 무턱대고 화장품 회사를 찾아가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화장품을 공짜로 달라고 했으니 선뜻 신뢰하기 힘든 게 당연했을지 모른다. 한 두 곳은 실험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계약을 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들이 충분히 체험할 만한 물량을 확보하는데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소량이나마 화장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5월에 제품이 나왔지만 500박스 밖에 만들 수 없었다. 일단 초기 물량은 그냥 공짜로 뿌렸다. 흔히 말하는 샘플 제품을 받지 않고 일주일 정도는 써 볼 수 있게 제대로된 용기에 담긴 제품을 받았다. 스킨, 메이크업, 바디 등 다양한 제품으로 구성하되 이를 또 피부타입과 톤 등에 따라 구성했다. 화장품 회사는 이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중 구매로 전환하는 소비자를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는 그냥 선심성으로 주는 샘플 제품을 얻어 쓰는 차원이 아니라 매달 신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단 1만6500원을 내고 쓴다. 이 사용료가 고스란히 글로시박스의 수입이 된다. 

 하면서 사업 노하우가 터득이 됐다. “미백제품은 3월부터 판매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2월에 섭스크립션을 하는 게 좋죠. 써 보고 주문하게 되거든요. 겨울에는 보습제품을 많이 쓰니깐 가을부터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더 세분해서 통계를 내고 사람들의 생활과 화장품 사용습관을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죠. 어쩌면 그게 핵심 경쟁력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매달 1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고 있고 지금까지 120개 화장품 브랜드와 제휴를 맺었다. 제품 미니어처와 백화점 방문 안내장을 같이 보냈더니 방문율이 14%에 달하기도 했다. 통상 샘플 보냈을 때 방문율이 2%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매달 엄청난 신제품이 쏟아지기 때문에 제품 조달 걱정은 없다. 오히려 너무 홍보가 되서 회원이 급증하면 물량 조달이 안될까 그게 걱정이다. 함께 할 직원을 뽑는 것도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였다.

 “사람을 내보내는게 가장 힘든 일이더군요. 매달 물품을 맞춰야 하는 스트레스도 있죠. 하다보니 자기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사람이 함께 벤처를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창업을 해서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아흔아홉번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만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고, 모자라는 것을 도움을 받아 채워가는 법도 터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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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벤처 붐은 없다?

한국의 스타트업 2012.11.12 22:07 Posted by wonkis

벤처기업이 급격히 늘어나는 최근의 현상을 제2의 벤처 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까. 이에 대해 벤처기업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자금을 받는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최근의 벤처 열풍을 결코 ‘제2의 벤처붐’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니왔다. 시장 활성화에 따라 벤처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정부자금의 정책적 지원 대상이 늘어난 것 뿐이라는 뜻이다.  

 김기완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12일 ‘제2의 벤처붐을 맞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간 벤처 기업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기 보다는 정부 지원을 받아 생존한 업체들”이라며 “정부 자금받는 벤처의 급증이 정부의 벤처지원제도가 남용된 결과는 아닌지, 또 벤처지원제도가 기업 성장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벤처 지위를 유지하도록 유인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한다”고 지적했다.


◆10개 중 9개는 정부지원 받는 벤처

KDI보고서에서 인용한 중소기업청 집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말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4645개로 사상 최대 수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벤처기업 수는 2001년 1만1392개까지 늘었다가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2003년 7702개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 2010년 2만개를 돌파했다.

 김기완 연구위원은 이들 중 90.6%인 2만2231개가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지원을 받는 정부지원 벤처라고 분석했다.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냉정한 평가를 통해 투자한 회사는 622개(2.5%)에 불과했다. R&D(연구개발)를 위주로 하는 연구개발기업의 비중도 6.4%에 그쳤다. 

 김 연구위원은 벤처 수는 갈수록 늘지만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지적했다. 2005년 전체 9732개 벤처기업 중 405개 기업(4.2%)이 코스닥에 상장돼 있었지만 2010년에는 2만4645개 벤처기업 중 1.2%에 불과한 295개만 상장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지원 업체는 상장비율이 더 낮았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설립된 2만5698개 벤처 중 정부 지원을 받은 업체는 2만539개. 이 중 1.8%인 385개사만 상장됐다. 하지만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벤처는 1566개사 중 5.5%인 86개가 상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지원보다 시장에 의한 선별이 기업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라며 “최근엔 벤처 수만 늘어날 뿐 시장에서 평가받아 성장하는 경우는 줄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만든 ‘가짜’ 벤처생태계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원을 하는 기업의 규모(매출액 기준)가 2005년 매출액 25억원대에서 2010년 10억원대로 추락하는 등 계속 축소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뒤 매출이 줄거나 정체되는 회사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의 자금이 점점 더 영세한 기업에만 집중되고 성장과 무관했다는 것은 정책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김 연구위원의 이런 지적은 벤처업계에서 일찍이 논란이 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문성에 의한 경쟁력 평가를 기반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테마를 정해놓고 무조건 집행하기 때문에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벤처 열풍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창업의 테마를 좌지우지하고 이를 따라다니는 벤처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은 꼭 비판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 뿐 아니라 업계의 벤처기업인들도 계속해서 지적해 온 문제들이다. 권일환 퀄컴벤처스 한국대표는 “한국은 정부가 테마를 정해놓고 투자자금을 배분하면 거기에 맞춰 벤처들이 태어나는 전형적인 정부주도형 벤처생태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정부가 만든 가짜 생태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특정 테마를 정해놓고 50개 벤처를 지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면 회사의 사업 내용, 전망, 기술력 등을 도외시한 채 무작정 숫자만 맞추는게 지금 한국의 벤처지원제도”라며 “이렇게 정부가 억지로 만든, 경쟁력없는 가짜 벤처생태계에 돈을 넣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김 연구위원의 문제 의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벤처 붐은 과거에도 정부 주도형이었다. 다만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투자하는 회사가 전체 벤처기업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벤처 붐이란 아예 없었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투자하는 회사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정부가 지원하는 벤처기업의 규모는 점점 작아진다는 것. 아주 초창기에 있는 벤처기업들이 시장에서 평가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어쨋든 결론은 명확하다. 정부는 직접 지원을 하는 그런 방식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 하면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좀 더 리스크를 떠 안고 투자를 확대하도록 할 지, 그런 환경을 만드는 데 좀 더 골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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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에선 저렴하고 맛있는 농·축산물이 왜 대도시에 오면 터무니없이 비싸지고 맛이 없어질까. 이런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것이다. 영세한 농가의 비효율적인 생산시스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유통과정이 중요한 원인이다. 

 올 3월에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를 오픈한 헬로네이처란 벤처기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소개하려는 회사는 한우 유통에 특화됐다. 회사 이름도 한우를 연상케하는 한비프(Han Beef)다. 헬로네이처와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이 회사는 출발했다. 농·축산물의 길고 복잡한 유통과정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최종 결과물이 다를 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다. 자신들이 직접 이름을 걸고 나서 소비자에게 배달까지 해 준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30대 초반의 도시 총각이 왜 한우를 들고 나타난 것일까.

◆컨설턴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99학번인 이준하 한비프 대표는 졸업 후 아서디리틀이라는 유명 컨설팅 회사에 취업을 했다. 2년 남짓 컨설팅 회사에서 여의도에 있는 칸서스파트너스라는 PEF(Private Equity Fund)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이 저물어갈 무렵 그는 컨설팅 관련 업무를 그만두기로 작정한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분명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배운 것도 있고, 이 분야의 장점이 있거든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죠.”

 때마침 그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다. 아더디리틀에 있을 때 만난 육현진씨. 육씨도 컨설턴트였다. 두 사람은 함께 창업을 하기로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먼저 자신들의 장단점을 떠올려봤다고 한다. 업의 전문성은 없지만 문제해결을 하는데 주력하면서 문제 해결의 핵심과 과정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사고파는 경험을 계속 했기에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착안한 것은 ‘좋은 비즈니스 아이템이 있으면 일단 그것을 사업화하는 그런 일을 해 보자’는 거였다. 즉 아이디어를 비즈니스화하는 것으로 사업 아이템을 잡은 것이다. 자신이 하는 사업을 스스로 컨설팅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가고 그 중 잘 되는 것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기도 하고, 매각을 하거나 합병을 하는 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시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2010년이었다. 이시스는 아이디어를 인큐베이팅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좀 특이하다”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이런 비슷한 사업이 우리 주변이 많이 있습니다 건설 시행사들이 하는 일이나 연예 기획사가 하는 일도 이와 유사합니다. 결국은 사업 발굴해 사람 모으고 투자해 키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요. 이쪽(IT) 분야에 비슷한 게 없을 뿐입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인큐베이팅으로 출발했지만 그 사업 내용이 탁월하다면 그 사업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기회가 올 것이냐가 문제였다. 2011년이 됐을 때 이준하 대표는 자신이 계속 궁금해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한우 값이 왜 이리 비쌀까

“한우가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이 대표는 농가에서는 한우가격이 떨어진다고 시위하는데 소비자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것은 ‘농축산물 유통구조가 30년 전 방식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우가 소비자의 식탁으로 오기까지 유통 과정은 무려 7~8단계. ‘농장→우시장→수집상→도축→가공→도매상→정육점→소비자’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값은 계속 오른다. 유통단계를 줄이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농협에서 안심한우라는 서비스를 하면서 나름 유통 단계를 대폭 줄이고 자신들이 직접 공급하는 한우를 지정 식당이나 직영 식당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심한우 브랜드가 나오면서 되레 동네 한우식당이나 정육점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하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농가와 직접 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3단계로 줄였다. 거래 단계를 줄이면 가격은 분명 떨어지겠지만 서비스 차원에서는 그 정도로는 충분히 차별화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직접 배송을 해주는 것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편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편리한 주문 방식도 마련했다.

 우선 한비프닷컴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 토요일 오전 배송하는 방식으로 판매하기로 했다. 한비프는 등심·안심·채끝(구이), 설도(불고기), 양지(국거리) 등 7개 부위를 200g씩 진공포장된 팩 형태로 8000원~2만원대로 다양하게 판매한다. 정식 서비스를 위해 200가정을 선택해 시범 서비스를 두달 남짓 해 왔다. 배송에 문제는 없는지, 고기를 사람들이 선택할 때 불편함은 없는지, 고기 종류에 대한 분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시범 서비스를 통해 점검했다. 

 한비프는 1+ 등급 한우만 취급한다. 유통 단계를 줄였기 때문에 같은 등급 기준으로 마트에 비해 고기 값이 10%이상, 백화점에 비하면 30% 이상 저렴하다. (물론 요즘 마트들은 유통단계를 대폭 줄여서 떨이 수준으로 판매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평균적인 가격 비교는 쉽지 않을 듯 하다) 필요한 고기를 미리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형 패커 모델 선보이겠다

대형 마트나 동네 정육점들하고 경쟁해 고기를 많이 파는 게 한비프의 목적일까. 단기적으로는 이들과 경쟁해 살아남는게 우선이다. 한우값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할인점들이 싸게 도입한 쇠고기 판매를 늘리고 수입육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한비프의 사업 전망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한비프는 이에 대응해 저렴한 가격 뿐 아니라 1+ 등급 한우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 소비자 만족도를 끌어올린다는 점, 그리고 필요한 양을 비록 그 양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각 가정에 배송한다는 점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장기적으로 한비프가 지향하는 것은 유럽식 패커 체제. 농가와 연게해 도축, 가공 등의 과정을 중간에서 한비프가 한꺼번에 담당하는 것이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지금보다 훨씬 싼 가격에 한우를 공급하겠다는 것.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일단 지금의 한비프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 수가 대폭 늘어나 유통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커져야 한다. 이 대표는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가축 사육농가, 도축, 유통 등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한 ‘패커’ 체제가 발달했다”면서 “우리도 도축에서 소비자 유통 직전까지의 단계를 동시에 진행하면 가격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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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에 앞서 장사를 하면서 사업 감을 익힌 사람이 드디어 회사를 차렸다고 하면 그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일찌감치 인생의 방향을 잡고 계속 한 우물만 파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우물이 맞는 우물인지, 내가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지 않고 올바르게 우물을 파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일 거다. 이런 생각이 과도하면 우물을 파는 것이 잘 안될 수 있다. 그래도 잘 해냈다면 재능 못지 않은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렌즈큐브 김영민 대표는 장사로 내공을 쌓은 후 창업에 나섰다. 그리고 그 창업 과정은, 누구 못지 않게 필연으로 이르는 수많은 우연으로 점철돼 있었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싶다

81년생인 김 대표가 처음 창업에 나선 것은 2002년.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했던 그는 병역특례를 가기 위해 여러차례 신청했지만 그때마다 잘 안됐다고 한다. 당시 그가 얼핏 들은 정보는 “서울대 KAIST 아니면 병특 못간다”는 것. 물론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일견 낙심한 그는 병특으로 군복무를 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돈이나 벌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2002년 시작한 것이 애견쇼핑몰. 말 그대로 애견을 도매업자로부터 사다가 일반에 파는 일이었다. 장사는 제법 됐다. 이때 그가 발견한 것은 장사의 어두운 면이었다. 그 사업에서는 판매하는 애견에 대한 정보를 조금만 부풀려도 판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벌고 싶었죠.”

 그 시장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그는 2004년 봄, 사업을 접고 군입대를 했다. 2006년 8월에 제대하고 편입을 준비한 김 대표는 이듬해인 2007년 3월 고려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과를 바꿔 학교를 들어갔기에 공부가 힘들법도 했을텐데, 한번 사업에 눈 뜬 그는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2007년 하반기부터 중고차 매매 일을 하기 시작했다. 

 “중고차 딜러를 하려면 자본이 꽤 있어야 하지 않나요?”

 “네 그래서 다른 중고차 매매상과 같이 했죠. 혼자서는 하기 힘들더라구요. 제가 차를 파는 역할을 맡았는데 곧잘 파니까 합작을 하는데 어려움을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고차 매매 시장도 오래 있을 곳은 못됐다. 어느날 문득 그는 학교로 돌아가서 제대로 학업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배운 것은 있었죠. 어디나 가면 그 시장의 룰이 있습니다. 그 시장의 룰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업의 감을 잡는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두 번의 장사를 하면서 그 룰을 빨리 깨우칠 수 있었죠.”

 1년여 중고차 매매를 했던 그는 2008년 2학기에 복학했다. 2010년 상반기까지 한눈 팔지 않고 학업에 열중했다. 사업을 두 번 하면서 학업에 필요한 돈은 모았기에 걱정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2010년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왜 IT에서 창업할 생각을 못했을까

 스마트폰 쓰는 사람이 하나둘 씩 생기고, 카카오톡으로 사람들이 만나서 대화를 하기 시작하고..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 왜 IT 분야에서 창업할 생각을 못했을까.”

 사실 그는 IT 분야에서 창업을 하는 것이 일찌감치 준비된 사람이었다. 2000년 선배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있으면서 일을 도우는 틈틈이 프로그래밍을 배웠다고 한다. 그 덕에 고려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2년 애견쇼핑몰 사이트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떠올려보자 IT분야에서 창업을 하기 위한 훈련을 해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이 길을 열어주신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팬택을 다니던 공대출신 친구와 함께 창업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번 실력을 점검할 겸, 2010년 10월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참여했다. 때마침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와 한 팀이 돼 소개팅을 컨셉트로 한 서비스를 기획, 1등을 하기에 이르른다.

 사실 이들이 당시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참석했던 것은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함께 창업할 동지를 구하기 위한 거였는데 점찍어둔 사람이 있었다. 외대 불문과 재학중인 강윤모씨였다. 강윤모씨가 이 행사에 올 것이란 첩보(?)를 입수하고 대회에 갔는데 강씨는 당시 참석하지 못했다.

 세 사람의 만남은 당시 성사되지 않았지만 기회는 다시 왔다. 이들의 만남이 운명이었을까. 운명은 천천히 자신의 계획대로, 자신의 방향으로 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듬해 5월 원주에서 열린 스타트업 위크엔드에 강윤모씨도 참여했다. 김 대표는 친구와 함께 이미 1월부터 소개팅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원주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이들은 뮤직앤배틀이라는 음악 오디션 서비스로 상을 받은 뒤 강윤모 이사도 합류가 결정됐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정말 고민했어요.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그곳에 간 것이 인생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됐죠.”

 강 이사가 합류하고 디자이너가 들어오면서 팀의 틀이 만들어졌다. 강 이사에게 왜 이 회사에 왔는지 물어봤다. “꿈이 커 보였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연습이나 공모전 차원이 아닌 본격적인 대중을 위한 서비스 개발을 위한 기획에 들어갔다. 팀이 갖춰진 뒤 서비스는 처음의 프로토타입 단계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분당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프렌즈큐브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김영민 대표>

◆친구의 친구는 친구다

“우선 소개팅의 느낌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이 너무 한정될 것이란 생각을 했고,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봤거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연애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인간관계 확장이나 유지를 위해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툴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럼 일종의 LinkedIn의 한국판 서비스라고 봐야할까? 쉽게 말하면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김 대표는 LinkedIn의 한국판 서비스 컨셉트는 궁극적으로는 프렌즈큐브의 서비스 중 한 항목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럼 프렌즈큐브가 그리는 그림은 뭘까. 왜 강윤모 이사는 김 대표의 아이디어를 듣고 꿈이 크다고 생각했을까. 프렌즈큐브는 ‘친구의 친구는 친구다’에서 출발한다. 나의 친구 뿐 아니라 친구가 신뢰하는 친구가 기본 연결된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연결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모두 개인의 동의 과정이 들어가 있다.

 이들이 이 서비스를 만든 것은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을 때 가장 신뢰할 수 있는데 그런 통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는 너무 특정 목적, 예를 들어 소개팅이나 직장 연결 등에만 국한돼 있다. 경험이나 취미, 관심사, 가치관, 다양한 생각 등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모든 연결고리가 다 계기가 될 수 있는 그런 서비스. 프렌즈큐브가 지향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작년 9월 미완성의 테스트 버전이 나왔다. 올 5월23일에는 베타 버전이 출시됐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서 모두 쓸 수 있다. 주소록을 기반으로 친구가 형성되고 그 친구의 친구도 찾을 수 있고 소개를 받을 수 있다. 관계를 확장하다보면 꼭 직장이나 소개팅에만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인간관계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마음껏 할 수 있게 하고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보면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도저도 안 될 수도 있는 모델이다.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재미요소와 함께 확장의 모티브가 필요한 이유다.

 김 대표에게 프렌즈큐브의 핵심을 담아서 한 문장으로 소개를 해보라고 주문했다.

“신뢰관계 안에서 사람을 찾을 때 프렌즈큐브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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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창립 1주년 행사로 3월 22일 서울 양재동 포스코센터에서 창업희망토크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NXC 대표),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가 나와 대담을 나눴습니다. 공개석상에서 잘 모습을 보기 힘든 김정주 대표의 멘트를 따로 뽑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정소람 기자가 전달한 메모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사회자의 질문에 김 대표가 답변하는 형식입니다) 김정주 대표가 단상에 등장할 때 박수와 환호성이 텨지는 등 현지 분위기는 '아이돌'의 등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은둔의 창업가라는 별명 맘에 드시나요?
 “맘에 들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별명이?(웃음)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해서 이런 별명 붙은 것 같다.”

-성공의 키워드
 “꾸준히 오래 해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할 것 같고요. 새로 시작하는 분들도 길게 할 수 있는 일 찾아서 길게 하는 것 그게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

-기업가정신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처음 시작할 때 도전정신 중요하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 사람들과의 조화가 있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 내외부 고객이 고객으로서 뿐만 아니라 파트너 1년 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같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유저가 가족 만들어서 가족까지 같이 갈 수 있는 것 그게 기업가 정신입니다.”

-창업의 계기를 꼽자면?
 “계기라고 할 만한 것은 따로 없습니다. 집안이 사업가 집안이라서 회사 조직 회사가 만들어내는 가치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 넥슨이 처음 만든 게 아니라 하다 망하고 또 하다 망하고 망하면 학교로 돌아가서 잠깐 있다 다시 나오고 그런 식으로 계속 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회사에서 일하는 게 즐거웠어요.”

-왜 다른 업계가 아니라 온라인게임 선택했나요
 “제가 공부했던 분야하고 일치했다. 저희가 마침 접하고 공부하고 바꿔갈 수 있는 것으로써 좋은 사업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땐 성공 예상했나요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 때와 창업 환경이 달라졌는데요
 “창업 인프라 달라졌습니다. 당시엔 인식 제도 지원이 없었습니다.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 달라져서 맥킨지를 그만두고 사업도 할 수 있고 사업 시작하고 봐도 큰 회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90년대 초엔 창업환경 어려웠죠. 하지만 펀더멘털은 변한 게 크게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도움 있을 순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습니다.

-창업의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95년부터 2012년이 됐으니 15년이 됐습니다. 20년 해보니까 회사는 3년, 10년이 지나든 여전히 어렵고 하루하루가 힘듭니다. 작년에 일도 많았고 올 초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굉장히 힘들고. 하지만 맷집이 생겨서 혼나면 극복해야지.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성 갈 수 있는 좋은 기회 있는데 안 가고 창업하다가 5년 뒤 다시 LG 갈 수 있을까?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극복하는 게 어렵습니다. 굉장히 위험하지만 해보면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창업초기부터 다른 시도, 다른 회사에서 안하는 일을 계속 해왔습니다. 우린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회사에 학교 같은 시스템이 있죠. 프로그래머인데 악기를 가르치거나 디자이너인데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우고 그렇게 풍성하게 가는 것이 모토입니다. 회사의 기본 펑션이라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산업이 15만원 10만원 경쟁하는....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면 다르게 갔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업계는 이게 팔리면 팔리고 아니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 회사일이고 제 일입니다.”

-일본에서 상장돼서 거래 시작했는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보면 코스피 코스닥에 상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상장할 수 있는 시장 많습니다. 게임 회사는 일본에서 상장해보자 하는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아시아에서 더 잘 팔리는 게임이고 그러면 인더스트리의 원류는 일본 게임회사들이고. 선택이었죠. 디자이너가 이탈리아에 가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데요, 준비해야 될 게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넥슨의 경우 매출의 반이 해외에서 나온 지가 꽤 됐습니다. 작년에 70%-80% 정도는 해외매출이었습니다. 지금 해외를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저희는 96년에 처음 게임서비스를 천리안에서 시작했어요. 미국 법인이 97년이고 일본 법인이 99년에 시작했죠. 우린 특히나 한국 서비스 갖고는 굴러갈 수 없다고 초기부터 생각해서 해외진출 생각했습니다. 해외를 더 집중적으로 가야되는 업계 선택하는 분들이 꾸준히 하고 오래하면 결국은 해외에서 물건을 팔아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메이플스토리하고 있는 미국법인이나 동경증시에 상장돼 있는 일본 법인은 가서 2-3번 다시 만든 겁니다. 계속해서 다시 두드려야 합니다. 결국은 사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고 믿고 하십시오.

-자금 압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A가 있으면 B도 있고. 이런게 저희 땐 없었어요. 국내에서 실제로 벤처캐피탈 생겨서 제안서 가져가서 들어주는 게 90년대 말이었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엔 은행에서 빌리지 않으면 돈을 빌릴 데가 없었죠. 준비해서 시작하고 쌈짓돈으로 하면 집안이 망할 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도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큰 공장 지어서 처음부터 제품 만들어서 하려면 대출받아야 하지만 최근처럼 1인창업 웹 개발 하면 작은 규모로도 할 수 있죠.”

-멘토가 있다면?
“회사를 하고자 하는 분한테 질문 받아보면 막연합니다. 제 생각에 세상에 항상 정답지는 아니지만 참고자료 이런게 항상 있었던 것 같고 어떤 일을 하시든지 분명히 있습니다. 컨닝페이퍼가 있었죠. 일본의 스퀘어가 있고. 그런 알려진 회사들을 뒤져보면 의외로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런이런 행동을 하고 인센티브 시스템이 있고, 이런 규모일 때 이런 정책을 펴서 벗어나더라. 항상 비교할 수 있는 게 있고 저희가 온라인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패키지 하게 되면 역시 참고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죠. 연감 같은 것 1년에 500타이틀 가까이 됩니다. 내가 하려는 업계에서 그 규모와 비슷한 회사를 찾아보면 예상문제지를 찾아보면 헤매지 않고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

-넥슨의 도전정신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혁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지적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밖으로 나가서 창업하는 것을 적극 지원합니다. 우리는 인하우스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회사입니다. 90%이상 인하우스에서 하니까, 오히려 밖으로 나가서 창업하는 것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서 창업하는 사람이 도끼 들고 적이 돼서 나가는 게 아니라 도전하려고 가는 거거든요.

 넥슨 밖의 도전이지만 실제로는 저희가 한다고 봐주시고요. 한 번 나가서 메이플스토리 같은 경우 성공하면서 다시 우리회사로 들어왔어요. 근데 또 나갔습니다. 네오위즈인가. 결국 그 친구가 다시 회사로 와서 신규사업본부장 다시 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만 특별한 게 아니라 미국에서 흔히 나오는 거죠.” 

-힘들 때가 언제인가요? 
“정말 친한 친구가 떠날 때 힘들죠. 게임 안 팔릴 때 힘들지는 않습니다. 사실 게임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팔리는 게 너무 당연한 상품이어서 나갔는데 안 팔려서 괴로웠던 적은 없습니다. 지금 저희가 인하우스를 90% 한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저희가 라인업이라고 준비했던 것은 30개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것을 바라보는 기댓값은 제로에요 ‘저거 잘 될 것 같애’ 하고 기대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때마다 상심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해 주셨으면.
“살면서 모든 것에 이분법을 적용해서 이건 어려운 일이고 이건 안정적인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를 가는 게 전통적이고 훨씬 편안한 길이다, 좋은 길이다, 그러니까 창업은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길이고 망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좋은 회사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절대 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 회사 가도 문제가 있어요. 동료 마음에 안들 수 있고 심심할 수 있고. 큰 회사에 속해서 일을 할 때는 자기 결정권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거 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된다고 한다든지. 이게 위험하고 힘든 일이고 저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는 다른 무엇보다 내 결정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죠. 잘 판단하시고 후회안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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