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현 NHN 창업자가 만든 앱,일본에서 1위 올라>

천양현 NHN 창업자가 최근 일본에서 설립한 벤처기업 코코네재팬의 앱(응용프로그램)이 일본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코코네재팬은 영어 듣기 교육용 앱 ‘키키토리 왕국’이 일본의 애플 앱스토어 교육 카테고리에서 무료와 유료 분야 모두에서 1위에 올랐다고 3일 발표했다.지난달 19일 출시된 이 앱은 4월 21일 교육 카테고리 무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달 2일에는 유료 분야에서도 1위에 올랐다.김성훈 코코네재팬 사장은 “키키토리 왕국이 기존 다른 어학 앱들에 비해 접근 방식이 참신해 인기를 끌었다”며 “다른 앱들은 기존 오프라인 교재를 디지털화한 반면 이 앱은 게임 요소를 집어넣어 성취감을 주고 아주 심플하게 만들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코코네재팬은 5월 중 한국인을 위한 영어와 일본어 학습 앱도 선보일 예정이다.또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앱을 출시해 일본 사용자와 한국 사용자를 소셜러닝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천양현 코코네재팬 창업자는 “앞으로 일본과 한국의 앱 사용자를 연결시켜 국경을 넘나드는 소셜러닝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티켓몬스터 월 매출액 200억원 돌파>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의 월 매출액이 200억원을 돌파했다.소셜커머스 시장 조사 업체인 소셜커머스코리아(sckorea)에 따르면 지난달 티켓몬스터의 월 매출액은 206억원을 기록했다.2위 업체인 쿠팡과 3위업체 위메이크프라이스의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쿠팡의 4월 매출액은 160억원,위메이크프라이스의 매출은 120억원을 각각 돌파했다.그루폰코리아의 매출은 47억원에 그쳤다.
 
 전체적인 매출은 아직 티켓몬스터가 크지만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쿠팡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어 향후 양사간 1위 다툼도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쿠팡은 4월 첫째주와 셋째주는 근소한 차이로 주간 거래금액에서 티켓몬스터를 추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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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현 NHN 창업자(45)가 돌아왔다.인터넷 1세대인 그가 한게임재팬을 설립하러 2000년 일본에 건너간 지 10여년 만에 한국 시장에 복귀했다.한게임재팬을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게임회사로 키웠던 그는 이번에는 교육 서비스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그는 최근 한국에 코코네코리아를 설립하고 코코네일본어의 공개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코코네코리아 일로 한국을 찾은 천 대표를 지난 24일 만났다.

◆10년전 옛 꿈에 도전
천 대표는 일본에선 ‘온라인게임의 전설’로 통한다.그도 그럴 것이 2000년 9월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4년 만에 당시 일본엔 존재하지도 않던 온라인게임이라는 새 시장을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게임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전체를 봐도 일본 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매우 드문 한국인이다.이런 그가 2009년초 NHN재팬 회장직을 그만두고 일본에서 벤처기업 코코네(Cocone)를 창업했다.코코네코리아는 코코네의 한국 법인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그는 왜 내려왔을까.“10년전 꿈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일본에서 공부하면서 하고 싶었던 언어교육사업을 꼭 해보고 싶었죠.그런데 NHN에서 하는 것보다 나와서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10년 전 꿈은 뭘까.천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정책미디어대학원에서 인지언어학을 전공했다.언어의 미묘한 차이가 사회와 문화 현상에 미치는 영향,외국어 학습에서 모국어가 간섭하는 현상(모국어가 걸림돌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게이오대학원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언어교육 관련 사업을 꿈꿨다.1999년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한국에서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김범수씨(현 카카오 사장)를 만나 한게임을 창업했다.

천 대표는 2000년 일본 시장 공략을 책임지고 일본에 돌아가 한게임재팬을 만들었다.그리고 전공이 아닌 게임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천 대표는 그러나 게임 사업을 하면서도 교육 비즈니스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기 어려웠다.NHN재팬이 현지에서 완전히 자리잡는 것을 확인한 뒤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학교 다닐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자.”

◆일본에서 두 번째 창업
코코네는 마음의 소리라는 일본어 ‘코코’(心音)에 ‘네트워크’를 합성한 말이다.어려워도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겠다는 그의 다짐이 담겨있다.코코네에 대해 설명하다가 천 대표가 문든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예전에 같이 갔던 그 식당 있죠? 그 식당 이름이 코코네였습니다.그 집이 좋아서 자주 갔었는데,창업을 하려다보니 그 식당 이름과 같은 회사명을 짓게 됐어요.그래서 식당을 찾아가서 그 이름을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이름을 아예 샀습니다.”

 천 대표와 나는 지난 2007년 7월께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한 소박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물론 나는 식당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그 식당이 바로 코코네였다.코코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코코네를 차린 천 대표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났다.우연치고는 재미있다.그 식당은 소박했지만 음식이 참으로 맛있었다.그 뒤로 많은 이들에게 나는 그 식당에 대해 말하곤 했다.일본의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듯한,정갈하고 주인장의 성실함과 실력이 돋보이는 식당이었다.무엇보다 분위기가 따뜻하고 진정성이 있었다.식당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식당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암튼 그렇게 천 대표는 코코네를 차렸다.

◆그 힘든 창업을 왜 다시 했나?
 여기서 다시 한번 천 대표와 내가 나눈 대화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천 대표와 기존에 여러차례 대화를 나눴었다.이 블로그에서도 몇차례 인용한 적이 있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이 그가 벤처 창업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얘기한 점이었다.그는 벤처가 사람의 생명을 바탕으로 자란다고 했었다.잘못되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천 대표는 그런 말을 할 만하다.그는 극도로 고생을 했었다.우리나라에 어느날 제3세계 국가의 한 젊은이가 들어와서 듣도보도못한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누가 그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도와주겠나? 그런데 그런 제3세계 젊은이가 3-4년 만에 회사를 엄청 키우더니 우리나라의 기존 대기업들까지 따라하는 모델을 만든 것이다.새로운 산업을 일궈내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거의 있기 힘든 일 아닐까.그런데 그가 일본에서 그랬다.한국의 한 젊은이가 일본에서 사업을,그것도 처음으로 해 보겠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그는 그렇게 아무 기반도 없이 2000년 9월 한게임재팬을 시작했다.그리고 불과 4년여만에 한게임재팬을 일본 최고의 온라인게임회사로 만들었다.일본에서 콘솔게임이 주류 시장이었던 탓도 있지만,어쨋든 그는 외국에 나가서 빈손으로 새로운 시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몸도 많이 상했다.내가 책(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에서도 일부 내용을 쓴 바 있지만,잠을 잘 때도 계속 생각하는 희귀한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고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을 했으면서 왜 다시 창업을 했을까? 이제 상당한 성공도 거뒀으니 좀 쉬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다시 도전했다.앞서 그의 말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그는 10년전 옛꿈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사람은 해 보고 싶은 것은 꼭 해봐야 한다.천 대표는 의지가 강하고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다.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을 끝까지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추진한다.무엇보다 아직도 젊다.그의 2번째 도전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일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고 싶다
 코코네는 지난해 일본에서 영어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동영상 강좌 중심의 영어 강좌 사이트가 아니었다.러닝스페이스,커뮤니티 스페이스,유징 스페이스 3가지 코너로 나뉘어 있다.러닝스페이스에서는 가벼운 퀴즈나 게임을 하듯이 영어를 공부할 수 있고 커뮤니티 스페이스에서는 회원끼리 정보를 나눌 수 있다.핵심은 유징스페이스다.

 유징스페이스는 그 동안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서 불가능했던 대화 상대를 만나게 해 준다.기존 교육 사이트는 일방적이다.코코네는 한국어에 관심있는 일본인과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인을 연결해준다.그들이 사이트에서 만나 채팅을 하고 화상대화도 한다.일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상대방과 함께 대화를 하며 연습한다.온라인교육에 소셜 기능을 접목한 소셜러닝 시대를 연 셈이다.

 유징스페이스는 아직 한국 사이트에서는 오픈하지 않았다.조만간 일본에서 한국어 배우기 서비스를 시작한뒤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일본인과 코코네일본어에 들어오는 한국인을 연결할 계획이다.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나 한국 관광을 다녀오고 나서 한국어에 관심이 생긴 일본인이 코코네의 일본 사이트에 가입을 하면 반대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코코네코리아의 한국인 회원과 서로 연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전문 강사와 일반인의 만남이 아니라 학습을 매개로 해 일반인들끼리 연결되는 것이다.이들이 서로 배운 것을 온라인에서 나누면서 학습을 하다보면 친구도 사귀고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익히는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의 꿈은 단순히 어학 교육이 아니다.“대화를 하면 장벽이 낮아집니다.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질 겁니다.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구요.그러면 우리가 더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by wonkis
(아래는 신문에 실었던 천 대표 관련 기사의 이미지입니다.관련 기사 http://bit.ly/h56o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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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의 일본 법인 NHN재팬은 오랫동안 NHN의 자랑거리였다.아니,한때는 한국 게임 산업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한국 게임 업체 중 순수하게 현지 시장을 개척해 현지에서 사실상의 창업을 해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아직까지도 NHN재팬 만큼의 성공을 거둔 (한국 게임업체의) 해외 법인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NHN재팬이 과거와 같은 자랑스러운 존재는 아닌 것 같다.실적 정체가 계속되는데다가 현지 시장 자체의 모멘텀 상실,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영향 때문인지 NHN은 실적 발표를 하면서 해외법인별 실적을 따로 공개하던 것을 지난해 3분기때부터 중단했다.

◆2년 동안 실적 제자리.
 2006년 NHN재팬은 분기별로 16억엔-17억엔의 매출을 올렸다.2008년에는 분기별 매출액이 28억엔-31억엔에 달했다.2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운 실적이다.하지만 2009년에는 2008년에 비해 매출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2009년 1분기 30억엔으로 출발,2분기엔 28억엔에 머물렀고 3분기에도 29억엔에 불과한 매출액을 기록했다.2분기와 3분기가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2008년과 별다를바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 문제다.
 NHN재팬은 중국 법인이 갖고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자체 생존에 문제가 있는 회사는 분명 아니다.하지만 성장성이 현저히 떨어져버렸다.

◆꿈쩍도 않는 일본 게임 시장
일본 시장에서의 부진은 NHN재팬만의 문제는 아니다.일본 게임 시장 자체가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게임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에 전년 대비 45%의 성장을 보이며 7억 4700만 달러를 기록했던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은 2007년 성장세가 주춤하며 13.5% 늘어난 848억엔을 기록했다.2009년에는 불과 3.1%만 늘어난 874억엔에 머물렀다.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2012년까지 연평균 2-3%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 자체가 성장하지 않으니 NHN재팬도 뾰족한 수가 없다.일본 현지 온라인게임업체의 한 대표는 “일본은 요즘 게임 산업 뿐 아니라 경기 전체가 침체돼 있는 상황”이라며 “온라인게임의 경우 아직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도달하기 전에 정체에 빠져서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 비즈니스의 부진을 모조리 시장 탓으로만 돌리기는 힘들다.비슷한 시기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일본 법인이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경쟁사들은 계속 성장하는데 NHN이 유독 부진하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NHN의 경우 2008-2009년의 시기에 국내에서 대박을 친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일본에서 통할 만한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퍼블리싱 능력 부족을 꼽을 수 밖에 없다.국내에서는 웹보드가 실적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걸 기대하기 힘들다.결국 일본에서는 일본에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일본에 맞는 국내 게임을 들여와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둘 다 썩 잘하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검색 비즈니스
일본에서 게임은 NHN재팬이,검색은 네이버재팬이 담당하고 있다.검색 사업의 성과가 직접적으로 NHN재팬의 게임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네이버재팬의 성적은 NHN의 일본 전략이나 비즈니스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만한 변수는 아니다.
지난해 1차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올해도 계속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할 예정이지만 네이버재팬 검색 서비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구글과 야후가 양분하고 있는 일본 검색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을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일본 네티즌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지 않아 아직 매출액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정체된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퍼블리싱 능력 부족,불투명한 검색 사업 전망 등으로 인해 NHN재팬의 일본 게임 비즈니스 10년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NHN재팬은 지난 2007년 10월 NHN재팬을 개척해 일궈낸 천양현 전 대표 체제를 마감하고 해외법인 중 처음으로 모리카와 아키라라는 현지인 대표 체제를 구축한 바 있다.현지화의 완결판인 셈이다.하지만 실적 부진이 계속된다면 NHN으로서는 모리카와 대표 체제를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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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초 나는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어바인(Irvine)의 NHN USA 사무실을 방문했다.족히 200여명은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의 사무실에는 40여명의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휑했다.같은 날 저녁시간에 방문한 LA 넥슨아메리카의 사무실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넥슨아메리카가 어느 정도 자리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NHN USA는 (사무실을 마운틴뷰에서 어바인으로 옮긴 이유도 있겠지만 ) 아직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못한 느낌이었다.지난 2005년 2차 도전으로 시도된 NHN 미국 비즈니스가 4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동반 부진에 빠진 해외 법인

미국,중국,일본 3개국을 중심으로 진출한 NHN의 해외 사업이 매출 정체와 수익성 감소로 동반 부진에 빠졌다.중국의 경우 현지에서 철수설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고,잘 나가던 일본 법인은 매출이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미국 법인 역시 3분기 매출 감소에 이어 4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NHN 일부에서는 '안되는 해외 사업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NHN의 해외 법인이 기로에 선 것이다.

◆정체된 매출,불안한 수익성

지난해 3분기 NHN 미국 법인의 매출액은 243만 달러로 2분기의 277만 달러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소규모긴 하지만 순손실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4분기에도 매출액은 늘었지만 여전히 적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법인의 경우 지난 해 3분기 매출액이 3080만 위안으로 2분기 3200만 위안에 비해 감소세를 보였다.555만 위원의 적자도 기록했다.일본 법인은 29억엔의 매출을 기록,2분기(28억엔)보다 조금 늘었지만 최근 2년동안 매 분기 매출액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이익도 적자와 흑자를 왔다갔다 하며 불안정한 상황이다.

 최근 NHN 해외 법인들의 특징은 매출은 제자리,수익성 불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수익이 나오지 않더라도 매출이 늘어나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해 볼 기회가 생기겠지만 현재 NHN 해외 법인들의 모습은 어느 한 쪽으로도 기댈 대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들에 치이고,일본에서는 온라인게임 시장의 부진에 속이 타고,미국에서는 국내 업체들에게도 밀리고 있는 게 NHN 해외 법인의 현 주소다.

◆세대 교체와 해외 법인의 위상

 NHN이 해외에서 왜 부진한가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이 글에서는 실적 부진과 맞물린 1세대의 퇴진을 주로 언급하려고 한다.

 지난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NHN 해외 법인은 큰 변화를 겪었다.대표들이 대거 세대교체된 것이다.창업자들이 이끌던 해외 법인들은 이 시기 2세대로 모두 교체됐다.창업자인 김정호 대표가 이끌던 중국 법인은 프리챌 출신 김현수 대표로 수장이 바뀌었고,한게임 창업자인 김범수,남궁훈 대표가 진두지휘하던 미국 법인은 소니 출신의 윤정섭 대표로 사령탑이 교체됐다.2000년부터 일본 법인을 개척해 일본 온라인게임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천양현 대표 역시 재작년 NHN을 떠났고 지금은 소니 출신의 모리카와 대표가 일본 법인을 맡고 있다.

 창업자가 물러나고 2세대가 물려받은 해외 법인의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강력한 카리스마로 각종 난관을 뚫고 해외 시장을 개척했던 김범수,남궁훈,천양현,김정호 등 창업자들과 2세들과는 같은 대표라도 '급'이 다를 수 밖에 없다.물론 지금 2세대 대표들 역시 실력자들임엔 분명하지만 NHN 내부에서 창업자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창업자들이 이끌던 시기 NHN의 해외 법인은 한국 본사에 눌리지 않고 사업을 논의하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각각의 대표들이 최고 결정권자로 이뤄진 8인회의 멤버들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해외 법인에 지나지 않게 됐다.실적이 뒷받침이 됐더라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실적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해외 법인의 위상이 갈수록 나빠질 수 밖에 없다.

 해외 법인의 국내 본사에서의 위상 약화(대표자의 교체로 인한)는 해외 법인의 사업 추진과 새로운 시도 등에 어려움을 한층 배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뀐 지휘부,달라진 생각

때마침 NHN 국내 본사의 대표 이사도 교체가 이뤄졌다.작년 3월 취임한 김상헌 대표는 전임 최휘영 대표와는 입장이 사뭇 다르다.김 대표로서는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 사업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지난해 기자들과의 미팅에서 김 대표가 '중국 법인'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중국 법인의 대규모 조정 또는 폐쇄를 염두에 둔 것일수도 있지만 전체 해외 법인에 대한 NHN 정책이 본격적으로 변화될 것이란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NHN 내부에서는 지난해 중반부터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 법인에 대한 질책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국내 시장의 녹록치 않은 환경 역시 해외 법인에 대한 시각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한게임의 고포류 게임에 대한 계속되는 규제 움직임이나 검색에서 네이트가 약진하면서 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국내 시장의 본 게임에서 경쟁력을 높이는데 회사의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고 자연스레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법인에 대한 우려와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진한 실적이 1세대의 퇴진과 맞물리면서 NHN의 해외 법인은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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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한게임 창업 멤버들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2007년 여름 한게임의 창업자이자 NHN의 양 기둥 중 한명인 김범수 사장이 NHN을 떠난 이후 지금의 NHN을 만들어낸 초창기 멤버 중 한게임 쪽 창업 멤버들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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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졌다시피 김범수 사장은 작년에 새로운 인터넷 기업을 창업해 두번째 도전에 나선 상태다.김 사장은 일종의 소셜 추천 사이트인 위지아닷컴을 오픈하고 웹2.0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그의 실험은 아직 크게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가 김범수 사장의 아이디어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 좀 더 지켜봐야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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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당시 멤버는 아니지만 한게임재팬을 창업해 NHN의 창업 멤버로 분류되는 천양현 NHN재팬 회장 역시 사실상 NHN재팬을 떠난 상태다.천 회장은 일본에서 온라인교육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천 회장이 벌이는 온라인교육 사업에는 2001년 한게임재팬이 일본에서 힘겹게 초기 개척을 할 당시 한국 본사에서 특공대로 파견됐다가 일본에 눌러 앉은 유희동 전 NHN 실장을 비롯해 일부 NHN재팬 인력이 회사를 나와 합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범수 사장이 미션엔터테인먼트라는 PC방을 창업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동고동락했던 문태식 전 NHN게임스 대표는 일찌감치 NHN을 나와 역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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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 창업 멤버인 남궁훈 NHN USA 전 대표는 아직까지는 고문이라는 호칭으로 NHN에 남아 있지만 그 역시 이미 다른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남궁훈 전 대표는 운동에 게임을 접목해 즐기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 위(Wii)에서 선보인 것이 남궁 전 대표의 관심 분야와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그로선 그런 초기 단계를 벗어나 집에서 뿐 아니라 야외나 헬스장 등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이해진 의장을 비롯해 김정호 NHN 중국법인 대표,오승환 영업본부장,강석호 검색본부장,김희숙 이사 등 검색 쪽 창업 멤버들이 창업 이래 비교적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과 달리(아주 초반에 회사를 나간 김보경 팀장을 제외하고) 게임 쪽 창업 멤버들이 차례차례 회사를 빠져나가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게임이라는 장르가 갖는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 같다.타이틀이나 장르에 따라 분리되기 쉬운 속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결과가 비교적 빨리 나오고 성격에 따라 창업 멤버들끼리라도 같이 하기 힘든 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한국 시장에서 한번 '끝'을 봤던 이들이기에 인터넷의 전혀 다른 분야나 게임 포털이 아닌 다른 장르의 게임에 도전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혹자는 이미 막대한 성공을 이뤘기에 아쉬움이 없다는 점도 이들의 '제 갈길'을 촉진했다고도 한다.하지만 아직 은퇴하기에는 너무나 젋은 이들이기에 분명 다른 분야에서 제 2의 NHN을 꿈꿀 것이란 짐작만 어렴풋이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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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작성했던 NHN 일본 시장 진출기 내용 중 일부 오류 및 빠진 내용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내용을 수정해 다시 올립니다.NHN 일본 시장 진출기 1-3 내용은 다음을 참고해 주십시오>
NHN 일본 시장 진출기(1)=시부야 쪽방 시절
NHN 일본 시장 진출기(2)=1억원으로 1년을 버티다
NHN 일본 시장 진출기(3)=유료화 단행


김범수 사장은 한국의 게임 플랫폼 업무를 담당해왔던 6명의 특공대를 소수정예로 한게임재팬에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이 역시 한국에서 한게임 유료화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유료화를 시작하고 나서 초반에 확실히 분위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이다.

2002년 11월초 어느날,당시 NHN 본사에서 게임제작실을 맡고 있던 신상철 실장에게 문태식 이사가 찾아와 긴급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일본에 가서 좀 도와줘야겠다.여기서 지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직접 플랫폼을 구축하라는 말씀이죠? 얼마 동안이나 있게 될까요? ”
“글쎄...2∼3년 정도 걸릴 수도 있고..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2002년 11월 11일 어느새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추운 날씨 속에 신상철 실장과 유희동 팀장을 위시한 6명의 특공대원들이 베낭 하나씩만 달랑 메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신상철 실장이 총괄을 하고 유희동 팀장을 비롯해 게임개발자 2명,빌링을 담당한 사람이 1명,현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1명 등으로 구성된 멤버였다.거주지 마련 등 기본적인 것도 거의 준비하지 못한 채 긴급하게 결정된 사안이었다.이들은 처음 한달 동안은 사무실이나 근처 여인숙 같은 곳에서 숙박을 취하면서 힘들게 생활해야 했다.

 김범수 사장이 특별 조직한 이 특공대는 일본에 머무르면서 한게임재팬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유료화 구조,네트워크 등을 구축했다.지금의 NHN재팬은 이때 만들어진 시스템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당시 2∼3년으로 예상했던 체류 기간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감에 따라 10개월로 단축됐다.유희동 팀장은 10개월만인 이듬해 8월에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2003년말 일본으로 돌아와 지금은 일본에서 완전히 정착해서 살고 있다.이 특공대가 당시 교육했던 일본인 다쿠마 상이 지금도 NHN재팬의 게임 시스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특공대를 이끌고 왔던 당시 신상철 실장은 2003년 8월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2006년 일본으로 다시 넘어왔다.신 실장은 1년쯤 NHN재팬에서 퍼블리싱 관련 업무를 하다가 작년 5월에 퇴사,지금은 일본에서 아라리오라는 게임 회사를 창업했다.신상철 실장이나 유희동 팀장이나 모두 2002년 겨울 일본에 왔던 일이 어쩌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특공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막 유료화를 시작한 일본 한게임의 수익 모델을 안정화시키는 것이었다. 2002년 10월 유료화를 시작한 일본의 한게임은 한국에 비해선 훨씬 못 미치는 유료화 성적을 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돈이 들어오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결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기였다. 한게임재팬이 확실하게 자립할 수 있어야 한국의 한게임도 부담없이 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게임재팬은 초창기에는 그냥 한국게임들을 그대로 올려놨었다.한국의 한게임에서 서비스하던 게임들을 언어만 바꿔서 올려놓는 식이었다.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현지에서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신상철 실장을 주축으로 한 6명은 오자마자 한게임재팬의 아바타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꿨다.아바타를 클라이언트단이 아니라 서버쪽에서 저장해서 바로 불러 오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이로 인해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끔 환경을 구축했다.

 “처음에는 모듈이 2개가 있었습니다.대기실을 누르면 창이 또 뜨는 시스템이었죠.당시 한국에서 넷마블이 하나로 된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우리도 그것을 벤치마킹해 일본 시장에 적용했습니다.동시접속자수가 단숨에 1만명까지 올라갔고 2003년초에는 1만명을 넘겨 1만2000명까지 급상승했습니다.”
 유희동 팀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02년 일본에는 게임개발자가 2명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유희동 팀장은 아쉬운 대로 직접 직원들을 교육을 시켰지만 결국 2003년에 여자2,남자 1명으로 구성된 웹개발팀이 한국에서 추가적으로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특공대는 한게임재팬이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과금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아울러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백업할 수 있는 내부 의사 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도 했다.

 특공대가 다녀간 이후 한게임재팬은 기준이 달라진 회사가 됐다.이후 하늘처럼 높아만 보였던 야후재팬의 게임 사이트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여기에 내부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자 목표를 정해놓고 이의 달성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됐다.이 시기에 천 대표는 또 한번의 큰 모험을 했다.아직 채 성장하지 않고 직원들도 아직 많지 않던 시기였지만 일본 도쿄 시내에서도 유명한 에비수가든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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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NHN재팬은 창업자인 천양현 대표를 회장으로,부사장이었던 모리카와 이사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지난 8월 김범수 NHN 창업자가 미국 법인 대표직에서 물러나 회사를 떠나기로 했을 때 향후 문태식 남궁훈 천양현 등 NHN에서 한게임쪽 인사들의 움직임 변화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NHN에서 한게임쪽 창업 멤버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그 때 예상대로라면 천양현 대표가 회장으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서는 이번 발표는 김범수 사장의 퇴진과 함께 생각해야할 문제였고 향후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은 사건이었다.하지만 지난 7월에 천 대표를 만났을 때 그와 비슷한 느낌이 없었고 올 연말 일본에서 시작될 검색 서비스를 앞두고 천 대표가 검색 분야를 좀 더 관할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일본에서 온 손님을 만났다가 색다른 소식을 들었다.일본에서 천 대표가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떠돌고 있다는 소식이었다.일본 인터넷업체에서 일하면서 한국을 자주 드나드는 이 인사를 어느 날 한국에서 만나게 됐다.그는 대뜸 “최근 천 회장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회장님이라고 하면 사장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회장님이 됐다고 하면 회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알죠.특히 회사를 창업해 열심히 하시던 분이 회장님이 되면 그 다음엔 고문을 거쳐 회사에서 완전히 나가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한국에서 생각하는 회장님과는 다르게 보는 거죠.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천 회장님의 인사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NHN재팬이 2세대로 접어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혹시나 생각하고 있던 가능성이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든다.향후 일본에서 검색 분야를 다른 사람이 총괄하게 되면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NHN이 정말 아무리 해외법인이라고 하지만 가장 매출이 큰 해외 법인을 외국인에게만 완전히 맡게둘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특히 아주 최근까지도 천양현 회장이 대부분 큰 문제를 직접 다 처리해왔다는 점에서 모리카와 대표의 역할이 얼마나 될 지도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천 회장의 사례는 김범수 대표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본인에게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알기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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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유료화를 생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유료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하지만 동접 4800명은 일본에서도 유료화를 하기에 쉬운 조건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직원들을 설득하는 거였다.직원들조차 아바타 유료화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자기 자신조차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논리를 세워서 남을 설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사실 천 대표도 한국에서 성공한 그 모델로 일본에서도 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비즈니스에 확신이란 건 없기 때문이다.결국 그것이 대표이사라는 자리의 무거움인 것 같다.그래도 한국에서의 경험이 있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었다.한국에서의 경험과 유료화의 진행 과정은 김범수 대표와 김정호 대표가 수시로 전해줬다.
 그리고 천 대표는 사내에서 직원들과 계속 입씨름을 했다고 한다.

 “사장님,솔직히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인데요,집 파일(zip file;판매용 아바타를 묶어놓은 파일) 팔아서 도대체 얼마나 돈이 될까요? 사장님의 지시를 받아 이걸 기획하고 있지만 제가 물끄러미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는 이걸 결코 구매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맞아요.제가 여기 오기 전에 게임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이 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남도 사지 않는다‘는 겁니다.우리는 사활을 걸고 이것을 준비하는데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지 않은가요?”

 천 대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사실 맞는 말이구요.기본적으로 마케터들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하지만 저는 그냥 밀어 붙였습니다. 직원들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냥 따라올 수 밖에 없었죠.그래서 직원들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여러분이나 나같은 30대들은 돈을 쓰지 않겠지만 10대 20대들은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문구점 가서 장난감 안 사지만 10대들은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상 세계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만드는 아바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유료화 초기 목표는 하루 매출이 100만엔을 넘어서는 것이었다.쉽지 않았다. NHN재팬이 선택한 유료화 모델은 아바타였다.한국에서는 이미 2001년 네오위즈,한게임 등이 성공한 모델이었다.

 유료화 첫날. 4800명에 불과한 동접수에 비해서는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첫날 하루동안 70만 엔의 수입이 들어왔다.많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돈이 들어오는 것을 본 뒤 천 대표는 바로 김범수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이날 상황을 김범수 사장이 직접 전한 적이 있다.

 천양현 대표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습니다.전화 너머로도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흥분한 것을 느낄 수 있었죠.유료화가 성공한다는 것이 한게임재팬의 독자적인 생존을 좌우하는 것이였기에 당연하기도 했지만 한국 게임업체가 해외에서 독자적인 과금 모델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에서 한게임이 유료화를 했던 과정과 비슷했다.첫날만 그랬고 이후 계속 수입이 감소했다. 15만 엔에 불과한 날도 있을 정도로 어려운 나날들이 계속됐다.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 한게임을 통해 경험해 봤기 때문에 심하게 당황하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유료화를 한 뒤 첫날 이후로 수익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아직 무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 만한 새로운 서비스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에서 필요했다.이 때가 천 대표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고민은 너무 많았지만 생각을 너무 해 머리가 쉬지 않는 특이한 병에 시달리기도 했다.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도 머리가 쉬지 않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원형탈모증에 걸려서 고생도 했다.하지만 무엇보다 특히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에겐 가장 힘든 점이었다.아무래도 일본인 직원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김범수 사장이 천양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2002년 10월 말의 일이었다.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기가 왔음을 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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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밖에 안 되네?”
한게임의 창립멤버인 남궁훈 NHN USA 대표(당시 한게임 이사)는 2002년 하반기 경영진 회의가 열리기 전 받아든 보고서를 통해 한게임재팬에서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1년간 집행된 비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임대료를 제외하고 한게임재팬이 한해동안 쓴 비용이 모두 합해서 1억원밖에 안됐던 것이다.
 “아니 직원이 그래도 20명은 될텐데,물가도 훨씬 비싼 일본에서 어떻게 1억엔도 아니고 1억원 갖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내부 경영진 회의에 허위 보고를 할 리는 없고,그 동안 NHN재팬이 겪었을 고충이 짐작이 됐다.

 NHN재팬은 처음부터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천 대표 본인이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했기에 직원들부터 시스템까지 모두 일본식으로 했다. 천 대표를 제외한 초기 20명의 직원이 모두 일본인이었다.
 NHN재팬은 일본인들이 오프라인에서 가장 즐겨하는 ‘마작’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서비스를 시작했다.하지만 초기에 너무 인지도가 낮고 온라인게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가 없어서 사업이 사업이 아니었다.
  “무슨 행사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본 IT기업체 사람들에게 요청을 해도 이런 회사가 있나? 하는 반응으로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정말 당시엔 모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었죠.”

 이러다보니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그래도 천 대표는 차근차근 회사를 소개하고 다녔다.열심히 발품을 판 덕분에 일본 인터넷업계에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2001년 9월 천 대표는 일본의 미디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다.그리고 발표가 끝난 뒤 자리를 돌면서 인사를 하다가 그날 지금의 모리카와 부사장을 만나게 된다.모리카와 부사장은 당시 소니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모리카와 부사장은 당시 소니가 CS디지털(위성 디지털)스카이퍼펙트(스타TV 같은 것)방송을 시작했는데,하드웨어 업체에서 미디어 회사로 변신하는 소니의 미디어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모리카와 부사장은 처음 천양현 대표와 대화에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긴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라그나로크와 같은 MMORPG는 모르겠지만 당시 웹보드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남궁훈 이사의 짐작대로 한게임재팬과 수장인 천양현 사장은 2001년 겨울과 2002년 봄,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자본금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우선 자기 방부터 뺐다.직원들 월급이 급해서였다.당장 자신이 잘 곳이 문제였다.일도 많았고,마음도 편치 않았기에 천 사장은 회사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회사에서 자기로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따로 침대를 두자니 직원들 보기가 뭐 해서 그냥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 책상을 붙여서 잤다.직원들이 아침에 출근했을 때 사장이 회사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의기소침해할 것도 걱정됐다.그래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시부야 거리를 돌아다녔다.거리를 다니면서 하루 일과를 생각하고 고민거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한계가 왔다.돈이 없어서 직원들에게 2∼3개월씩 월급을 못 주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2002년 여름의 일이었다.

 2002년 여름 천 대표는 20여명 남짓한 직원들을 모아놓고 비장한 말을 했다.
  “낮에는 각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밤에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사람만 일을 해야겠다. ”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무보수로 일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생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밤에 나와서 공짜로 일해달라니.그런데 의외로 직원들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딱 2명이 2주일 안에 회사를 떠났다.
 “2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금 담당이었다는 점이죠.회사 자금 사정을 훤히 알다 보니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다른 사람들이야 뭐 그 사람들 만큼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겠죠.어려움이 있어도 일시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저랑 자금 담당자 2명을 제외하곤 회사 재무 사정을 잘 몰랐으니까요” 그가 껄걸 웃으며 한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밀어붙일 순 없었다.결국 한게임재팬은 어쩔수 없이 유료화를 서두르게 된다.당시 한게임재팬의 동시접속자수는 불과 4800명 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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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야할 것 같아”
 “다시 공부하려고?”
 “공부에 대한 생각도 아직 있지만,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하면 어떨까해서.그때 얘기했던 것도 있고.”
 “잘 됐다.한게임 이름을 달고 하는 거야.한국에서도 지금 한참 크는 중이라 지원을 많이 하긴 힘들겠지만 이쪽에서 노하우도 있고,PC방도 해 봤으니깐 그쪽 생리는 잘 알꺼고.”

 ‘일본으로 가야겠다’ 는 마음을 먹고 있던 천양현 NHN재팬 대표(당시 미션엔터테인먼트 자양동 지점 PC방 사장)는 2000년 여름,김범수 한게임 사장과 만나 일본 시장 개척을 논의했다.김범수 사장과 자양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천양현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로 김범수 사장과 친한 친구 사이다.그가 1999년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국 일을 마무리한 뒤 다시 게이오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PC방 사업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그의 이런 생각에 김범수 사장도 찬성했다.김범수 사장과 천양현 대표는 아직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미지의 땅 일본에서 온라인게임 사업을 일찌감치 개척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아직도 따가운 여름 햇살이 채 가시지 않은 2000년 9월초,천양현 대표는 김범수 사장과 단 둘이서 도쿄로 넘어갔다.두 사람이 일본 게임업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린 결론은 ‘일본에는 아직 전혀 온라인게임에 대한 기반이 없다’는 거였다.

 이미 한국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초고속인터넷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먼저 시작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아주 느릴 때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다.온라인은 대세이고,일본 시장이 그 대세에서 비켜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체질적으로 게임이라는 장르에 강한 일본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김범수 사장 스스로 “당시 막연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무도 안할 그 때에 시작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장 개척 임무를 받은 천양현 사장은 막연하기 짝이 없었다.우선 시부야에 10평도 안되는 방을 하나 얻고 직원 5명을 채용했다.모두가 일본인이었다.당시 한국 한게임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기여서 자금이나 인력 차원에서 따로 지원을 기대하기가 힘들 때였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초기 자본금은 비싼 일본의 물가 등으로 인해 금세 동이 났다.설립 초기 ‘한번 해 보자!’는 분위기 속에 젊은 소수의 직원을 이끌고 시작할 때만 해도 패기에 넘쳐 있었지만 돈이 떨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돈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설립후 1년이 지났을 때부터.즉 2001년 여름부터 NHN재팬(당시 한게임재팬)의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

 "가끔 정말 힘들 때는 한국의 재무 담당자와 통화를 해 보기도 했지만 서로 돈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힘없이 전화를 끊곤 했다”

 모두가 일본인인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언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온라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돈이 많으면 많은 댓가를 지불하며 직원들을 붙잡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진 것이다.여기에 회사 직원들마저 온라인으로 게임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고 그러면서 사기가 점점 떨어져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천양현 대표가 홀로 밤잠을 자지 못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물리적으로 돈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아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데다 분야마저 생소한 온라인게임에서 현지의 투자를 받기도 어려웠고,사실은 관심을 가져주는 곳도 거의 없었다.그저 하루 빨리 인정을 받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엔 사실 일본 IT업계를 다니면서 좀 만나자고 해도 아무도 쉽게 만나주지 않던 시기였습니다.더군다나 보수적인 일본시장이니 더욱 그랬죠"

 이후 유료화를 시작하는 2002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게임재팬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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