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영혼의 반려자로 교제를 하게 된 데는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이 1915년 출간한 소설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의 영향이 컸다.우연한 첫 만남에서‘무슨 책을 좋아하세요?’라는 당시 아내의 질문에 내가 ‘인간의 굴레’라고 답한 것이 서로 호감을 갖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1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나는 아내를 만나게 해 준 서머셋 모옴에게 큰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갑자기 ‘인간의 굴레’가 떠오른 것은 지난 주말에 처가에 갔다가 처남의 책상에서 그 책을 다시 봤기 때문이다.아마 내가 입버릇처럼 ‘인간의 굴레’를 얘기하고 다녀서인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처남도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나보다.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너무 많이 읽어 손때가 묻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그 책을 보니 아내와 가끔 주고 받는 대화가 생각났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그리고 ‘인간의 굴레를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이 그 누가 있을까.내가 중학교때 처음 접한 ‘인간의 굴레’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이 책이 주인공의 굴곡진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주인공 필립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우선 그는 절름발이로 태어난다.마치 모든 인간이 누구나 선천적으로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육체적으로든,정신적으로든,영적으로든,가정환경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소설에 나오는 서른에 즈음하여까지 불편한 다리를 저주하고 그 때문에 가슴아파하면서 살아간다.누구나 자신의 결함때문에 좌절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불편한 다리 때문에 그는 신을 버리고 자신에게 실망하지만 결국 서른이 되어서는 그동안 그 다리 때문에 자신이 그만큼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도 한다.마치 사람들이 자심의 나약함때문에 자신에게 실망하고 신을 버리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직업을 무려 5번이나(목사, 회계사, 화가, 백화점점원, 의사) 바꾼다.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 대해 무지하며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그리고 그의 그러한 삶은 평생 자신의 직업과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는 현대인의 역경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필립은 결국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회복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얼마쯤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필립은 죽어가는 숙부의 얼굴을 보면서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신을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그리고 삶이 얼마나 준엄한 것인지 깨닫는다.그는 결국‘인생은 고통으로 점철되지만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필립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크론쇼가 준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해답을 찾는다.얼핏 무의미해보이지만 조용히 자신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30년동안 지고 있었던 ‘인간의 굴레’에서 아직 해방되지 않은 것 같다.아직 굴레를 짊어진 필립의 모습은 결국 나를 포함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인 것 같다.그리고 완결되지 않은,30의 나이에서 정지한 소설의 그 부분에서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것을 필립은 바라보고 있다.모든 이가 지고 있는 인간의 굴레를,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지고 있는 인간의 굴레를 내려놓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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